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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활자의 나라] 활자장, 활자를 보관한 장

1. 갑인자, 조선 대표활자, 2. 실록자와 정리자, 3. 한글활자, 4. 목활자, 5. 활자장.

활자장은 활자를 보관하는 장(欌)이다. 중앙박물관에서는 50만여 점에 이르는 금속활자와 함께 이를 보관했던 활자장들도 함께 소장하고 있다.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국가적으로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 활자 수량을 기록한 자보(字譜)를 만들고 책임자를 두어 관리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활자장들은 주로 17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금속활자를 분류하는 방법과 관리했던 사람들의 흔적들이 활자장 곳곳에 남아 있다.

활자장(活字欌), 활자보관의 수수께끼를 풀다.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왕권을 대표하므로 철저하게 보관하고 관리했습니다. 활자를 7장(欌)에 나누어 보관하고, 활자마다 수량을 기록한 목록인 자보(字譜)를 만들어 각장에 들어간 활자수를 기록하고 책임자를 두어 관리했습니다. 보관과 사용에 편리하도록 한자 자전(字典)과 달리 부수를 통폐합하여 축소하고, 획수보다는 생김새에 따라 분류했습니다. 또 자주 쓰는 글자와 그렇지 않은 글자를 각각 정간판(井間板)과 서랍(舌盒)에 나누어 보관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정리자를 보관한 장, 정리자장(整理字欌), 조선 1858년(철종9)

오른쪽 측면에 ‘정리자’ 패찰이 있고 안쪽 측널에 ‘小木匠 宋興龍 朴殷文 戊午造成(소목장 송흥룡, 박은문이 무오년(1858)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주자소(鑄字所) 화재 후 1858년 정리자를 다시 주조할 때 만든 장으로 11단까지는 서랍이 얕고, 아래 2단은 더 깊으며, 칸막이를 만들어 활자를 넣었습니다. 아래 위 쇠목에 잠금장치를 끼웠던 홈이 남아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실록자를 보관한 장, 실록자장(實錄字欌), 조선 18세기 추정

오른쪽 측면에 ‘실록자(實錄字)’ 패찰이 있으며 궁중용 기물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주칠(朱漆)을 한 서랍장입니다. 실록자를 보관했던 장으로 추정되며, 제작연대를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소나무로 만들었으며, 12단까지는 서랍이 얕고, 13~14단은 더 깊습니다. 13~14단 서랍에는 칸막이를 만들어 활자를 보관했습니다. 아래 위 쇠목에 잠금장치를 끼웠던 홈이 남아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위부인자(감인자체 활자)를 보관한 장, 위부인자장(衛夫人字欌), 조선 17세기

오른쪽 측면에 ‘위부인자(衛夫人字, 1434년에 주조한 갑인자의 별명) 패찰이 붙어 있어 갑인자 계열의 활자를 보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나무로 만들었으며 나무의 나이테 조사결과 17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밝혀져 무신자(戊申字, 네번째 주조한 갑인자)를 보관하려고 만든 것으로 추정된빈다. 서랍 깊이는 9단까지 같고 10단에서 12단까지 점차 깊어지며, 깊은 서랍은 내부에 칸막이가 있는 장간판(井間板)입니다. 두짝의 여닫이문을 달았던 경첩이 남아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한구자 보관방식을 알려주는 기록이 있는 서랍, 조선 1858년(철종 9)

한구자장의 서랍 바닥에 ‘-日.\月.ㅣ月.乙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월부(月部)에 속하는 활자들을 획수순이 아니라 글자의 형태별로 구분하여 보관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한구자 주조 기록이 있는 서랍 조선 1858년(철종9)

한구자장에 끼웠던 서랍입니다. ‘무오십이월초구군(戊午十二月初九準, 무오년 1월에 제작이 끝났다)’라는 기록이 있어, 1858년(철종 9) 무오년에 세번쨰 주조한 한구자를 넣었던 서랍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한구자 주조 기록이 있는 서랍 조선 1858년(철종9)

서랍 뒷면에 ‘한구주자장(韓構鑄字欌)’이라고 적혀 있어 1858년(철종 9) 무오년에 세번째 한구자를 보관한 장에 넣었던 서랍임을 알 수 입습니다. 한구자는 크기가 작고 가벼워 장도 그에 맞게 작게 만들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한구자의 목록(韓構字藪), 조선 18~19세기

한구자 6만 9천여 자를 7장(欌)에 나누어 글자마다 수량을 기록했습니다. 작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책의 형식이나 수록된 활자 수량으로 보아 1782년(정조 6) 정조의 명으로 다시 주조한 한구자의 목록으로 추정됩니다. 글자마다 측면에 붉은 색 둥근 점 또는 방점을 표시했는데, 5장 일부(日部)에 둥근 점이 표시된 글자들이 남아 있는 한구자 정간판(井間板) 글자들과 일치합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칸막이가 있는 한구자의 보관 서랍, 한구자정간판(韓構字井間板), 조선 1858년(철종9)

