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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서계 박세당 고택 사랑채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수락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조선후기 대표적인 중농주의 실학자인 서계 박세당이 살았던 고택이다. 건물은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수락산을 등지고 도봉산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주변 경치가 상당히 수려하고, 수락산 계곡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곳이다. 사랑채는 앞면 5칸, 옆면 2칸의 비교적 큰 규모의 건물이며,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누마루가 사랑채 끝에 붙어 있다. 원래는 안채, 안사랑, 바깥사랑, 행랑채를 갖춘 양반가의 대 저택이었으나 한국전쟁때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는 사랑채만이 남아 있다.

<의정부 박세당 고택>

지금은 사랑채만 남아 있지만 집터가 상당히 넓어 보인다. 마당에는 은행나무 고목이 심어져 있다. 공자가 공부했던 행단(杏壇)을 본 받아 일반 살림집이 아닌 학문을 연구하고 저술을 하기 위해 이곳에 집터를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

<왼쪽에서 본 모습>

사랑채 건물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앞면 5칸의 규모로 오른쪽으로 누마루를 달았으며, 넓은 마루를 두고 있다. 사랑채에 손님이 묵을 수 있도록 방을 많이 두고 있다. 경치가 좋은 수락산 계곡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찾아오는 손님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청마루>

<누마루>

건물 오른쪽에는 조선후기에 크게 유행했던 누마루를 달아내었다. 3면이 개방된 구조로 정자처럼 시원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누마루가 연결된 오른쪽에는 넓은 마루를 두고 있다. 서원 강당과 비슷한 건물 형태로 넓은 마루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학문을 논했을 것 같은 분위기이다.

<왼쪽 온돌방>


<건물 앞 툇마루>

툇마루는 통로로 사용할 목적이 아니라 걸터 앉아 도봉산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랑채 정면으로 보이는 도봉산>

<뒷편 수락산>

<사랑채 뒷편 건물>

사랑채 뒤에는 새로 지은 한옥건물이 있는데, 선생을 기리는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보인다.

서계 박세당은 조선후기 현종대 활동했던 대표적인 중농주의 실학자이다. 그는 40세에 관직을 그만둔 뒤 이 곳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농사에 관련된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의 아들 박태보는 숙종때 인현왕후 폐위에 반대하다 죽었으며 그를 모신 서원인 노강서원이 서울 노량진에 있다가 60년대에 이 곳 수락산 자락으로 옮겨다고 한다.

<수락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한 노강서원>

60년대에 복원한 건물이지만 오래된 서원건물처럼 소박하고 단정한 멋이 있다. 박세당의 아들인 박태보를 모신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폐쇄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서계 박세당사랑채 (西溪朴世堂舍廊)
조선 후기 실학자 서계 박세당(1629∼1703) 선생이 저술 활동을 하던 건물이다. 선생은 조선 현종 1년(1660)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자리에 올랐으나 40세에 관직을 그만두고 이곳에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또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체험한 것을 토대로 그의 대표적인 농학서 『색경』을 저술했다. 처음에는 안채와 안사랑, 바깥사랑, 행랑채를 갖춘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규모였으나,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는 바깥 사랑채만 남아 있다. 사랑채 규모는 앞면 5칸·옆면 2칸 반으로 누마루가 덧붙어 있어 乙자형 구조로 되어 있다. 사랑채는 동쪽의 수락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서향집에서 왼쪽을 향하고 있다. 보통 좌향의 배치에서는 남향이나 남서향, 남동향을 따르는 것에 비해 이 가옥은 방향보다 배산임수의 자연지세에 따라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