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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태인현 관아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에 남아 있는 옛 태인현 관아 건물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태인현감이 근무했던 동헌과 관아에서 설치했든 큰 규모의 누각건물인 피향정(보물)이 남아 있다. 동헌은 조선후기 순조 때 (1816)에 새로 지은 건물로 <청녕헌>이라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은 앞면 6칸으로 지방관아 동헌 중에는 그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당시 전라감영 선화당을 지은 이름난 목수가 지었다고 전해지며 형태나 제작수법 등이 상당히 뛰어난 건물이다. 관아에서 큰 행사를 치루기 위해 설치했던 피향정 또한 그 규모가 크고 제작수법이 뛰어나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정자건축으로 손꼽힌다.

태인현은 백제 때 처음 설치되었던 태산현과 인의현이 조선초 태종 때 합쳐서 생긴 조선시대 지방행정조직이다. 부안.고부.정읍.김제 등 주변지역과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로 산악지대에서 넓은 호남평야가 시작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신라 때 최치원이 고을 수령을 지냈으며, 부근에 최치원과 정극인을 모신 무성서원이 있다. 태인동헌은 동학혁명당시 농민군이 점령했던 곳으로 전봉준의 농민군 주력이 태인동헌 뒷산인 성황산전투에서 패하자, 이 곳에서 군대를 완전히 해산하였다고 한다.

<옛 태인현 관아>

태인현감이 근무하던 동헌 건물만 남아 있다. 뒷편 객사가 있던 자리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태인 동헌>

앞면 6칸으로 지방관아 건물 중에는 비교적 크고 웅장하게 지었다. 오른쪽 3칸은 넓은 대청마루가, 오른쪽 3칸은 온돌방이 있다.

<대청마루 앞>

<‘청녕헌’이라 적힌 현판>

<처마와 공포>

서까래는 겹처마를 하고 있으며, 지붕을 받치는 공포에서 이 건물의 지은 목수의 뛰어난 솜씨를 알 수 있다.

<옆쪽에서 본 모습>

온돌방 옆 1칸은 책이나 문서 등을 보관하는 다락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바깥쪽에서 본 모습>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지붕을  상당히 높게 만들었으며 구조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잘 지은 건물임을 알 수 있다.

<태인현 읍치가 있던 태인면소재지>

피향정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뒷편으로 동학군이 마지막 결전을 벌렸던 성황산이 보인다.

<태인현 읍치 가운데 위치한 피향정(보물)>

관아에서 공식행사를 위해 설치하는 누각으로 남원 광한루와 함께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누각건축물이다.

<피향정 앞 마당에 모아놓은 태인현 고을 수령을 역임한 인물들의 공덕비>

제일 안쪽에 동학혁명의 발단이 되었던 고부군수 조병갑의 아버지 조규순의 공덕비가 있다.

태인동헌,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
이 건물은 조선시대 태인 고을의 수령이 업무를 보던 청사이다. 이 동헌은 조선 중종 때 태인현감 신잠이 세웠으며, 현존 건물은 순조 16년(1816)에 다시 세운 것이다. 건물 정면에는 고을을 편안하게 잘 다스린다는 뜻의 <청녕헌>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전설에 따르면 전라감영의 선화당을 지은 목수가 3천냥의 비용으로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여 지은 건물이라 한다. 이 동헌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동헌 중에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