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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칠중성(사적), 삼국통일 이후 나당전쟁 격전지

파주시 적성면 구읍리 중성산에 남아 있는 칠중성(七重城)이다. 나즈막한 야산인 중성산(해발 147m) 정상부와 남서쪽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은 테뫼식산성이다. 전체 둘레는 603m 정도이며, 북동쪽이 가장 높고 동쪽벽이 현저하게 낮은 형태이다. 발굴조사 결과 문지, 건물지, 우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성을 쌓은 석축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휴전선과 가깝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지인 까닭에 참호들이나 군사방어시설 등을 많이 볼 수 있다.

<파주 칠중성이 있는 중성산 정상부(해발 147m)>

나당전쟁과 한국전쟁의 격전장으로 그에 어울리게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칠중성은 임진강 이북 지역과 한강유역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 임진강변에는 배를 이용하여 임진강을 오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인 여울목이 해당한다. 이곳부터 강폭이 좁아 임진강을 건너기 용이하여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주변에는 고구려군이 쌓은 요새와 백제 토성들이 산재해 있다. 칠중성 정상에 올라서면 북쪽 임진강 방향으로 막힌 산이 없어서 조그만 움직임도 쉽게 관찰할 수 있어 이곳의 전략적 중요성을 한눈으로 느낄 수 있다.

<중성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임진강 유역>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군사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구려가 남하하여 백제를 압박할 때 국경선이 되었던 지역으로 주변에 호로고루나 당포성같은 고구려가 쌓은 요새와 백제가 쌓은 육계토성 등이 있다. 칠중성은 백제가 처음 쌓은 것으로 보이지만, 신라가 쌓은 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칠중성 남동쪽>

주변에서 가장 높은 감악산으로 막혀 있다. 감악산 뒷편 양주지역을 통해 한강유역과 연결된다. 감악산 너머 양주에 나당전쟁 최후의 전투가 있었던 매소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칠중성 남쪽 적성면 소재지 일대>

감악산과 연결된 높은 봉우리들이 막고 있다. 지금도 주요도로는 임진강을 따라서 파주를 통해 서울과 연결되고 있다.

<성벽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

칠중성은 중성산 정상부와 남쪽편 봉우리를 연결한 테뫼식 산성으로 전체 둘레 603m 규모의 그리 크지 않은 산성이다. 백제가 토성을 쌓았을 것으로 보이며, 신라는 이곳에 전형적인 신라 산성형태인 석축성을 쌓았다.

<칠중성 정상부 주위의 참호>

신라가 쌓은 성벽과 비슷한 위치인 것으로 보인다.

<참호 아래쪽>

아래쪽에 석축을 쌓았던 것으로 보이는 돌들이 보이기도 한다.

<석축처럼 보이는 부분>

신라가 쌓은 석축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성벽으로 보이는 석축도 보인다.

<중성산 정상부>

남북한 세력이 부딪히는 임진강 중류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칠중성은 고구려와 백제의 투쟁, 고구려와 신라의 투쟁, 나.당 전쟁과 최근의 한국전쟁의 격렬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선덕여왕 때에는 한강유역에서 밀려났던 고구려가 칠중성을 공격했다가 크게 패했으며, 삼국통일 후 나당전쟁 때에는 신라가 당나라군에 크게 패해 함락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에도 고랑포 전투와 영국군이 중공군을 도강을 저지한 적성전투가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쌓은 것으로 보이는 군사시설>

주변 돌들은 크기나 형태 등으로 볼 때 신라가 쌓은 석축에 사용되었던 돌로 보인다.

<칠중성 북쪽 임진강과 연결되는 도로에서 본 칠중성>

<남서쪽 적성면 소재지에서 본 칠중성>

파주 칠중성(七重城), 사적,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구읍리
칠중성은 해발 147m의 중성산 정상부와 그 남서쪽에 위치한 해발 142m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축조한 테뫼식산성이다. 전체 둘레는 603m이고 남북 폭은 198m, 동서 폭은 168m이다. 전체 고도는 북동쪽이 가장 높고 서벽에 비해 동벽의 추정 수구지와 진입로 부분이 현저히 낮다. 중성산은 해발고도가 낲은 편이지만, 서쪽과 북쪽 임진강변에 이르기까지 주변지역에 높은 산이 없기 떄문에, 정상부에서 북서쪽으로는 호로고루성, 북쪽으로는 육계토성과 주월리 일대, 남쪽으로는 적성면과 감악산, 남서쪽으로는 파평산 일대의 조망이 양호하다. 칠중성은 임진강 중류의 남쪽 연안에 위치하고 있어 관서지방과 한강유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삼국시대로부터 중요시 되어었던 산성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초기 군사요충지로 기록되어 있고, 특히 7세기 전반에는 신라와 고구려가 한강 유역의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항쟁하던 곳이다. 또한 7세기 후반에는 일시 고구려의 소유가 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신라가 고구려 통합전쟁시 교두부가 되었으며, 나당전쟁시 신라의 최북단 지역으로써 당군을 저지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1951년 한국전쟁 당시에는 UN군으로 참전한 영국군 그로스터샤 연대가 설마리 전투에서 중공군 3만여명을 맞아 혈전할 당시 C중대가 배치되었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