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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가림성(사적), 백제 동성왕이 금강 하류 요충지에 쌓은 산성

충남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가림성(사적)이다. 이곳은 웅진성과 사비성을 지키기 위해 쌓은 산성으로 정상부를 둘러 쌓은 테뫼식산성이다. <삼국사기>에 백제 동성왕이 수도 방어를 위해 금강하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산성의 형태는 돌과 흙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데 백제 고유의 토성과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석성의 형태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성의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적정한 수의 군사로 침입하는 적의 길목을 제압할 수 있는 요새와 같은 곳이다.

부여 가림성은 성흥산성으로도 불리웠으며 해와 달이 뜨는 풍경이 아름다운 아름다운 장소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백제 도성인 사비성을 가로 지르는 백마강 하류쪽과 주변 논산 주변 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삼국시대 이후에도 군사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산성 아래에는 후삼국시대 고려의 명장 유금필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부여 가림성(사적)>

백제 동성왕이 웅진을 방어하기 위해 금강 하류 군사적 요충지에 쌓은 산성이다. 토성이 주를 이루는 일반적인 벡제 성곽과는 달리 돌과 흙을 섞어 산성을 쌓았다. 한성기 백제 이후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산성 아래에서 보이는 성흥산>

해발 260 m 정도의 낮은 산이지만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금강 하류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림성 오르는 길>

<가림성 성벽>

경사진 지형에 흙과 돌을 섞어서 산성을 쌓았다. 성흥산 정상부를 둘러쌓은 전형적인 테뫼식 산성이다. 산성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공략하기 힘들것으로 보인다.

<가림성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가림성 내부>

우물터, 창고로 추정되는 건물터 등이 남아 있다고 한다.

<가림성 남쪽 성벽>

<가림성 사랑나무>

금강을 바라보는 망루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점에 우뚝 솟아 있는  고목. 수령이 400여년 된 나무로 ‘사랑나무’라 불린다. TV드라마 배경되기도 했던 곳으로 일출.일몰 장면이 아름다운 곳이다.

<가림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금강하류 강경읍 일대>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가림성 아래에 있는 사당>

후삼국시대 고려의 명장 유금필이 이곳에 머무를 때 빈민구제를 했음을 기리는 사당이다.

<가림성 대조사>

가림성 아래에 위치한 백제 고찰 대조사(大鳥寺)에는 이 사찰을 크게 중건혐서 고려초에 조성한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이 있다. 고려초 금강하구를 장악했던 유력한 호족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흥산성(사적)
이 성은 본래 가림성으로 백제 동성왕 23년(501)에 백제의 도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금강 하류의 요충지인 이곳에 돌로 쌓은 성으로 옛 지명과 축성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산성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성의 둘레는 1,500 m 이고 성벽의 높이는 대략 3~4 m 이며 성의 외벽은 돌로 쌓고 안쪽은 호를 파서 그 흙으로 석축의 경사지에 붙여 쌓았다. 금강하류 일대를 한눈에 관망할 수 있는 요충지로 서기 662년 백제 부흥운동 당시 이곳을 공격하던 당나라 장수 유인궤도 성이 견고하여 두려워 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성내에는 3개소의 우물과 군창지로 추정되는 건물지, 초석 등이 남아 있으며 성흥산의 동남쪽 중터에는 고려초기 천연암석을 이용하여 만든 높이 10 m의 미륵보살입상(보물 217호)과 황금새의 전설로 유명한 대조사가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0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