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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랑기포, 불랑기자포(보물)

불랑기포는 명나라에서 도입한 서양식 후장포이다. 포르투갈인에 의해 중국에 전해져 일본과 조선에서도 사용되었다. 문헌에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군에 평양성 전투에서 사용하면서 깊은 인상을 주었고, 징비록에는 불랑기를 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실제로는 서울 군기시터와 목동에서 임진왜란 이전 명종 때(1563년) 제작된 자포가 여러점 발견되어 그 이전에 국산화 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재장전이 빠르고 적을 조준하기 쉬워 주력 화포로 자리잡았으며 구한말까지 꾸준히 개량되면서 사용되었다.

국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랑기 자포와 모포이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5년에 만들어졌다. 모포는 초기에 비해서는 작아지고, 후대 불랑기포에 비해서는 큰 편이다. 포이가 없는 점이 특이하다.

<가장 오래된 불랑기 모포와 자포(보물)>

4점의 불랑기 자포는 서울 군기서터와 목동에서 공사 중 발견되었다. 형태와 제원이 거의 같고 제작자만 다르다. 같은 장소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563년에 장인 김석년이 만든 지통으로, 무게는 75근(45kg)이다.’라는 내용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불랑기자포, 1563년, 1호건물지 출토, 보물(2012)>

군기시 보물, 불랑기자포
불랑기자포란 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시키는 화기로 조선시대 유일한 후장식(뒤에서 장전하는 방식) 화포이다. 자포에 실탄을 장전한 뒤 발사틀 구실을 하는 불랑기모포에 삽입해 발사한다. 불랑기자포는 1호 건물지 도기 안에서 여러 점의 총통과 함께 출토되었다. 자포 표면에는 글자가 적혀 있어 명종 18년(1563)에 75근 8량으로 김석년이라는 장인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서울역사박물관, 2015년)

육군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불랑기자포(보물, 1986)이다. 서울 목동에서 지하철 공사 중 발견되었다. ‘1563년에 장인 박명장이 만든 지통으로, 무게는 75근이다.’ 라는 내용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불랑기 자포, 1563년, 보물 1986, 육군박물관>
<옆에서 본 모습>

불랑기 자포, 1563년, 보물, 육군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임진왜란 발발 30년 전에 조선이 불랑기포를 국산화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서울시립박물관 소장품은 조선이 대표적인 화기 생산 기관인 군기시의 터에서 출토된 것이다. 두 불랑기 자포는 형태와 제원이 거의 같고, 장인의 이름의 이름을 제외하면 명문이 동일하다. 따라서 같은 장소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명문 내용으로 보아 당시에는 불랑기 자포를 지통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진주박물관특별전, 2024년)

임진왜란 이전에 만들어진 불랑기자포를 기준으로 재현한 불랑기 모포이다. 후대 불랑기포에 비해서 상당히 큰 규모이다.

<불랑기 모포(모형)>

1619년 <화기도감의궤> 편찬 후 표준화된 것으로 보이는 불랑기포이다. 이전에 비해 크기가 작아졌지만 형태의 변화는 거의 없다.

<불랑기포, 조선 1619년, 국립중앙박물관>
  1. 불랑기포, 조선 1619년, 국립중앙박물관
    <화기도감의궤> 편찬 4년 후에 만든 불랑기포이다. 1605년에 제작된 불랑기포와 비교하여 크기가 작아졌을 뿐 형태는 매우 유사하다. 이후에 제작되는 불랑기포에 포이가 있는 것과 달리 포이가 없다. 이는 1605년 제작된 불랑기포나 <화기도감의궤>의 그림으로 보아 고리 모양의 정철과 결합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진주박물관특별전, 2024년)
<‘화기도감의궤’에 그려진 고리 모양의 쐐기>
  1. <화기도감의궤>에 그려진 고리 모양의 쐐기, 정철, 조선후기, 국립중앙박물관
    불랑기포 등 선회포에 결합된 정철이다. ‘Y’자 형태이며, ‘U’자형의 고리가 달려 있다. <화기도감의궤>에 그려진 쐐기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처럼 화기와 결합하여 가동을 돕는 금속 쐐기는 <신기비결>에는 기가, <용원필비>에는 정철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안내문, 진주박물관특별전, 2024년)

