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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 고대문화(하,상,주,춘추전국,진,한)

기원전 3,000 ~ 5,000 년 전 황하 유역에 번성했던 신석기 앙소문화(仰韶文化) 동아시아에서 가장 앞섰던 선사문화로 여겨진다. 중국에서 확인된 앙소문화유적의 2/5 정도인 2,000 여개의 유적이 섬서성에 분포하고 있는데, 바닥이 뾰족한 항아리와 도기가 유명하다. 섬서지역은 앙소문화의 중심지에 있었으며 인근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상호 작용을 통해 지역 간의 통일을 촉진했다.

<채색항아리(彩陶), 신석기시대 앙소문화>

앙소문화(仰韶文化)는 황하 중상류에서 발생한 신석기 문화이며, 이 토기는 앙소문화권에서 생산된 것이다. 토기 표면에 흑색의 굵은 선으로 그린 반원형과 격자무늬, 그물무늬가 있고 허리 부분에는 양쪽으로 손잡이가 달려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갑골문(甲骨文)은 “계문(契文)”, “복사(卜辭), “라고도 부른다. 중국 상(商)말에서 주(周)초(기원전 1,300~1,100년경)까지 왕실에서 점복(占卜)의 결과를 거북껍질이나 동물뼈에 기록한 문자이다. 상나라 은허 유척에서 발견된 초기의 갑골문은 물체의 형상에 표현한 상형문자로 약 4,500여자 정도이다. 갑골문에서 발견된 문자는 내용이 확대되어 지사자(指事字, 상형자를 응용해서 만든 글자),상형자.회의자(여러개 문자를 합쳐 뜻을 만듬)뿐만 아리자 일부 형성자도 발견된다. 갑골문에 적힌 내용은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천문, 지리, 국방, 인물, 정벌, 교통, 의복, 목축, 종교 등 다양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갑골문(甲骨文), 상 기원전 16~11세기>

<갑골문(甲骨文), 상 기원전 16~11세기>

갑골문은 중국의 고대 문자로 거북이 배와 짐승 뼈에 새겨진 상형문자이다. 중국 상나라 유적에서 발견된 이후 중국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연대는 기원전 1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현재까지 십여 만 편에 4,600자 정도가 발견되었고, 그중 1,700여 자가 해독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고대 중국인들은 신체의 아홉개의 구멍을 금옥(金玉)으로 막으면 시신이 썩지 않는다고 하여 시신에 옥을 부장했는데, 이를 장옥(葬玉)이라 한다. 옛 사람들은 옥이 신령스러운 힘을 지녔다고 믿었는데, 매미는 부활, 돼지는 먹을 거리 같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1. 옥함, 2. 옥벽, 한>

옥편(玉片)은 시신이 입는 옥의(玉衣)의 일부로 네 모서리에는 끈을 끼울 수 있는 구멍을 뚫었다.

<3. 색옥, 4. 옥돈, 5. 옥편(玉片), 한>

장옥(葬玉, Funerary Jades)
고대 중국인들은 옥이 시신을 보호하고 죽은 이를 선계(仙界)로 인도라는 힘을 가졌다고 믿었다. 신체의 아홉 구멍을 금옥(金玉)으로 막으면 시신이 썩지 않는다고 하여 시신에 옥을 부장했는데, 이를 장옥(葬玉)이라고 한다. 한대의 장옥은 용도에 따라 입믈 막는 함옥(含玉), 신체의 구멍을 막는 색옥(塞玉), 손에 쥐는 옥돈(玉豚), 가슴에 얹는 옥벽(玉璧) 등으로 구분된다. 매미모양의 함옥은 부활을 의미하고, 색옥은 유체의 정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하며, 손에 쥔 돼지모양의 옥돈은 내세에서 먹을 양식을 상징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국의 고대 청동기는 하(夏)나라때부터 만들기었으며, 지금도 그 광택이 수려하여 당시의 수준 높았던 주조 기술을 알 수 있다. 상(商).주(周)대에는 예기로써 신분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사용되었으며, 진한대 이후 점점 쇠퇴하였다. 그릇 안쪽에 새겨진 금문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제작자의 이름 등을 알 수 있다

<청동예기>


<1. 청동호(靑銅壺), 상 기원전 16~11세기>

청동기로 만든 술 담는 의례용 그릇이다. 몸체는 타원형이고 그릇 표면에는 용과 새 무늬가 장식되어 있으며 양쪽에 귀가 달려 있다. 전형적인 상대 말기의 청동호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청동호, 상>


