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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왕실생활] 왕실의 복식

조선 왕실 복식은 신분 질서와 유교적 가치관을 반영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지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색상, 문양, 소재가 엄격히 제한되었다. 색생은 오행설이 기초한 오방색을 사용하였고, 상징물로는 왕을 상징하는 용, 왕비를 상징하는 봉황, 십장생 및 꽃 등이 사용되었다. 궁중 예복은 몸의 곡선을 드러내기보다는 직선적인 평면재단을 통해 체구보다 크게 만들어 위엄을 강조했다. 조선시대 왕실의 복식은 TV를 통해 눈에 익기는 하지만, 실물은 많이 남아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실 관련된 유물들을 많이 소장.전시하고 있는 고궁박물관에서도 대부분 복제품을 전시해 놓고 있다. 자료를 통해 궁중복식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만, 실물은 많지 않아 마지막 왕과 왕비로 창덕궁에서 거주했던 순정효황후와 영친왕비가 소장했던 복식들을 통해 실물을 확인하고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곤룡포(袞龍袍)는 왕이 평상시에 집무를 볼 때 입던 평상복이다. 가슴, 등, 양 어깨에 금색 실로발톱이 5개인 용(오조룡)을 수놓은 둥근 판을 붙였다. 색상은 진한 붉은 색을 주로 사용했으며, 고종 이후에는 황룡포를 입기도 했다. 곤룡포를 입을 떄는 익선관을 쓰고, 허래에는 옥대를 했다. TV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왕의 모습이다.

<국왕의 일상복, 곤룡포, 袞龍袍, 20세기 초, 복제, 국가민속문화유산>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곤룡포이다. 곤룡포는 국왕과 황태자가 집무할 때 입었던 평상복으로 가슴과 등, 어깨 부분에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용인 오조룡 보를 달았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관 안쪽에 쓰는 남성용 쓰개, 탕건, 宕巾, 幅巾, 20세기 초, 복제, 국가민속문화유산>

말총을 세밀하게 엮어 짠 남성용 쓰개의 하나로 평소 집 안에서 쓰거나, 외출할 때 갓 아래 받쳐 썼다. 왕실에서는 면류관冕旒冠이나 익선관翼善冠, 전립氈笠 등을 쓸 때에도 안쪽에 탕건을 썼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0

<옥으로 장식한 허리띠, 옥대, 玉帶, 20세기 초, 복제, 국가민속문화유산>

가죽으로 만든 띠에 비단을 씌우고 옥으로 장식한 허리띠이다. 왕이 조복과 일상복, 제복 등을 입을 때 허리에 찼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조선 시대 왕실 여성들이 예복으로 착용했던 당의와 스란치마이다. 당의는 궁중에서 왕실 여성이 크고 작은 예식과 명절, 사시사철 문안례 복식으로 착용했다. 왕비와 빈의 당의에는 꽃무늬와 박쥐무늬, ‘수壽’ · ‘복福’ 등의 길한 글자를 금직이나 금박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스란치마는 왕실 여성이 예복 차림을 할 때 하의로 갖추는 치마이다. ‘스란’은 각종 무늬를 금직 또는 금박으로 장식한 단을 말하며, 스란이 한 단인 것은 ‘스란치마’ 두 단인 것은 ‘대란치마’라고 불렀다. 스란치마 안쪽에는 무지기치마나 대슘치마 같은 속치마를 입어 치마가 풍성해 보이도록 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0

조선시대 궁중복식은 검소한 생활을 강조한 사회전반적인 분위기로 소박한 면도 있기는 하지만, 왕실로서 권위를 표현하기 위해 일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색감이나 디자인, 장신구 등의 측면에서 상당히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궁중에서는 실제로 사용했던 의복류나 장신구 등에 대해서 한글로 목록을 정리하여 소중히 간직했음을 알 수 있다.

<저고리,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당의(唐衣)는 조선시대 여성들이 입던 대표적인 예복 겉옷으로, 특히 왕비·세자빈·궁중 여성들이 의례 때 착용하던 복식이다. 신분에 따라 색이 달랐으며, 왕비는 화려한 색과 용, 봉황 등 화려한 문양으로 권위를 나타냈다. 중국 당나라 시기의 여성 겉옷 양식이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수용, 변형된 것이다. 초기에는 중국식 요소가 강했지만, 점차 짧은 길이·넓은 소매·앞이 트인 형태 등 조선 고유의 미감에 맞게 변화하였다. 일본에서도 헤이안시대 귀족 여성 복식으로 발전했는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당의, 唐衣,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깃, 끝동, 고름, 겨드랑이에 자주색 천을 댄 저고리,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당의와 스란치마, 唐衣·膝襴裳, 20세기 초, 복제, 국가민속문화유산>

원삼(圓衫)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입던 대표적인 예복으로, 특히 혼례나 궁중 의례에서 착용된 격식 있는 옷이다. 저고리와 치마 위에 덧입는 긴 겉옷으로, 길이가 길고 소매가 넓다. 왕실에서 사용한 복식이지만 일반 여성도 혼례 때 착용하였다.

