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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비림박물관] 3실, 역대 서체들을 살펴볼 수 있는 비석들.

시안 비림박물관 3실은 역대 서체들을 살펴볼 수 있는 비석들을 모아서 전시하고 있다.  한대 비석 《희평석경》 잔석, 《조 전비》 등에서는 초기 예서를 볼 수 있으며 서진 《사마방비》는 예서에서 해서에로 변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진나라 이사가 만든 전서 글씨로는 당나라 《미원신천시서》가 있으며, 수당 시대 해서채 걸작으로 꼽히는 《장회각비》 등이 있다. 특히, 초서 걸작으로 당나라 초서의 대기 회소와 장욱이 쓴 <회소천자문>과 <단천자문>, <두통첩> 등을 들 수 있다.  역대 비석을 통해 중국 서예의 발전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초서 대가 장욱(張旭)의 대표작인 단천자문(断千字文, Broken Stele of Thousand Character Classic) 비석이다. 장욱은 당나라 현종 때 활동했다. 술에 취해 자유롭게 붓을 휘둘렀아고 하여 광초(狂草)라고 부르며 자유분방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고유의 패턴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단천자문(断千字文, Broken Stele of Thousand Character Classic), 당, 장욱 서>

<단천자문(断千字文, Broken Stele of Thousand Character Classic), 당, 장욱 서>

회소초서천자문(懷素草書千字文) 은 당나라 승려 회소(懷素)의 글씨를 명나라 때 비석에 새겨놓은 것이다. 그의 서체는 자유분방하게 휘갈겨 쓴 장욱의 광초(狂草)를 따르고 있다.

<회소초서천자문(懷素草書千字文), 명 1470년, 회소 글씨>

<회소초서천자문(懷素草書千字文), 명 1470년, 회소 글씨>

장진 율공이첩(藏真, 律公二帖)은 당나라 회소가 쓴 글씨를 북송 때 비석에 새긴 것이다. 《장진첩(藏真帖)》에 56자, 《율공첩(律公帖)》에 92자가 적혀있다.


<장진 율공이첩(藏真, 律公二帖), 북송 1093년 석각, 회소 서>

언수 초서 및 두통첩(彦修草書·肚痛帖)은 북송 때 승려 언수가 《入洛诗》 등의 쓴 초서와 장욱의 글씨 《두통첩(肚痛帖)》을 모각하여 만든 비석이다.


<언수 초서 및 두통첩(彦修草書·肚痛帖), 북송 1058년 석각, 각석 언수 장욱 서>


<언수 초서 및 두통첩(彦修草書·肚痛帖), 북송 1058년 석각, 각석 언수 장욱 서>

전서체를 대표하는 당나라 비석인 미원신천시서비(美原神泉詩序碑)이다. 비석의 앞.뒤면에 전서체로 글씨가 새겨져 있다. 미원현에 있는 신천(神泉)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서문과 시가 적혀 있다. 1948년 시안 비림박물관으로 옮겨왔다.


<미원신천시서비, 당 688년, 위원단 찬.서 가언숙 시 윤원개 서>

사마방잔비(司馬芳殘碑)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사마의의 아버지 사마방의 일대기를 기록해 놓은 비석으로 서진 때 만들어진 비석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1952년 시안에서 발굴되었다. 예서에서 해서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글씨체이다.

<사마방잔비(司馬芳殘碑, Broken Stele of Sima Fang), 서진. >

건덕6년비(建德六年碑)는 비석에 새겨진 글씨를 읽을 수는 없지만 특정 인물의 업적을 적은 묘비로 추정되고 있다. 남북조시대 서예와 비석의 형태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건덕6년비(建德六年碑), 북주 577년,>

당나라 해서체를 대표하는 비석인 장회각비(藏懷恪碑)이다. 당나라 관리 장회각이 돌궐 등 서역 유목민과의 전쟁에 참전한 공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당대 명필 안진경이 말년에 쓴 글씨이다. 그의 글씨 스타일이 완성된 시기의 글씨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 여겨지고 있다.

<장회각비(藏懷恪碑, Stele of Zang Huaike), 당 763년, 안진경 찬.서.>

화엄사두순화상행기(華嚴寺杜順和尚行記)는 두순화상의 일대기를 적은  비석이다. 두순(杜順)은 당나라 화엄종을 열었던 고승이다. 화엄사는 시안시 장안구에 있던 사찰이다.


<화엄사두순화상행기(華嚴寺杜順和尚行記), 당 852년, 두은 찬 동경인 서>

비구니법완선사비(比丘尼法琬禪師碑)는 당나라 왕족 집안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왕실 일족이 부친의 명복을 위해 어린 딸을 절에 보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비구니법완선사비(比丘尼法琬禪師碑), 당 709년, 석승원 찬 유흥단 서>

우효현비(于孝頭碑)는 우효현의 가족과 삶을 기록하고 있다. 섬서성 푸핑현에서 1823년 발굴되어 시안 비림으로 옮겨졌다.


<우효현비(于孝頭碑, Stele of Yu Xiaoxian), 당>


<이이간가묘비(李夷简家庙碑), 당 820년, 배도 찬 소호 서>

<지해법사비(知該法師碑), 당 639년, 석명준 찬 석명해 서>

<흥경지 설연시(興慶池御宴詩), 장자정 등 찬,>

<북송 때 흥경지(興慶池) 연못을 방문한 인사들이 남기 시(始)들을 새겨놓고 있다.>

<절계민 신도비(折继閔神道碑), 북송 1118년, 장숙야 찬 채정 서 및 제액>


<덕응후비(德應侯碑), 북송 1084년, 장릉 찬 및 서>

<제3실 뒷편 마당.>

제3실
이곳에는 역대의 각종 서체로 된 진귀한 비림이 진열되어 있다. 전서로는 당나라의 《미원신천시서》, 송나라의 《전서목록편방자원》 등이 있다; 예서로는 한나라의 《희평석경》 잔석, 《조 전비》, 전진의 《광무장군비》와 《등태위사비》 등이 있다, 진나라의 《사마방비》는 예서에서 해서에로 변화 발전한 전형적인 글씨체이다; 《맹현달비》, 《안근례비》, 《곽가묘비》, 《장회각 비》 등은 모두 수당의 해서 명비이다. 수나라의 《지영천자문》, 당나라의 《회소천자문》과 장욱 의 《두통첩》 등은 국내외에 이름이 알려진 초서 걸작이다. 이러한 비석들을 통해 중국의 서법 예 술이 발전 변화한 개황을 이해할 수 있다.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