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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양동리 고분군(사적), 금관가야 지배층 무덤

경남 김해시 주촌면에 있는 양동리 고분군(사적)이다. 가야 고분 중에서 가장 많은 유물이 출토된 곳이다.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에 걸쳐 형성된 고분군으로 500여기의 무덤이 흩어져 있다.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양동리 마을 뒷산에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고, 그 면적은 3만여평 정도이다. 발굴, 조사된 무덤은 무덤양식의 변천과 연대를 규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출토된 유물은 시기별 가야문화의 특징과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출토유물을 통해 가야가 활발한 해상활동을 통해 교역을 하고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김해 양동리 고분군(사적)>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오랜 세월동안 조성된 무덤들이 모여있다.  옛 사진에는 발굴중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지금은 일반적인 유적지의 모습으로 바뀌어져 있다.

<유적지 정상부>


<최근 모습(2021년)>

양동리는 금관가야 중심지였던 김해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 3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낙동강 삼각주에 형성된 김해평야와 산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해상무역에 종사했던 선박들이 정박했던 항구이자 물류거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해 양동리고분군 위성사진>

<양동리 마을>

양동리 고분군에서는 청동거울과 투겁창 등 중국 및 일본계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무덤 주인들은 중국, 일본과의 해상교역으로 부를 축적한 집단으로 추정된다. 대형 목곽묘와 외래계유물, 수정제 구슬 등 화려하고 풍부한 껴묻거리는 금관가야가 본격적으로 성립되기 이전 김해지역에서 활동한 주요 세력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각종 토기와 다양한 철제 무기, 갑옷과 마구, 철제농기구, 청동제 단검과 거울, 청동제 솥 등이 발굴되었으며, 특히 유리.수정.마노.호박 등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가 출토되어 해상교역을 통해서 축적된 경제력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김해 양동리 162호 무덤(나무덧널 무덤), 2세기, 동의대학교 박물관>

김해 양동리 162호묘(2세기)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2세기 후반 무렵에 한(韓)과 예(濊)가 중국이 혼란한 틈을 타서 강성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양동리 162호 무덤은 이 시기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나무덧널무덤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쇠도끼, 1~3세기, 김해 양동리유적, 국립김해박물관>

여러장의 긴 철판을 연결하고, 고사리 문양을 붙여 만든 갑옷과 투구이다. 갑옷에 고사리 문양이나 새 문양을 붙이는 것은 가락국 갑옷의 특징이다.


<갑옷과 투구, 4세기, 김해 양동리 78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청동 투겁창은 일본과의 교류관계를보여주는 유물이다.

<청동 꺽창과 투겁창, 2~4세기, 1. 김해 가야의 숲 조성부지내3호묘, 국립김해박물관, 2. 김해 양동리고분, 대성동고분, 국립김해박물관, 대성동고분박물관>

<청동 투겁창, 2~4세기, 2. 김해 양동리고분, 대성동고분, 국립김해박물관, 대성동고분박물관>

<검, 2세기, 1. 김해 양동리 55호묘, 427호묘, 국립김해박물관>

<검, 2세기, 2. 김해 양동리 55호묘, 427호묘, 동의대학교 박물관>


<미늘쇠, 김해 양동리 무덤, 국립중앙박물관>

<사신격자 무늬 거울, 1세기, 3. 전 김해 양동리, 부산박물관>

<3. 본뜬 거울, 김해 양동리유적, 국립김해박물관, 동의대학교 박물관>

수정 목걸이는 당시 가락국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던 구슬이다. 양동리고분군에서는 다량의 목걸이가 출토되었는데 그중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보물), 322호분 출토목걸이(보물)가 가장 화려하면서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정 목걸이, 3세기 1. 김해 양동리 270호묘, 국립김해박물관, 보물>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보물)>


<목걸이, 2~3세기, 2. 김해 양동리유적, 국립김해박물관>


<목걸이, 2~3세기, 김해 양동리유적, 국립김해박물관>


<목걸이, 2~3세기, 김해 양동리유적, 국립김해박물관>


<목걸이, 2~4세기, 김해 양동리유적, 국립김해박물관>

청동세발솥은 입술부분에 글자가 적혀 있다. 제작 시기는 1세기로 추정되는데 양동리고분군의 조성시기를 밝혀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1. 청동 세발솥, 3세기, 김해 양동리 322호묘, 국립김해박물관>

<1. 쇠솥, 2~3세기, 김해 양동리 318호묘, 국립김해박물관>

가야 사람들이 말을 타고 다니던 흔적은 토기의 그림뿐 아니라 실제 사용한 말갖춤으로도 확인이 되고 있다. 후기 가야유적에서는 말갖춤과 관련된 많은 유적들이 출토되고 있다.

<3. 말탄 사람을 새긴 단지, 3~5세기, 김해 양동리 195호묘, 동의대학교 박물관>

 <굽다리접시, 3.경남 김해 양동리, 1996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4세기>

<12.굽다리접시, 경남 김해 양동리(1990년 발굴)>

김해 양동리 고분군, 사적, 경남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양동리 가곡부락 뒷산(해발 90m)에 위치한 이 고분군은 삼한~삼국 시대의 무덤 유적으로, 유적의 전체면적은 3만여 평 정도이다. 이 유적은 1969년에 이곳에서 우연히 출토된 유물로 인해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정식 발굴 조사는 문화재 연구소(1984년)와 동의대학교 박물관(1990~1996년)에 의해 이루어졌다. 여러 차례의 조사결과, 이곳에서는 모두 550여기의 무덤이 확인되었고, 5천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곳의 무덤들은 좁은 범위 안에 매우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오랜 기간동안 무덤이 만들어지면서 서로 겹쳐지는 것들도 많았다. 조사된 무덤의 종류는 나무널무덤, 나무곽무덤, 구덩식 들곽무덤, 독무덤, 유사 돌무지덧널무덤 등으로, 이들 무덤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 후 5세기까지 순차적으로 만들어졌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이 유적에서는 각종 토기와 다양한 철제 무기, 갑옷과 마구, 철제 농기구와 공구, 청동제 단검과 거울, 청동제 솥, 통형동기, 유리.수정.마노.호박 등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들 유물 중에는 중국이나 낙랑, 일본 등 외국과의 교류나 교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들도 많다. 이 고분군은 낙동강 하류의 여러 가야 고분 중에서도 특히 가야의 묘제나 유물의 변천상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따라서 가야 문물의 진수를 잘 보여줄 뿐 아니라, 가야사회의 성장과정이나 국가적 성격까지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내문, 김해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김해시청, 2011년
  2. 안내문, 김해박물관, 2012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4.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5.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