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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서장대(西將臺, 華城將臺), 팔달산 정상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

팔달산 정상부 능선을 북쪽 끝자락에는 서장대(西將臺)와 서노대(西弩臺)가 설치되어 있다. 서장대는 주변 동태를 감시하고 화성내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곳이다. 수원화성에는 군사들을 지휘하는 곳으로 서장대와 함께 장안문 동쪽에 연무대(鍊武臺)라고도 불리는 동장대(東將臺)가 설치되어 있다. 서장대는 앞면3칸, 옆면3칸 규모의 2층 누각이다. 서장대 뒷편 사방으로 쇠뇌를 공격할 수 있는 방어시설인 서노대가 설치되어 있다. ‘화성장대(華城將臺)’라 적힌 현판은 정조의 친필이며, 그는 이곳에서 직접 군사훈련을 지휘하기도 했다고 한다. 뒷편에는 앞면 3칸 규모의 후당(後堂)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사통팔달(四通八達)’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산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팔달산 정상부에 올라서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장대에 올라서면 수원시내는 물론이고, 북쪽으로는 광교산과 용인방면이, 남쪽으로는 융건릉이 있는 화산(華山)과 오산 독산성까지 주변 경치가 한눈으로 들어온다. 서장대 아래에는 수원유수부 관아이자 국왕의 임시 거처인 화성행궁이 자리잡고 있으며, 비상시 서장대를 거쳐 성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장대>

팔달산 정상부 북쪽 능선 끝자락에 수원화성에서 제일 중요한 시절인 서장대가 있다.

<서장대 누각>

서장대는 앞면 3칸, 옆면 3칸의 2층 누각이다. 지붕 위에는 조선시대 건축물에서는 잘 쓰지 않는 절병통을 올려놓고 있다. 정조가 ‘화성장대(華城將臺)’라 적힌 현판 글씨를 직접 썼다고 한다.

<장대 1층 내부>

가운데 난간이 있는 마루가 있고,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오를 수 있다.

<장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주변 풍경>

<화성행궁>

서장대 아래에는 수원유수부 관아이자 정조가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행차할 때 머물렀던 화성행궁이 위치하고 있다. 비상시 서장대 뒷편 암문을 통해 성바깥으로 빠져나가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화성행궁 앞 광장에서 본 팔달산과 서장대>

<뒤에서 본 모습>

<후당건물과 서노대>

서장대 뒷편에는 군무(軍務)를 보던 앞면 3칸 규모의 후당건물과 서노대가 있었다고 한다.

<서장대 뒷편 성벽>

서노대(西弩臺)
노대는 성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복노대가 두 곳 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팔각형 평면이며 기와 벽돌로 쌓았다. <출처:수원시청>

<서장대 뒷편 서노대>

군사지휘부인 서장대를 엄호하기 위한 시설로 사방으로 쇠뇌를 쏠 수 있게 지은 방어시설이다. 정팔각형으로 구운벽돌로 쌓은 청나라풍의 시설이다.

<서노대 내부>

가운데 노(弩)를 설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사방에 여장을 설치해 놓고 있다.

<서노대에서 내려다 본 서장대>

<서노대에서 내려다 본 수원화성 서쪽 수원 부근>

<화서문과 장안문 사이 성벽>

<화홍문 부근>

<연무대와 창룡문 부근>

<수원화성 동쪽편 성벽>

<팔달문 주변>

<서장대에서 북쪽 화서문으로 내려가는 길>

서장대(西將臺, 華城將臺)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이다. 1794년(정조18) 8월11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29일 완성되었다. 정조는 1795년(정조19) 윤2월12일 현륭원(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출처:수원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