조선후기 숙종 때 통제영에서 활동했던 ‘신기립’이라는 명인이 제작한 불랑기포이다. 규격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불랑기포, 조선, 1666~1678, 중앙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 신기립의 이름이 남아 있는 불랑기포
    불랑기포, 조선, 1666~1678, 중앙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통제영의 감조군관 신기립이 1666년부터 1678년까지 제작한 불랑기포이다. 김애립, 박홍일, 김덕신 등의 장인이 함께 했다. 선조와 광해군 대 제작된 불랑기포와 달리 포이가 있고, 정철이 부착되어 있다. 규격화의 양상이 뚜렷하다. (안내문, 진주박물관특별전, 2024년)
<블랑기 4호, 블랑기자포(1666년), 고궁박물관>

정조 때 장용영에서 제한 불랑기포이다. 장용영에서 1789년 11월에 만들었다는 명문이 남아 있다.

<불랑기포, 조선 1789년, 국립고궁박물관>

불랑기포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면서도 꾸준히 만들어졌고 강화도 돈대에 불랑기포가 설치되었다.

<불랑기 5호, 조선후기>
<동치 13년명 블랑기포 제5호>

동치 13년명 블랑기포 제5호,
1874년(고종11).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계기로 흥선대원군 주도하에 제조된 것으로 모포는 구경 7.8cm, 길이20.3cm이고 자포는 구경 5.8cm, 길이 19.3cm이다. (안내문, 육군박물관, 2012년)

불랑기포
조선은 임진왜란 이전에도 불랑기포를 제작했다. 군기시 유적 출토품 및 서울 목동 발견 불랑기 자포에서 명종 18년(1563)에 해당하는 명문이 확인되었다. 조선이 불랑기포를 본격적으로 제작.운용한 것은 임진왜란 발발 이후 평양성 전투(1593)에 명군의 활약을 목격한 이후이다. 불랑기포는 재장전이 빠르고, 적을 조준하기 쉬었다. 이러한 특성은 청(후금)의 기병을 상대하기에 적합했고, 17세기 이후부터 불랑기포는 조선의 주력화포로 자리잡았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불랑기포(佛郞機砲)
0 개요: 후미장전식 선회포로, 포르투갈에서는 베르초라고 불렀음. 명과 조선에서 서용에서 온 화포라는 뜻으로 불랑기포라 부름. 14세기경 유럽에서 등장. 장전된 여러 자포를 모포에 갈아 끼워 운용. 크기가 작아 위력은 약했으나 조준이 자유롭고 사격이 빨라 성벽이나 배 위에 설치하여 운용
0 제원 길이 10cm 내외, 55~60kg, 구경 3.6cm 내외(불랑기 4호 기준)
0 소모 화약 및 탄환: 화약 113g /연환 1발, 숙종 대 이후에는 한 번에 여러 개의 탄환을 쏨
0 구조와 특징: 모포에 자포를 끼워 발사하는 구조. 포이(砲耳, 포의 양 측면에 튀어나온 돌기로, 화포의 사격 각도를 조정하기 우해 쓰임)와 정철(正鐵, 포이에 뀌우는 쐐기로 화포를 바당이나 포가에 고정하는 떼 쓰임)이 있어 목표를 노리고 포를 상하좌우로 움직이면서 발사 가능. 여분의 자포를 준비하면 연소갈사도 가능. 조선은 크기에 따라 1호~5호로 나누어 운용했고 크기가 작은 4.5호를 주로 사용함.
0 장단점: 크기가 작고, 발사속도가 빠르며 조준이 자유로워 운용이 편리했으나 위력이 약하고 격발 불량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
0 도입시기: 명 1533년 포르투갈과의 전투 후 (더 이른 시기일 가능성 있음),일본 1551년 규슈 다이묘 오오토모 소린이 도입, 조선 16세기 중반 추정. 1563년 군기시 제작품 현존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출처>

  1. ‘보물 불랑기자포(1986),(2012)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4년
  2.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3. 안내문, 육군박물관, 2012년
  4. 안내문, 서울역사박ㅁ루관, 2015년
  5. ‘불랑기포’, 위키백과, 2024년
  6. ‘불랑기자포’, 위키백과,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