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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선림원지 승탑(보물)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선림원지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승탑(보물)이다. 이 승탑은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던 것을 각 부재를 수습하여 복원한 것으로 지금은 기단부만 남아 있다. 원래는 절터 뒷편으로 50m 쯤 올라간 중턱이라고 한다. 네모난 바닥돌과 8각의 아래받침돌은 같은 돌로 2매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받침돌 각 면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으며, 안상안에는 사자 4쌍이 새겨져 있다. 아래받침돌 위에는 연꽃이 새겨진 괴임돌이 놓여 있으며, 그 위에 북 모양의 중간받침돌과 윗받침돌이 한돌로 만들어져 놓여 있다. 가운데 받침돌에는 용이 입체적으로 새겨져 있는데, 승탑에 조각된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탑신은 남아 있지 않으나 입체적인 조각수법이나 독창적인 양식 등이 돋보인다.

선림원(禪林院)은 강원도 동해안 양양과 속초지역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인 56번국도가 지나가는 구룡령 아래 계곡에 위치한 큰 사찰이었다. 통일신라 때(9세기) 홍각선사가 창건한 이 사찰은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선종계열 사찰이었다. 구룡령을 넘기전에 잠시 머물수 있었던 곳으로 많은 승려들과 여행객들을 위한 쌀을 씻은 물이 끝없이 흘러내린다고 해서 미천골로 불렸다. 1948년에 명문(銘文)이 있는 신라 범종이 발견되었으며, 절터에는 석탑(보물)을 비롯하여 석등(보물)·홍각선사탑비(보물)·승탑(보물) 등이 전해지고 있다.

<양양 선림원지 승탑(보물)>

탑신은 없고 기단부만 남아 있지만 섬세하면서 입체감이 넘치는 조각수법과 독창적인 양식 등이 돋보인다.

<아래받침돌>

바닥돌과 아래받침돌 아랫단은 같은돌로 만들어졌다. 아래받침돌 아랫단 옆면에는 안상을  새기고 그 안에 교대로 사자 1쌍씩을 새겨 놓았다.

<가운데받침돌과 윗받침돌>

북모양의 가운데 받침돌과 윗받침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가운데받침돌에는 구름속을 날고 있는 용을 생동감 넘치게 조각해 놓고 있다.

<뒷편에서 본 모습>

<윗받침돌>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그 위에 탑신을 올려 놓는 괴임돌을 조각했다.

<절터 뒷편에 세워져 있는 승탑>

<양양 미천골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선림원지 절터>

양양 선림원지 승탑, 보물,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부도는 원래 지대석 위에 상.중.하대의 기단부를 놓고 그 위에 탑신석, 옥개석, 상륜부가 갖추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 부도는 일제침략기에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1965년에 각 부재를 수습하여 복원한 것으로 지금은 기단부만 남아 있다. 원 위치는 뒷산 중턱의 50 m쯤 올라간 곳이다. 네모난 지대와 8각의 하대까지가 같은 돌로 2매로 구성되었는데 지대 부분은 땅위 드러난 부분만 다듬었다. 하대 8각의 각 면에는 각기 안상이 1구씩 있으며 안상안에 교대로 사자 1쌍씩 4쌍이 새겨졌다. 하대 위에는 둥근 모양의 연화대석이 놓여 있고, 그 위에 간주 모양의 중대석과 원형평면의 상대석이 한돌로 만들어져 놓여 있다. 중대석 표면에 운룡문이 있는데 이는 부도 중대석에 나타나는 운룡문의 시원이라 할 수 있다. 상대부분에는 앙련이 장식되고, 윗면에는 탑신을 받치기 위한 괴임대가 새겨져 있다. 이 부도의 건립연대는 신라 정강왕 원년(886)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0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