<왕실 여성 예복, 원삼, 大紅圓衫, 20세기 초, 복제, 국가민속문화유산>

영친왕비英親王妃(1901~1989)의 원삼이다. 원삼은 왕실 여성들이 크고 작은 행사 때 착용한 예복으로, 깃 부분이 둥근 모양이기 때문에 ‘원삼’이라 했다. 옷자락은 트여 있으며, 앞자락보다 뒷자락이 길고 소매 부분에는 색동과 한삼을 달아 장식했다. 원삼의 안쪽에는 소례복인 당의와 스란치마를 갖춰 입었고, 치마 위에는 앞치마 형태의 전행웃치마(前香上裳)를 둘렀다. 원삼의 허리 부분에는 허리띠인 대대(大帶)를 맸다. 지위에 따라 원삼의 색과 장식 등을 달리 했는데, 황후는 황색 원삼을 착용했고 왕비는 홍색 원삼을 입었으며, 세자빈이나 빈은 자적색, 왕녀 ·대군부인 · 군부인은 녹색 원삼을 입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왕실의례와 행사 때 입는 옷은 궁궐 내 각종 물품을 관리하는 상의원(尙衣院)에서 관장했다. 상의원은 조선 왕실의 복식과 장식을 총괄하던 기관으로, 예조와 함께 국가 의례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단순한 공방이 아닌 국가 조직에 속한 정식 관청이었다. 왕실 가족의 평상복은 상의원에서 재료를 공급하고 각 전(殿)에 소속된 침방과 수방에서 제작했다.

<왕세자와 왕세손이 입는 옷, 자적용포, 紫的龍袍, 20세기 초, 복제, 국가민속문화유산>

네 개의 발톱을 가진 용인 사조룡(四爪龍)을 금박한 보(補)가 달린 옷이다. 왕세자나 왕세손이 평소에 입었던 겉옷으로 성년식 전까지 입었다. 왕세자의 용포에는 양 어깨와 가슴, 등에 원형의 사조룡보를 달았고, 왕세손의 용포에는 가슴과 등 부분에 사각형 삼조룡보를 달았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돌띠 저고리, 赤古里, 20세기 초>

고종의 딸 덕혜옹주가 돌 전후 입었던 저고리이다. 돌띠 저고리는 일반적인 저고리보다 고름의 길이를 길게 만들어 몸통을 한 바퀴 둘러 고름을 맸다. 긴 고름은 아이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옷매무새가 흐트러지지 않게 고정하는 역할을 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옥으로 장식한 허리띠, 玉帶, 20세기 초, 복제, 국가민속문화유산>

가죽으로 만든 띠에 비단을 씌우고 옥으로 장식해 만든 허리띠이다. 조선시대에는 왕과 왕세자, 왕비, 세자빈만이 착용할 수 있었다. 왕과 왕세자는 조복과 상복, 제복 등을 입을 때 허리에 찼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사규삼(四揆衫)은 조선시대 남자아이들이 어른이 되기전에 입었던 예복이다. 집안의 행사나 명절에 외출복 및 예복으로 입었으며, 서당에 다니는 아이들이 입기도 했다. 머리에는 복건을 쓰고 허리에는 대대를 매었다. 오늘날 돌잔치에서 볼 수 있는 복장이다.

