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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일성왕릉(사적), 신라 7대 일성왕

경북 경주시 탑동에 있는 신라 제7대 일성왕(逸聖王, 재위 134~154)의 무덤이다. <삼국사기>에 일성왕은 성은 박씨이며 3대 유리왕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북쪽 변방을 침입한 말갈인을 막고, 농토를 넓히고 제방을 쌓는 등 농업을 권장했으며 사치풍조를 멀리하게 했다. 신라 초기에 조성된 왕릉으로 그 존재가 알려진 것은 조선후기인 영조 6년(1730) 이후라 한다.

<경주 일성왕릉(사적)>

일성이사금이 즉위하다 (134년 08월(음)),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이 왕이 되었다. 유리왕(儒理王)의 맏아들이다. 왕비는 박(朴)씨인데,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이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일성 이사금, 한국사데이타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일성이사금이 죽다.
(154년 02월(음)), 21년(154) 봄 2월에 왕이 돌아가셨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일성 이사금, 한국사데이타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일성왕릉 경주 남산 북쪽편 해목령 아래 경사진 지형에 위치하고 있다. 봉분 지름 15 m, 높이 5m인데  주위 환경 등으로 볼 때 돌방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후대에 여러차례 정비한 것으로 보이며 경주 오릉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왕릉 조성내력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일성왕릉 들어가는 길>

<일성왕릉 봉분>

<옆에서 본 모습>

일성왕릉 뒷편으로 남산 북쪽 해목령과월성을 지키던 남산 신성이 있었다. 왕릉 앞으로는 남간사 절터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당간지주가 남아 있으며, 그 너머로 박혁거세 탄생설화가 있는 경주 나정(사적)이 있다.

<왕릉 뒷편 경주 남산>

<왕릉 앞 경주 나정(사적)이 있는 지역>

신라 일성왕릉(逸聖王陵, 사적), 경북 경주시 탑동 산 23
이 능은 신라 제7대 일성왕(逸聖王, 재위 134~154)을 모신 곳이다. 경주 남산의 북쪽인 해목령에서 뻗어 내리는 능선의 서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일성왕의 성은 박씨(朴氏)인데 <삼국사기>에는 제3대 유리왕(儒理王)의 맏아들로, <삼국유사>에는 제3대 유리왕의 조카 혹은 제6대 지마왕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왕은 농사짓는 땅을 늘리고 제방을 수리 하여 농업을 권장하였으며, 백성들이 금은주옥(金銀珠玉)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왕릉의 봉분은 지름 15m, 높이 5m인데 둘레의 돌이나 주위 환경으로 보아 내부 구조는 돌방(石室]으로 추정된다. 이 능은 조선 영조 6년(1730) 이후에 알려지기 시작한 왕릉이다. 한편 이 왕릉은 <삼국사기>에 남산 해목령에 장사지냈다는 경애왕릉(景哀王陵)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5.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타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