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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은공예품

카자흐스탄에 살아왔던  사람들은 선사시대부터 중앙아시아의 넓은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했다. 초원에서 항상 옮겨 다니면서 살았던 유목민들은 가볍고 휴대하기에 편리한 금속공예품을 선호했다. 전시에서는 19 ~ 20세기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사용했던 은공예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고대 이래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사용했던 금속공예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장신구나 말갖춤과 비슷한 형태와 용도를 보여주고 있어 중앙아시아 초원지역의 문화가 한반도까지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은공예품
예부터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은을 선호하였다. 중세초기부터 은세공 기술이 본격적으로 발달하였고 카자흐스탄의 남부 오트라르와 분지카트를 중심으로 튀르크 장인이 만든 은공예품이 크게 유행하였다. 유목민은 전통적인 의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은장신구를 착용하거나 선물하며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 나갔다. 사람들은 은을 정화와 벽사의 기능을 하는 신성한 금속으로 여겼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1. 초승달장식귀걸이 ‘아이스르가(Aysyrga),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북부>


<2. 여미개 ‘캅시르마(Kapsyrma)’,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서부>

<3. 여미개 ‘캅시르마’, 20세기, 은.홍옥수, 카자흐스탄 북부>

캅시르마는 옷을 여밀때 사용하는 여미개이다. 이 여미개는 꽃잎 모양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가운데 둥근 부분에 홍옥수를 박아서 장식했다. 원추형과 원형의 드리개 열한개가 사슬고리에 달려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1.가슴꾸미개 ‘오니르지예크(Onirzhiek)’, 19세기, 은.유리, 카자흐스탄 서부, 2. 초승달장식 귀걸이 ‘아이시르가’, 19~20세기, 은, 카자흐스탄 북부, 3. 드리개 ‘세켈리크(Shekelik)’, 20세기, 은.에나멜, 카자흐스탄 남부>

세켈리크는 관모 등에 달아 관자놀이 부근을 장식하는 드리개이다. 이 세켈리크는 원모양 장식과 마름모 모양 장식, 드리개로 구성된다. 원모양 장식에는 식물문양을 새겼고, 마름모 모양장식의 양쪽 끝에는 문양을 붙였다. 각각의 장식 끝에는 고리를 달아 동물 발톱 모양의 장식을 매달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4. 드리개 ‘세켈리크’,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서부>


<5. 반지 ‘주지크(Zhuzik)’,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서부>


<1. 호신물을 담는 장신구 ‘보이투마르(Boitumar)’,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남부>

보이투마르는 호신물을 담는 장신구이다. 속이 빈 대롱과 마름모 모양 드리개로 구성되었다. 대롱에는 부적 등의 호신물이 들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팔찌는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팔찌(보물 623호)와 비슷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당시 이 지역에서 수입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게 하고 있다.

<2. 쌍팔찌 ‘코스 빌레지크(Kos Blezik)’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서부>

<3. 쌍팔찌 ‘코스 빌레지크’,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남부, 4. 여미개 ‘캅 시르마’, 20세기, 은, 홍옥수, 카자흐스탄 북부>

가슴꾸미개도 황남대총을 비롯한 신라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이다. 신라 가슴꾸미개도 다양한 형태와 재질의 장신구로 장식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많이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1. 가슴꾸미개 ‘오니르지예크’, 19세기, 은.유리, 카자흐스탄 서부, 2. 드리개 ‘세켈리크’,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남부, 3. 귀걸이 ‘시르가’,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남부>

<4. 단추 ‘투이메(Tuime)’, 19~20세기, 은, 카자흐스탄 서부>


<5. 골무가 달린 반지 ‘오미마크-주지크(Oymak-zhuzik), 19~20세기, 은, 카자흐스탄 서부>

오미마크 주지크는 골무가 달린 반지이다. 반지는 링과 마름모 모양 장식으로 구성되었다. 반지의 링에는 잎사귀 모양을 조각했고 마름모 장식에는 물방울 모양을 세공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6. 새부리모양 반지 ‘쿠스무린 주지크(Kusmourin zhuzik)’,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1. 가슴꾸미개 ‘오니르지예크’, 19세기, 은.유리, 카자흐스탄 서부, 2. 귀걸이 ‘시르가’, 19세기, 은.산호, 카자흐스탄 남부, 3. 귀걸이 ‘시르가’,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남부>

<4. 새부리모양 반지 ‘쿠스무린 주지크(Kusmourin zhuzik)’,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서부, 5. 쌍팔찌 ‘코스 빌레지크(Kos Blezik)’ 19세기, 은.유리, 카자흐스탄 서부>