<사규삼과 창의, 四揆衫·氅衣, 20세기 초, 복제, 국가민속문화유산>

녹색 사규삼과 그 안에 받쳐 입는 붉은색 창의이다. 사규삼은 옷자락이 네 폭으로 갈라진 옷을 말하며, 남자 아이가 성년식 때까지 입던 겉옷으로 복건과 함께 착용했다. 왕실뿐만 아니라 반가의 남자아이도 입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검정 비단으로 만든 남성용 쓰개, 幅巾, 20세기 초, 복제, 국가민속문화유산>

왕손王孫이 착용했던 쓰개이다. 검은색 용 무늬 비단에 금박을 찍고 비취와 산호, 진주 등을 달아 꾸몄다. 불로초 그림과 ‘수복강녕壽福康寧’ 등의 글씨를 장식해 왕손이 무병장수하고 다복하기를 바랐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왕실의 옷
왕실의 옷은 장소, 계절, 착용자의 신분 등에 따라 색상, 문양, 형태 등이 세세하게 구분되었고, 왕실 구성원들은 이 엄격한 규정에 따라 옷과 장신구 등을 착용했다. 왕실 가족 중에서도 국왕과 왕비,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옷은 의대(衣襨)라 높여 불렀으며, 당대 최고 장인이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왕실의례와 행사 때 입는 옷은 궁궐 내 각종 물품을 관리하는 상의원에서 관장했다. 왕실 가족이 일상에서 입을 평상복은 상의원에서 절기에 따라 재료를 공급하고 각 전(殿)에 소속된 침방과 수방에서 제작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조선 왕실의 장신구는 단순한 치장을 넘어 사용자의 신분과 위엄, 그리고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상징물이었다. 유교적 절제미 속에서도 화려한 보석과 정교한 금속 공예 기술이 집약되었다. 머리 장신구는 권위의 상징으로 다양한 종류가 존재했다. 특히 비녀는 신분에 따라 재료와 문양이 엄격히 제한되었다. 몸치장 장신구는 한복 실루엣에 포인트가 되며,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매화 · 대나무 모양 비녀,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국화 모양 백옥 앞꽂이,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산호 장식 매화 · 대나무 모양 비녀,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매화 · 대나무 모양 비녀,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진주 장식 대나무 모양 비녀,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봉황 모양 앞꽃이와 포장용구,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영친왕비의 봉황 모양 앞꽂이와 보자기, 보관용 상자이다. 앞꽂이는 앞머리 가르마 부분에 꽃아 장식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장신구 보자기,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댕기,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머리 뒷부분에 늘어뜨려 장식하는 댕기이다. 궁중에서 여성들이 예복을 갖출 때 의례용 머리띠에 묶어 장식하거나, 단독으로 착용하기도 했다. 자적색 비단에 금박으로 연밥 무늬를 장식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식물모양 비녀,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떨비녀는 왕비나 세자빈이 예복을 입고 ‘큰머리’를 할 때 꽂았던 장신구이다. 나비나 꽃 모양의 장식에 가느다란 용수철을 달아, 움직일 때마다 장식이 파르르 떨리는 모습이 매우 우아하다.

<백옥 떨비녀,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식물모양 비녀,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식물모양 비녀,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식물모양 비녀, 20세기초, 국가민속문화유산>

왕실의 장신구
조선 왕실에서는 비녀, 떨잠, 뒤꽂이, 댕기와 같은 머리 장식품과 장도, 가락지, 노리개, 주머니처럼 몸에 착용해 꾸미는 용도의 다양한 장신구를 사용했다. 왕실 장신구는 착용하는 사람의 신분과 나이, 행사의 성격과 옷에 따라 종류와 형태가 달라졌다. 진주, 옥, 산호, 칠보, 물총새 깃털 등 귀한 재료들을 정교하게 세공해 장식하고, 나비와 국화, 봉황 등의 형태로 만들었다. 장신구를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비단으로 만든 보자기와 상자로 포장해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소중하게 보관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자수(刺繡)는 단순한 수공예를 넘어, 왕실의 위엄을 시각화하고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고도의 정치적·예술적 매체였다. 왕실 자수는 ‘궁수(宮繡)’라고 부르며, 그 격과 수준이 매우 높았다. 왕실의 자수는 당대 최고 수준의 화가인 도화서 화원이 그린 밑그림을 바탕으로 상의원에 속한 전문 자수 장인들이 만들어 그 수준이 매우 높았다. 자수가 사용된 곳으로는 왕과 왕비, 관료들의 관복 가슴과 등에 붙이는 사각형 장식인 흉배(胸背), 예복 등의 어깨와 가슴 등에 붙이는 둥근 자수 판인 보(補), 혼례복인 활옷(寬衣),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만든 병풍 등이 있다.