<3. 청동고(靑銅觚), 상>


<4. 청동고, 상>

고(觚)는 술을 담아 마셨던 잔이다. 나팔모양의 고는 오래된 청동 예기(禮器)로 상 말기 무덤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술잔 표면에는 상상 속의 괴수 도철(饕餮)무늬를 새겼고 잔 아래 바닥 안쪽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5. 청동정(靑銅鼎), 상>

정(鼎)은 양쪽에 손잡이가 있고 다리가 3개 또는 4개 달린 솥이다. 제사와 연회에서 육류를 담아 끓이는 데 사용했다. 지배층의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기물로 정의 앞, 뒷면을 상상 속의 괴수 도철무늬로 장식하였다. 정 안에는 ‘子’ 모양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6. 청동궤(靑銅簋), 서주 기원전 11세기 ~ 771년>

중국 고대의 청동 예기인 궤(簋)와 정(鼎)은 소유자의 신분이 높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그릇으로, 여기에 곡식을 담았다. 이 궤는 안쪽 바닥 가운데에 상형문자로 된 명문이 새겨져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국 고대문화
중국 고대 문명은 신석기시대의 채도(彩陶)와 옥기(玉器), 청동기시대의 갑골문과 청동기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채도는 정착 생활과 농경이 시작되면서 생산되었으며, 도기 표면에는 동물무늬나 기하학무늬 등이 표현되었다. 옥기는 지배계급의 상징물로서 주술적인 의미를 가졌으며 장신구 구실을 했다. 청동기는 고대국가 형성과 함께 제작되기 시작하여 주로 상나라와 주나라 때 제기와 식기, 무기 등으로 제작되었다. 왕과 제후무덤에서는 부장품으로 매장된 다양한 청동기가 발견되는데 신분계급에 따라 청동기의 매장 수량이 달랐다. 또한 청동그릇에는 사람이름과 관직명,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금문(金文)이 새겨져 있어서 당시의 사회 상황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껴묻거리로 만들어진 누각 모형이다. 4층 건물 형태로 주택, 부엌 등과는 달리 실제 생활하는 용도는 아니다. 사후세계에서 신선처럼 살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인 망루 형태의 궐(闕)이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남북조시대 이후 불교의 목탑과 석탑으로 변화한다.


<누각모형, 동한(東漢, 25~220년), 녹유도기>


<옆에서 본 모습>


<뒤에서 본 모습>


<반대쪽 옆에서 본 모습>

한대(漢代)에는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는 풍속이 유행하여 무덤에도 다양한 껴묻거리를 함께 묻었는데, 그 가운데는 집, 부엌, 축사, 방앗간, 화장실 등 망자를 위한 건축 모형도 있다. 이 망루 모형은 4층이며 층마다 난간을 만들어 인물상을 배치하고, 지붕 처마 끝에는 4개의 꽃잎이 달린 꽃모양 장식을 부착했다. 누각 모형의 양식은 한대의 실제 건축 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신선 사상과 관련하여 망자의 사후 영생을 기원하는 관념적 건축이하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한(漢)대 막새기와에 새겨진 내용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1~12 개의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4자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그 의미는 상서로운 단어, 공직, 궁궐, 능원, 관역(關驛)의 이름 등 다양하다.  주제는 사회 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고 있으며 인장 글씨 스타일로 서예적인 가치를 보여준다.

<1. ‘부귀만세(富貴萬歲)’가 적힌 수막새, 한><2. 구름과 나무무늬 수막새, 전국시대>


<3. 도철무늬 막새, 전국시대 기원전 475~221년>


<4. 꽃무늬 수막새, 전국시대><5. 도철무늬 막새, 전국시대>


<6. 동물무니 수막새, 전국시대 기원전 475~221년>


<7. 나무 동물무늬 반원막새, 전국시대 기원전 475~221년>

건죽의 미- 기와
기와는 비바람으로부터 지붕을 보호하고 동시에 건축을 장식하는 기능을 한다. 중국은 주나라 때부터 왕실을 주임으로 기와를 사용했으며, 전국시대에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중국의 기와에는 시대와 출토 지역에 따라 귀신, 사슴, 나무 등 다양한 무늬가 표현되어 있으며, 이외에 좋은 글귀를 새겨 넣기도 했다. 수.당대 이후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연꽃무늬 기와가 주류를 이루고, 송.원대 이후에는 청색과 황색 유약을 발라 구워 독특한 색깔을 띠는 다양한 기와들이 제작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청동거울은 제사장이나 부족장의 권위를 나타내는 주술적인 용도였으나, 점차적으로 화장을 위한 일상용품으로 그 용도가 변한다. 주술적의미나 장식적인 목적으로 다양한 그림이나 글자를 새겨 놓고 있으며, 조형미가 우수하며, 보존상태가 좋은 유물들이 많은 편이다.