빌레지크는 판형팔찌로 한쪽팔에만 차거나 양팔에 쌍으로 착용했다. 팔찌의 표면은 대부분 보석을 상감하거나 동물문양이나 식물문양을 새겨 장식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1. 귀걸이 ‘시르가’, 19세기, 은.산호, 카자흐스탄 남부, 2. 초승달장식귀걸이 ‘아이스르가(Aysyrga),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북부, 3. 의복용 장신구 ‘타나(Tana)’, 19~20세기, 은.홍옥수, 카자흐스탄 남부, 4. 목꾸미개 ‘타막샤(Tamaksha)’, 19세기, 은.유리, 카자흐스탄 남부>

목꾸미개 타막사는 장방형의 몸체 두개와 사실에 달린 드리개 열두개로 구성되었다. 몸체는 황색이며 식물문양으로 장식했다. 두몸체는 경첩으로 연결되며 각각 중앙에 적갈색 보석을 박아 넣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5. 팔찌 ‘빌레지크’, 19세기, 은.홍옥수, 카자흐스탄 서부, 6. 팔찌 ‘빌레지크’,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남부>


<머리장식 ‘샤시바우(Shashbau)’,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남부>


<머리장식 ‘샤시바우(Shashbau)’, 19세기, 은.에나멜.술장식, 카자흐스탄 남부>

다양한 은 장신구를 엮어 형태를 만들고 양쪽 끝에 술장식을 달았다. 이 샤시바우는 여성의 땋은 머리카락의 끝에 달아서 사용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1. 가슴꾸미개 ‘오니르지예크’, 19세기, 유리, 카자흐스탄 북부, 2. 머리장식 ‘샤시바우’, 20세기, 은, 카자흐스탄 남부>

오니르지예크는 카자흐의 전통 가슴 꾸미개이다. 대개 밝은 보석과 유리로 장식했다. 이 가슴꾸미개는 세개의 장식판과 다섯개의 드리개 장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식판 세개 중 위쪽 장식판 두개는 장방형이고 아래쪽 장식판은 오각형이다. 장식판에는 모두 홍옥수 유리가 박혀 있으며 그 주위를 덩굴모양과 삼각형 모양으로 장식했다. 샤시바우는 여성의 머리를 치장하기 위한 장식품으로, 움직일 때 소리가 난다. 땋은 머리의 양쪽 끝에 고정하여 미적인 장식효과를 주었다. 이 머리 장식은 두 개의 긴 사슬과 두 개의 짧은 사슬로 이루어져 있다. 네 개의 장식판이 고리로 연결되었고 사슬끝에는 마름모 모양의 드리개를 달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1. 위생용품이 달린 장신구, 19~20세기, 은, 카자흐스탄, 2. 위생용품이 달린 장신구(투마르, 타잘리크 구랄리), 19~20세기, 은, 카자흐스탄 북부>

투마르 또는 타잘리크 쿠랄리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장신구이다. 가운데 삼각형 판 아래 은제 이쑤시개나 귀이개 등 위생용품을 매달아 활용했다. 또한 사람들은 삼각형 판 가운데는 눈 모양의 녹색 장식이 벽사의 기능을 한다고 여겼다. 따라서 여성들의 머리나 목, 등, 가슴에 착용하여 부정과 악귀로부터 보호받고자 했다. 이처럼 호신을 위한 장신구의 제작은 유목민의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3. 단추 ‘투이메’, 19~20세기, 은, 카자흐스탄 북부>


<1.머리장식 ‘숄피(Sholpy)’, 19~20세기, 은.홍옥수, 카자흐스탄 북부, 2 머리장식 ‘숄피(Sholpy)’, 19~20세기, 은.홍옥수, 카자흐스탄 북부>

숄피는 카자흐 여성이 착용했던 화려한 장신구이다. 머리끝에 달아서 움직일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나도록 했다. 민간신앙에 따르면 인간 영혼의 일부가 머리카락속에 살고 있어서 숄피의 소리가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고 한다. 이 숄피는 홍옥수가 박힌 꽃모양 장식 네개와 문양이 있는 메달리온 여덟개를 원형의 고리로 연결하여 만들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1. 중매인의 반지 ‘쿠다기 주지크(Kudagi zhuzik), 19세기, 은, 카자흐스탄, 2. 여미개 ‘캅시르마’, 20세기, 은.홍옥수, 카자흐스탄 북부>

쿠다기 주지크는 신부의 어머니가 신랑.신부를 연결시켜 준 중매인에게 선물하는 반지이다. 신랑과 신부를 연결해 준다는 의미에서 손가락을 넣은 고리가 두개 붙어 있다. 이 중매인 반지는 두개의 타원형 장식에 붉은 색 유리가 박혀 있고 타원형 장식의 주위로 꽃과 삼각형 문양이 새겨져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신라고분에서 금관과 함께 출토되는 허리띠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다양한 생활용품을 달고 다녔던 당시 허리띠의 용도를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Kise beldik), 20세기초, 가죽, 금속은도금, 카자흐스탄 남부, 2. 사냥용 허리띠 ‘키세 벨디크(Kise beldik), 19세기, 가죽, 금속은도금, 카자흐스탄 북부>

