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투루판 가오창고성(고창고성), 당 장안성을 모방해서 건설한 도성

중국 투루판시에 있는 옛 고창국 도성이었던 가오창고성(高昌古城)이다.  현 투루판시 동쪽 화염산 계곡에서 강물이 흘러드는 투루판 분지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실크로드 천산북로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여 교역을 통해 크게 번창했으며 당 현장법사가 인도를 방문하는 길에 설법을 펼쳤던 곳으로 유명하다. 투루판 분지내에서도 계곡과 가까운 까닭에 지금도 고창고성 주변에는 농지가 많고 주민들도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슬람 세력이 터를 잡기 이전에는 불교가 번창했던 곳으로 화염산 협곡에 있는 베제클라크 석굴, 토유크 석굴 등 많은 불교 유적을 남겨 놓고 있다.

한(漢) 시기 투루판 교하고성에서 번성했던 차사전국(車師前國) 국경 부대원들이 만든 요새였던 곳으로 남북조시대 북량(北凉) 망명정권이 442년 이곳에 터를 잡았으며 450년 교하고성(交河古城)에 있던 기존 세력을 몰아내면서 투루판분지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당(唐) 시기 한족정권이 고창국이 크게 번성했으며 이후 위구르세력인 회골칸국 자리잡았다. 14세기 몽골과의 전쟁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며 그 기능을 잃었다.

<가오창고성 북문을 들어서면 볼 수 있는 풍경>

가오창고성은 북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으며 북문 주변에 마을과 농경지들이 형성되어 있다. 내부는 100만 ㎡에 이르는 넓은 지역으로 건물터 등의 많이 남아 있지 않으며 유적지는 외성, 내성, 궁성 등 성벽과 궁성터, 대불사터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건물터 등을 볼 수 있다.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궁성터, 대불사터 등 주요 유적지들을 탐방하게 된다.

<주요 유적지로 이동하는 수단인 당나귀가 끄는 마차>

가오창고성운 둘레 5.4km, 면적, 200만 ㎡의 상당히 넓은 도성(都城)이다. 지금은 폐허가 건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상당히 큰 규모의 형성하고 있다. 이전 시기 중심지였던 자오허고성(交河古城)이 강을 끼고 있는 요새 형태를 하고 있는데 반해 가오창고성은 평지에 높은 성벽을 쌓은 중국 읍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은 외성과 내성, 궁성으로 나뉘어 있으며, 외성은 벽의 두께가 12m에 높이가 11m에 달한다.

<북문 옆에 남아 있는 외성 성벽>

<북문 서쪽 외성 성벽>

<보존상태가 좋은 서쪽 외성 성벽>

가오창 고성은 당(唐) 장안성을 모방하여 건설했는데 전체적으로 직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다. 도시는 외곽, 도심, 궁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영역은 높은 성벽으로 지역을 구분하고 있으며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실크로드와 연결되는 북문을 들어서 비교적 많은 건물터들이 남아 있는데 많은 상인들이 거래를 했던 상업지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북문 입구에 있는 건물터>

<상가건물로 보이는 건물터>

<북문에서 내성과 궁성으로 들어가는 길>

북문에서 남쪽으로 200 m 정도 들어가면 내성 성벽으로 보이는 큰 건물터가 나타난다. 높은 성벽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바깥쪽에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내성 성벽>

<내성 성벽과 주변 건물터>

<내성 안쪽에 있는 건물터>

<궁성 바깥쪽 성벽>

<내성 안쪽 도심 건물터>

내성을 들어서면 200 m 정도 안쪽에 옛 고창국 궁성이었던 건물터와 성벽이 보인다. 궁성터는 비교적 넓은 규모로 개별 건물터에 대한 역할과 기능들에 대해서 설명이 없지만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들의 밀집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궁궐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공간배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탑처럼 보이는 큰 구조물이 궁궐터에 자리잡고 있다.

<2개의 탑의 우뚝 서 있는 궁성터>

<궁성 성벽>

<궁성 성벽>

<궁성 내부>

<궁성터에 남아 있는 탑>

<궁성 성벽>

궁성과 서쪽 내성은 약  200 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도심이 형성되어 있다. 내성 서쪽 성벽은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며 그 사이에는 큰 규모의 건물들이 여러곳 남아 있다. 가오창고성 내에서 관청같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공간으로 보이며 남쪽편에 대불사 절터가 배치되어 있다.  내성 성벽 안쪽에는 건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들이 보인다.

<보존상태가 좋은 내성 서쪽편 성벽>

건물들은 흙벽돌로 쌓아 올렸는데 대부분 2층 이상의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투루판 분지의 더운 날씨를 고려하여 석굴처럼 벽을 두껍게 하고 있다.

<궁성 서쪽 내성>

<궁성 서쪽 내성>

<건물터>

<궁성과 서쪽 내성 사이 공간>

<궁성 바깥 건물터>

<궁성 바깥 건물터>

가오창고성 남서쪽에는 현장법사가 설법을 했다고 전해지는 대불사 절터가 남아 있으며 주변에 내성 성벽과 주거지들이 비교적 원형을 잘 보전하고 있다. 대불사 절터는 높은 성벽의 내성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변에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밀집해 있다. 종교 사원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고대도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궁성터 남쪽>

<대불사까지 이어지는 내성 성벽>

<궁성 남서쪽 대불사 부근>

대불사 부근에 남아 있는 성벽과 건물터를 살펴보면 내성은 상당히 높게 쌓았으며 성벽 안밖으로 성벽을 이용하여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가오창고성 내성과 대불사 사이의 공간>

<가오창 고성 내성>

<대불사와 내성 사이 건물터>

<대불사 남쪽 상업지역으로 보이는 건물터>

건물들은 벽돌로 두꺼운 벽을 쌓아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 2층 이상의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터 내부>

<대불사 바깥쪽에 남아 있는 건물터>

<가오창고성 남문으로 이어지는 내성 바깥쪽 큰 길>

대불사는 당나라 현장법사가 인도로 순례를 떠나는 길에 잠시 들러서 1개월 동안 설법을 했던 곳이다. 내부에는 불상을 모셨던 불전과 법회가 열렸던 강당, 승려들이 기거했던 요사채 건물들이 남아 있다. 가오창고성에 남아 있는 건물들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대불사 절터>

<불상을 모셨던 불전>

<현장법사가 설법했던 강당건물>

<승려들이 기거했던 요사채 건물들>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3.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