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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보물), 고려말 공민왕 왕사였던 보우의 승탑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태고사에 있는 원증국사탑(보물)이다. 북한산 봉우리와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태고사 뒷편 전망좋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탑은 높이 4 m이며, 3단으로 된 기단 위에 탑신과 머리장식을 올렸다. 기단은 기둥모양과 연꽃무늬가 새겨진 아래받침돌 위에 꽃무늬가 새겨진 8각의 가운데 받침돌, 원형에 가까운 윗받침돌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의 몸돌은 원형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올렸다.

원증국사(圓證國師)는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중흥사에 머물면서 공민왕의 왕사를 지내는 등 큰 영향을 미쳤던 승려 보우이다. 그는 어린나이에 양주 회암사에 출가하여 여러 사찰에서 공부를 공부했으며, 중국에도 유학했다. 공민왕때 신돈의 뒤를 이어 왕사가 되었으며, 고려 우왕때 이곳 태고사에서 입적했다. 조계종 다음을 큰 불교 종단인 태고종의 종조(宗祖)로 추앙받고 있다.

태고사는 원증국사가 머물렀던 중흥사에 딸린 작은 암자였다. 불전과 요사채를 갖춘 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린 것을 복구한 것이다. 원증국사가 머물렀던 중흥사는 태고사 아래쪽에 있던 큰 사찰로 병자호란 이후 북한산성이 축조,보강되면서 승병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큰 홍수로 파괴된 후 터만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불전 등이 세워지고 있다.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보물)>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로 활동한 승려 보우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오른쪽에서 본 모습>

탑은 3단으로 된 기단 위에 탑신과 머리장식을 올렸다. 고려말에 조성된 것으로 통일신라나 고려초의 승탑에 비해 조형미나 조각수법 등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각면에 안상이 새겨진 아래받침돌과 그 앞에 놓여진 배례석>

<가운데 받침돌, 윗받침돌>

가운데 받침돌은 원기둥을 조각하여 8각형으로 만든 후 그 안에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윗받침돌에도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신>

몸돌은 석종형 승탑처럼 둥근 기둥모양으로 만들었는데 특별한 장식을 새기지는 않았다.

<지붕돌, 머리장식>

지붕돌은 수평을 이루며, 모퉁이에는 투박한 꽃장식을 하고 있다.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이 있다.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보물)>

탑은 북한산성 내 승병들의 본부였던 중흥사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세워져 있다. 앞쪽에 같은 모양의 복원한 승탑이 있다.

<원증국사탑비(보물)>

언덕아래 암자였던 태고사 경내에 세워져 있다.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 보물,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고려 후기 승려인 원증국사 보우(1301~1382)의 사리탑이다. 보우의 법호는 태고이며, 왕사.국사를 거쳐 82세로 입적하자 이곳에 사리탑을 세우고 탑 이름을 ‘보월승공’이라 하여 영골을 모셨다. 사리는 이곳만이 아니라 양산사.사나사.청송사 등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이에 보우의 또 다른 사리탑이 경기도 양평의 사나사에 있어 경기도 유형문화재 72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원증국사탑의 형태는 3단으로 이루어진 기단 위로 탑신을 올린 후 독특한 모습의 머리장식을 얹었다. 원형의 탑신 몸돌은 위쪽으로 좁아져서 지붕돌 밑면에 들어맞게 되어 있다.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비(보물 611호)의 건립이 1385년(우왕11)이므로 이 사리탑은 그 이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3년)

<출처>

  1. 쌍봉사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