허리띠에 일상용품과 함꼐 칼이나 화약통, 화살통 등을 달아 사용했다. 남성의 허리띠는 전사들에게 상징적 의미를 가졌고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되었다. 이 사냥용 허리띠는 가죽끈과 띠고리, 각종 물건을 담을 수 있는 부속 장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폭이 좁은 가죽 끈은 여러 종류의 꾸미개로 장식되었다. 끈의 양끝에는 갈고리 모양의 띠고리가 있으며 명문이 적혀 있다. 부속 장식으로는 주머니와 드리개 등이 달려 있다. 두개의 고리로 고정된 오각형의 납작한 주머니는 부싯돌이나 부시 등 기타 필요한 물건을 담는데 사용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3. 허리띠 ‘벨디크’, 19세기, 은.직물, 카자흐스탄 북부,  4. 여성용 허리띠 ‘벨디크’, 20세기, 은.직물, 카자흐스탄 북부, 5. 허리띠 ‘벨디크’, 18세기, 가죽.금속, 카자흐스탄 남부, 6. 허리띠 ‘벨디크’, 20세기, 가죽.금속, 카자흐스탄 남부, 7. 허리띠 ‘벨디크’, 20세기, 직물.금속.에나멜, 카자흐스탄 남부>

벨디크는 가죽과 벨벳, 비단 등을 사용해서 만든 허리띠이다. 허리띠는 카자흐인들의 복식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예복용 허리띠의 경우 값비싼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장신의 수준높은 기술을 총동원할 정도로 제작에 공을 들였다. 이 여성용 허리띠는 직물로 만든 끈과 양끝의 띠고리, 끈을 장식하는 일곱개의 꾸미개로 이루어져 있다. 끈에 부착된 일곱개의 꾸미개장식은 꽃모양의 바탕에 타출기법을 이용해 식물문양을 새겼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결혼식
전통 혼례에서 ‘베타샤르’는 신부 얼굴을 가린 천을 벗기는 의식이다. 결혼식에서 이 의식이 끝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신부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신부는 유르트에 모인 마을 사람들 앞에서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화로에 불을 피운다. 그리고 노래를 듣는데, 여기에는 새로 맞이할 가족과 친척을 존경하고 민속의 관습과 전통을 귀하게 여기며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행동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신부는 노래가 끝나면 얼굴을 가린 채 신랑의 친척들에게 인사하고 친척들이 주는 선물을 받는다. 결혼식 말미에 신부의 얼굴이 공개된다. 이후 신랑과 신부는 두 개의 반쪽이 하나로 합쳐진다는 의미의 노래를 들으며 자신들의 유르트로 돌아간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남성용 예복, 여성용예복, 21세기, 수집품>

카자흐 남성의 전통예복이다. 머리에는 아이에르칼파크(Ayyrkalpak)라고 부르는 모자를 썼다. 이 전통 모자는 자주색 벨벳으로 만들었고 안감으로는 자주색 공단을 댔다. 모자 모양은 끝이 뭉툭한 원추형이고 낣은 창에는 폭이 좁은 금색 띠로 테를 둘렀다. 슬기를 따라 끈을 꼬아서 달았으며 황금색 실로 식물 문양을 수 놓았다. 의복은 먼저 안으로 속셔츠인 제이데(Zheyde)와 바지인 살바르(Shalbar)를 입었다. 제이데는 백색 면직물로 만들었으며 옷깃에 황금색 견사로 식물문양을 수놓았다. 실바르는 연갈색 벨벳으로 만들었으며 제이데와 마찬가지로 견사자수를 두어 장식했다. 제이데 위로 녹색 벨벳으로 제작한 베시펜드(Beshpent)를 입고 그 위로 샤파(Shapan)을 걸쳤다. 샤판은 긴소매가 달린 외투로, 전통적으로 축제기간에 많이 입었다. 자주색 벨벳에 금속실로 문양을 만들어 장식했으며 앞섶 가장자리에는 은색실로 수를 놓았다. 마지막으로 남성용 부츠를 신었다. 신발코가 들려 있고 굽이 있는 형태이며 염색한 가죽으로 만들었다. 흑색 바탕에 연갈색과 적색문양으로 장식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신부혼례복, 남성용예복, 21세기 수집품>

