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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용주사, 정조가 사도세자 현륭원 원찰로 삼은 사찰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화산 아래에 위치한 용주사(龍珠寺)이다. 정조가 용주사를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지키는 원찰로 삼으면서 사실상 세러 창건되었다. 여주 신륵사, 서울 봉은사와 함께 왕릉을 지키는 대표적인 원찰이다. 현 사찰 전각 대부분은 정조 때 새로 지은 것들이다. 용주사에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위패가 모셔졌으며, 정조 사후에 정조와 효의왕후의 위패가 봉안되었다. 특히 이 곳에서 부모의 은혜를 강조한 <부모부모은중경> 목판이 제작,보관하고 있어 정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다. 수원화성에서 현릉원으로 가는 능행길에 위치하고 있어 정조가 현릉원을 행차했을 때 잠시 들렀던 곳으로 보인다.

용주사는 일반 사찰과는 유교식 사당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사찰 입구앞 왕릉이나 서원, 향교처럼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사찰 출입문인 천보루는 사당처럼 삼문의 형식을 하고 있으며, 궁궐 전각등에 사용된 형태의 돌기둥을 사용하고 있다. 삼문에서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던 호성전까지는 박돌을 깔아 놓은 신도가 조성되어 있다. 주불전인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여러 전각들에서 당시 궁궐이나 관아건축 형식이 반영되어 있다. 당대의 화가인 김홍도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사찰 건축에 관련되어 있으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국보급 문화재인 용주사 동종(국보)이 이 곳에 있다.

<화성 용주사>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 현륭원 원찰로 삼으면서 크게 중건한 사찰이다. 일반 사찰과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위패를 모신 사당인 호성전을 두고 있으며, 홍살문이 세워져 있는 등 유교적인 특징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사찰이다.

<천왕문>

<들어가는 길>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에 들어가는 길에 판석을 깔아 놓고 있다. 길 양쪽으로는 글을 새겨놓은 돌들이 줄지어 있다.

용주사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시고 명복을 빌기 위해 원찰로 중건한 사찰이다. 다른 사찰과 다른 원찰로서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 출입문인 삼문과 홍살문, 그리고 길에 깔아 놓은 판석일 것이다. 삼문은 보통 궁궐이나, 사당, 서원 등에 사용하는 유교적인 예법을 반영한 문으로 사찰 출입문으로 사용하지 않지만 원찰 역할을 하는 봉은사 등에만 있는 양식이다. 삼문 양쪽으로는 중건 당시 세워진 행랑채가 있다. 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석탑이 있고, 서쪽편에는 최근에 만든 범종이 있는 불음각이 있다.

<홍살문>

일반적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왕릉, 서원, 향교 등에 세워지는 유교적인 성격의 출입문이다.

<용주사 출입문>

서원이나 사당처럼 삼문의 형식으로 문간채 사이에 솟을대문 형태로 지어졌다. 중앙문은 닫혀 있고, 혼령이 드나들 수 있도록 크게 틈이 있다. 양쪽에는 능행시 수행원들이 잠시 묵을 수 있도록 긴 행랑채를 두고 있다.

<출입문을 지키는 해태상>

삼문은 창건 당시에 세워진 건물로 여러 차례의 개수를 거쳐 현재는 15평이고 좌우의 행랑은 총 40평에 달합니다.

<삼문 안 오층석탑>

<천보루>

정조가 용주사를 중건할 때 세워진 건축물로 일반 사찰 누각과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기둥을 받치는 초석은 석조기둥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경복궁 경회루의 1층 기둥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궁궐 건축 양식을 사용했다고 볼 수있다.

<천보루 기둥을 받치는 긴 초석>

<요사채>

천보루 양쪽에는 요사채로 사용하는 건물이 회랑처럼 연결되어 있다. 사찰 건물이 아니라 권문세가의 저택을 연상시킨다.

<호성전으로 연결되는 신도>

요사채 오른쪽에는 판석이 깔려 있는 신도가 사도세자의 위패가 모셔진 호성전까지 연결된다.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인 호성전>

이 곳에는 사도세자, 혜경궁홍씨, 정조대왕, 효의왕후 김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매일 여섯번의 재를 올렸다고 한다. 경내의 판석이 깔린 신도를 비롯하여 삼문, 홍살문 등 유교적 특성이 있는 건물들이 있는 이유가 호성전에서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다. 당시 정조가 용주사로 여러번 행차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은 한국전쟁때 불타버린 것을 새로 중건한 것이다.

<용주사 주불전인 대웅보전>

조선후기 정조때 지은 건물로 당대의 사찰 건축과 궁궐 건축 기술이 합쳐진 건물이다. 앞면 3칸의 건물로 화려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화려한 단청에 용머리를 새겨 놓고 있으며, 금빛 글씨가 빛나는 ‘대웅보전’이라는 글씨가 젹힌 현판이 걸려 있다. 내부에는 김홍도가 관여했다고 알려진 탱화와 닫집 등이 있다. 대웅전 하단부 초석은 궁궐 건물에서 사용하는 장대석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붕에 치미를 사용하는 등 다른 사찰의 불전과는 다른 점이 많다.

<대웅전 옆 종각에 있는 동종(국보)>

상원사 동종, 성덕대왕 신종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범종이다. 신라종 양식을 따르고 있는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동종이다.  외형에서 보여주는 조형미나 겉면에 새겨진 비천상 등의 조각수법이 뛰어난 걸작이다.

<지장전>

<천불전>

<시방칠등각>

<대웅전 앞 요사채>

<맞은 편 종무소>

<용주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보물)>

정조대에 조성된 것으로 목판, 동철판,석판의 세종류가 있다. 김홍도가 제작에 참여하는 등 예술적으로도 상당히 수준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조의 부모에 대한 효심이 반영된 문화재이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