칸막이가 있는 한구자장 서랍의 위쪽에 칸마다 수납한 글자를 쓴 종이를 붙여 두었습니다. 일부(日部)에 속하는 글자들 가운데 자주 사용되는 글자를 보관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정리자 주조 기록이 있는 서랍, 조선 1858년(철종 9)

붉은 먹으로 ‘무오십일월십일 죽부준인(竹部準印)’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9월에 활자를 주조한 후 11월에 부수별로 시험 인쇄를 한 기록으로 추정됩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정리자 주조 기록이 있는 서랍, 1858년(철종9)

서랍 뒷면에 1858년(철종9) 정리자 주조 당시 참여한 장인들을 기록했습니다. 쇳물을 녹이고 주물하는 장인인 소로장(小爐匠)과 금속활자의 어미자(母字)를 나무 조각에 새기는 각수(刻手)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정리자 주조 기록이 있는 서랍, 조선 1858년(철종 9)

정리자장 서랍 뒷면에 1857년(철종8) 주자소에 불이 났을 때 불탄 수량과 새로 만든 수량 등 활자 주조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활자를 만든 장소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정리자 주조 기록이 있는 서랍, 조선 1858년(철종 9)

1857년(철종8) 주자소 화재 후 정리자와 한구자를 새로 주조했습니다. 이 때 다시 만든 정리자 보관 서랍의 뒷면에는 『整理鑄字咸豊戊午成(정리자 주조가 함풍 무오년에 이루어졌다)』고 기록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정리자 보관방식을 알려주는 기록이 있는 서랍, 조선 1858년(철종9)

정리자장 서랍에 ‘하목(下目)’과 ‘하족(下足)’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목부(目部)와 족부(足部)에 속하는 글자 중 맹(盲), 건(蹇)처럼 目과 足이 아래쪽에 위치한 글자를 보관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부수에 속하는 글자라도 글자 내에서 부수의 위치에 따라 구분해서 보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정리자 보관방식을 알려주는 기록이 있는 서랍, 조선 1858년(철종9)

정리자장 서랍에 ‘수(手).어(魚).치(齒).와(瓦)’ 부수들이 기록되어 있어 여기에 속하는 활자들이 수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수들은 조선시대 자보(字譜)에서 7장(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리자 역시 이 방식으로 분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수(手).어(魚).치(齒).와(瓦)’ 부수가 함께 수록된 『신정자수(新訂字藪, 임진자의 자보)』

칸막이가 있는 정리자 보관 서랍, 조선 1858년(철종9)

칸막이가 있는 정리자장 서랍 측면에 칸별로 넣은 글자를 적어 붙였습니다. 자전(字典)에서 이 글자들은 子, 广, 斗, 气, 皿, 米, 网, 襾, 釆 부수에 수록되어 있으나, 조선시대 자보(字譜)에는 미부(米部), 명부(皿部), 서부(西部)로 분류했으며 해당 활자를 6장에 보관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실록자를 보관했던 서랍 뒷면>

실록자를 보관했던 서랍 뒷면에 당나라 시인 두목의 시 <山行(산길을 거닐며)>의 일부분이 쓰여 있습니다. 이 시는 누가 쓴 것일까요? 책을 인쇄하는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 가운데 교정을 보거나 활자를 꺼내는 사람 등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썼을 것입니다. 업무 중에 문득 떠오른 두목의 시구절, 첫구절은 생각나는데 나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은 것일까요? <출처: 중앙박물관>


위부인자(갑인자체 활자) 보관 서랍, 조선 17~19세기

칸막이가 있는 정간판(井間板)과 달리 칸이 나누어지지 않은 얕은 서랍이며 『주자목록』에 설합(舌盒)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자주 쓰지 않는 활자들을 부수별로 적절히 분류하여 보관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칸막이가 있는 위부인자(갑인자체 활자) 보관 서랍, 조선 17~19세기

칸막이가 있는 서랍에 칸별로 보관한 글자와 활자수를 대자(大字)와 소자(小字)로 나누어 적은 한지를 붙였습니다. 1909년에 작성한 위부인자 목록인 『주자목록』의 4장 정간판에 기록된 활자수와 일치하여, 이 때 정리한 활자를 보관한 서랍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정유자(여섯번 째 주조한 갑인자)의 목록, 규장자수(奎章字藪), 조선 1777년(정조1) 추정

1777년에 주조한 여섯번 째 갑인자인 정유자(丁酉字) 총 150,170자를 7개 장에 나누어 보관한 수량을 기록한 목록입니다. 일반적인 자전(字典)과 달리 부수를 109개로 나누고 옥부(玉部)부터 수록했으며, 부수별 글자도 획수순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생생자보(生生字譜)』 외에 현존하는 조선시대 활자 목록은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글자를 배열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위부인자(갑인자체 활자)의 목록, 주자목록(鑄字目錄), 대한제국 1909년

위부인자(갑인자의 별명) 203,921자를 7장에 나누어 기록한 목록으로 1909년 주자소에서 작성했습니다. 장별 활자는 정간판(井間板)과 설합(舌盒)으로 나누어 기록하고 글자마다 수량을 표시했습니다. 당시 남아 있던 갑인자체 활자를 모아 수량을 파악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