카자흐스탄 전통 결혼식에서 신부가 입는 혼례복이다. 신부는 결혼식날 흰색 베일인 젤레크(Zhelek)로 장식한 원뿔형 모자를 썼다. 이 모자는 사우켈러(Saukele)라고 부르는데, 결혼식 이후에도 새댁은 명절마다 사우겔레를 머리에 썼다. 또 신부는 원피스 형태인 코일레크(Koylek)를 입고 그 위로 베시펜트(Beshpent)를 걸쳤다. 마네킹이 입은 코일레크는 붉은색 벨벳으로 만들어 소매와 앞섶, 밑단부분을 금실로 화려하게 꾸몄다. 베시펜트는 외투의 일종이며 코일레크와 같이 붉은색 벨벳으로 만든 후 수매와 앞섶 등에 동물과 식물 문양을 금실로 수놓아 장식했다. 여기에 가죽 부츠인 에티크(Etik)를 신으면 혼례 복장이 완성되었다. 신부는 이렇게 예복을 차려입고 집안의 어른들과 손님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혼례용 신부 모자 ‘사우켈레(Saukele)’, 21세기, 비단.벨벳.유리, 카자흐스탄 서부>

말갖춤
유목민은 광활한 초원에서 목초지를 찾아다니며 이동 생활을 하였다. 유목민은 주기적으로 목초지를 찾아 가축을 몰고 이동하는 수평유목, 계절별로 고지대와 저지대를 오가는 수직유목, 목죽과 농사를 함께하는 유복 드으이 형태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갔다. 이동 생활을 하는 유목민에게 말은 각별한 존재였다. 유목민은 말을 타고 이동하거나 가축을 돌보고, 적과 싸우고, 말의 젖과 고기를 먹고, 말의 배설물을 연료로 사용하였다. 아이들은 어릴적부터 말 타는 법을 배웠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유목생활을 자연스레 경험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말갖춤>

<아동용 안장 ‘발라 에르(Bala er)’ 19세기, 나무.가죽.금속, 카자흐스탄 남부, 여성용 안장 ‘아이엘 에르(Ayel er)’, 19세기, 나무.가죽.금속, 카자흐스탄 동부>

카자흐인은 나이와 성별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안장을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남성용 안장을 에르(Er), 여성용 안장을 아이엘에르(Ayel er), 아동용 안장을 발라 에르(Bala er)라 불렀다. 이 여성용 안장 아이엘 에르는 앞가리개에 옥수를 박어 넣고 기하학적 형태의 식물 문양으로 멋을 냈다. 안장 앞가리개는 폭이 좁고 수직 방향으로 길쭉하다. 안장 뒷가리개는 안장 앞가리개와 동일한 문양을 장식했고 보석을 감입하지는 않았다. 안장의 가죽 겉면에는 코시카르 무이이츠(Koshkar muyts)라고 부르는 양의 뿔 문양을 입안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채찍 ‘캄시(Kamshy)’, 20세기, 가죽.금속, 카자흐스탄 중부, 굴레 ‘주겐(Zhugen)’, 19세기, 가죽.금속, 카자흐스탄 동부>

채찍은 그 종류가 다양하지만 주로 조팝나무, 뿔이나 뼈로 만들었다. 조팝나무는 적자색을 띠며 굳고 단단하다. 카자흐스탄인들은 조팝나무가 악령을 물리친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믿음은 카자흐 동화와 신화에서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채찍은 손잡이 부분을 영양의 정강이뼈로 만들었고 손잡이 양옆으로 백색 금솟판 장식이 달렸는데, 장식에는 터키석이 박혀있다.  굴레는 이음쇠를 연력하여 넓은 T자 형태로 만들고 십자형 꾸미개 및 화살모양 드리개로 장식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발걸이 ‘우젠기(Uzengi)’, 19세기, 금속, 카자흐스탄 동부>

발걸이가 발명되고 널리 보급되면서 말을 더욱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말을 탈 때 발걸이에 발을 걸게 되면서 무게 중심을 조정하고 말을 제어할 수 있었다. 또한 발걸이는 말을 타는 사람의 다리에 말의 땀이 닿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다. 이 발걸이의 상단은 장방형, 하단은 타원형이며 식물문양을 새겨 장식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후걸이 ‘쿠이이스칸’, 19세기 가죽.금속, 수집품, 가슴걸이 ‘오밀디리크(Omidirik)’, 19세기, 가죽.금속, 카자흐스탄 남부>

후걸이는 안장이 앞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말의 꼬리 밑으로 걸어 안장의 뒷부분에 매는 끈이다. 가죽으로 만들었으며 여러 문양이 새겨진 금속 꾸미개로 장식했다. 가슴걸이는 마구의 부속품 중 말의 가슴쪽에 거는 가죽 끈으로, 말을 타고 오르막을 오를 때 안장이 뒤로 밀리지 않게 잡아 준다. 가슴걸이의 끝 부분은 안장틀에 고정하고 중간 부분은 복대와 끈으로 연결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안장 ‘에르’ 19세기, 나무.가죽.금속, 카자흐스탄 남부>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2019년
  2.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