<청동거울>

<1. 신선 동물무늬 거울(神獸鏡), 동한 25~220년>


<2. ‘장의자손(長宜子孫)’명 거울, 동한 25~220년>


<3. 용무늬 거울(龍文鏡), 한 기원전 206년 ~ 기원후 220년>


<4. 용무늬 거울(龍文鏡), 전국시대 기원전 475~221년>


<5. 신령스러운 동물무늬 거울(獸帶鏡), 동한 25~220년>


<6. 네개의 ‘산(山)’자가 새겨진 거울(四山鏡), 전국시대 기원전 475~221년>


<7. 네모난 청동거울, 전국시대 기원전 475~221년>

화장 도구 – 청동거울
고대에 주술적인 성격을 지녔던 청동거울이 점차 화장 도구로서의 기능을 갖추게 되면서, 춘추시대를 거쳐 전국시대에 이르면 정교하고 수준 높은 청동거울이 만들어진다. 동판의 표면을 잘 다듬어 얼굴을 비쳐볼 수 있는 청동거울은 뒷면에 다양한 무늬가 장식되어 있어서, 거울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후대에 와서도 수준 높은 주조 기법과 장식 기법을 보여주는 금속공예로 주목을 받는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등잔과 마찬가지로 향을 피우는 향로는 주나라 말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한나라 때에는 박산향로가 크게 유행하였다. 향로는 인도에 성행했는데 불교의 전래와 함께 널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1. 박산향로, 동한 25~220년, 황갈유도기>

한나라때 유행했던 박산(중첩된 산악모양) 형 뚜껑으로 바다에서 3개의 산이 용솟음치는 형상이다. 몸체의 외벽에 신선,파도,구름, 풀과 나무 등의 무늬를 새겨넣었고 술을 담던 그릇이다. 앞선 시기에는 동물모양 그릇이 많았으나 한대에는 자연을 형상하여 만든 그릇이 유행하였다.


<2. 박산단지, 한, 황유도기>

박산향로와 박산준(博山樽)
한대에는 신선 사상이 유행하여 불사영생(不死永生)하는 신선이 산다는 선계의 산, 즉 박산(博山)을 표현한 향로와 술잔을 많이 제작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박산향로에 향을 피우면서 신선을 불러내 불사약(不死藥)을 얻고자 했고, 박산준에 술을 담아 신산(神山)의 불사수(不死水)처러머 생명의 술로 변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래에 전시된 박산향로는 뾰족한 산모양 뚜껑과 형태만 남은 가는 기둥으로 보아 단순화된 후대의 작품으로 보이며, 박산준은 세속화된 도교 신앙의 영향으로 틀을 이용해 많은 수량을 찍어 낸 제품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황화에서 꽃핀 예술>

황하(黃河)에서 꽃핀 예술
중국은 황하 문명을 기반으로 성장했으며, 광할한 영토에 여러 민족의 흥망성쇠가 거듭되면서 다채로운 문화가 전개되었다. 하나라(夏, 기원전 21~16세기)를 시작으로 상나라(商, 기원전 16~11세기)와 주나라(周, 기원전 11세기~256년)에 이르러 국가의 틀이 마련되었고, 정치적 혼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 기원전770~221년)에는 새로운 가치와 규범을 제시하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등장으로 사상과 학문이 꽃을 피운다.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 진나라(秦, 기원전 221~206년)와 그 뒤를 이은 한나라(漢, 기원전206~기원후220년)는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하고 정치사회제도를 재정비하며 통합을 이루었다.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 221~589년)에는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가 융성하여 중국 전역에 사찰과 석굴사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불교 사상과 미술 양식은 아시아 전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대(唐, 618~907년)에는 외래문화가 적극 수용되어 국제적인 성격의 문화가 융성하며 금속공예품과 삼채 도자기가 특히 발달하였다. 송대(宋, 960~1279년)에 이르면 전국의 가마에서 각기 개성을 살린 도자기들이 다양하게 생산되어 중국 도자문화가 크게 발전한다. 한편 자연의 위대함을 이상적으로 표현한 산수화와 함께 시서화(詩書畵)의 예술이라 부르는 문인화(文人畵)가 태동하여 원대(元, 1271~1368년)에는 복고적 문인화풍으로 이어진다. 명대(明, 1368~1644년)에는 고상한 취향의 문인화가 유행하고 궁정화원 소속 직업화가들의 활동이 활발했으며, 청대(淸, 1644~1911년)에는 서양화풍이 유행하면서 더욱 다채롭고 개성 있는 회화 세계가 펼쳐진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2.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