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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비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에 있는 무학대사탑비이다. 무학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적은 탑비로 무학대사탑 앞에 세워져 있다. 비문에는 그가 원나라에 들어가 나옹선사의 제자가 된일, 한양천도에 역할을 한 일 등이 적혀 있다. 원래 태종 10년에 변계량이 지은 비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조선후기 순조때 파괴되어 다시 세웠다. 고려시대에 만든 많은 탑비에 비해서 제작수법이 많이 떨어지며 단순한 4각받침돌 위에 비석을 세워놓고 있으며, 머릿돌도 지붕모양을 하고 있다. 원래 탑비가 세워졌던 받침돌과 머릿돌이 그 옆에 놓여 있다.

무학대사는 18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혜명국사에게 불교를 배웠으며 묘향산에서 수도하였다. 지공대사와 나옹선사에 만나 배웠으며, 풍수지리에 능했다고 한다. 조선 건국 이후 태조는 그를 왕사로 책봉하였으며 태조와 함께 새도읍지로 한양을 정하는 큰 역할을 했다. 회암사 주지로 지내다가 금강산 금장암에서 입적하였다. 조선초기를 대표하는 승려로 잘 알려져 있다.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에 세워져 있는 탑비>

조선후기 순조 때 파괴된 후 다시 세운 비석이다. 장식이 없는 사각형 받침돌 위에 비석을 올려 놓은 평이한 형태이다.

<비몸에 새겨진 글씨>

200여 년전에 세워진 비석이지만 글씨가 선명하지 못하다.

<뒤에서 본 모습>

<조선초에 만들어진 탑비의 받침돌과 머릿돌 일부>

<무학대사탑과 그 앞에 세워진 쌍사자석등>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비,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터에 세워져 있는 무학대사의 묘비로, 바로 뒷편에는 그의 묘탑(보물 제388호)이 함께 서 있다. 무학대사는 고려말·조선초의 이름난 승려로, 이름은 자초이고,무학은 그의 호이다. 18세에 출가하여 소지선사에게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으며, 혜명국사에게서 불교의 교리를 배운 후 묘향산에서 수도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는 태조의 부름을 받고 그의 스승이 되어 도읍지를 물색하기도 하였다. 그 후 회암사에서 머물다가 금강산의 금장암이라는 암자에서 입적하였다. 비는 높직한 4각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간결한 모습이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는 하늘을 떠 받들 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위를 향하고 있다. 비문에는 대사의 일생이 적혀 있는데 특히 원나라에 들어가 지공선사와 나옹선사를 만나 그들의 제자가 된 일, 한양천도에 큰 역할을 한 일, 회암사에 두 스승의 묘탑을 세운 일 등이 잘 나타나 있다. 태종 10년(1410)에 왕명을 받들어, 변계량이 비문을 짓고 공부의 글씨로 하여 비문을 새겨두었다 하나, 순조 21년1821)에 파괴되었고, 순조 28년(1828)에 다시 비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