<쌍학 무늬를 수놓은 흉배, 조선>

조선시대 정1품부터 정3품까지 문관 당상관의 관복에 부착하여 품계를 나타낸 표식이다. 두 마리의 학이 불로초를 물고 위아래로 마주보고 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쌍학 무늬 흉배 수본, 조선>

조선시대 문관 당상관의 관복에 부착할 흉배를 제작하기 위한 종이본이다. 기름을 먹인 종이에 학 두 마리의 모습을 그렸다. 구름에 ‘흰’, ‘초’, ‘보’, ‘남’ 등을 표시하여 자수를 놓을 때 사용할 실의 색을 지정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단학 무늬를 수놓은 흉배, 조선>

조선시대 종3품부터 9품까지의 문관 당하관의 관복에 부착하여 품계를 나타낸 표식이다. 불로초를 문 한 마리의 학이 날고 있는 모습을 자수로 표현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단학 무늬 흉배 수본, 조선>

조선시대 문관 당하관의 관복에 부착할 흉배를 만들기 위한 종이본이다. 기름을 먹인 종이에 학 한 마리를 배치한 밑그림으로 흉배용 자수를 놓을 때 참고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꽃과 새를 수놓은 비단, 조선>

꽃과 새를 수놓은 푸른 비단으로, 병풍을 만들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모란, 목련, 국화, 석류, 새, 벌, 나비와 같이 좋은 뜻이 있는 문양을 색실로 수놓았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방석과 베개에 붙이는 자수 장식, 조선>

주홍색 비단 바탕에 수를 놓아 만든 방석용 자수 장식과 기다란 베개 양 측면에 붙이는 자수 장식이다. 방석용 자수는 장수를 기원하는 ‘수壽”자 문양을 중심으로 복報을 뜻하는 박쥐 무늬를 둘렀고, 베개용 자수는 ‘수壽’자와 연꽃 무늬를 수놓았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진주 장식 부채, 조선>

왕실 혼례 때 신부가 사용한 진주 장식 부채이다. 조선왕조실록의 현종 3년(1662) 기사에 따르면, 선조 때부터 왕실 혼례에서 진주 장식 부채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진주 장식 부채의 수본, 조선>

혼례용 진주 장식 부채에 수를 놓기 위해 사용한 종이본이다. 기름을 먹인 종이에 먹으로 문양을 그렸다. 수본의 문양을 천에 옮긴 뒤 문양을 따라 수를 놓았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꽃과 새를 수놓은 비단, 조선>

꽃과 새를 수놓은 푸른 비단으로, 병풍을 만들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모란, 목련, 국화, 석류, 새, 벌, 나비와 같이 좋은 뜻이 있는 문양을 색실로 수놓았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봉황과 꿩을 수놓은 자수, 조선>
<봉황과 꿩을 수놓은 자수, 조선>

꽃과 나무, 새를 수놓은 자수이다. 한 쌍을 이룬 봉황과 꿩, 오동나무, 해, 꽃, 괴석 등은 태평성대와 자손 번창, 장수, 풍요 등의 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석류·불수감 무늬 향주머니,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유산><‘수壽’자 무늬 약주머니, 조선>

붉은색과 노란색 비단에 금실과 은실로 석류와 불수문을 수놓은 주머니이다. 주머니 안에는 향을 넣어 은은한 향이 풍기도록 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오각형 덮개가 있는 붉은색 비단 약주머니이다. 덮개 윗부분에는 ‘수壽’자를 수놓고 그 아래로 모란이 꽂힌 화병과 암석, 불로초, 파도 등을 함께 수놓아 장식했다. 약주머니의 용도에 맞게 장수와 관련된 글자와 무늬로 장식해 소장자의 건강을 기원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자수 장식 수저집, 20세기 초><자수 장식 수저집, 20세기 초>

수저를 보관하는 자수 수저집으로, 붉은 천에 학, 사슴, 소나무, 구름 등의 무늬를 장식해 장수와 건강의 소망을 표현했다. 뒷면에는 ‘자손창성子孫昌盛’과 ‘수복다남壽福多男’을 수놓았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수저를 보관하는 자수 수저집으로, 붉은 천에 연꽃과 원앙을 수놓아 장식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살면서도 항상 깨끗하게 자라 청결과 고귀함을 상징하며, 원앙은 부부의 사랑을 의미한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귀주머니 수본, 조선>

주머니를 만들고 수를 놓을 때 사용했던 종이본이다. 기름을 먹인 종이에 먹을 사용해 주머니에 수놓을 좋은 의미의 무늬를 그렸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왕실의 자수
조선 왕실에서는 옷과 침구, 병풍, 장신구 등에 좋은 의미의 문양을 수놓아 사용했다. 왕실 자수는 광택이 있는 가느다란 비단실을 섬세한 솜씨로 수놓아 완성했다. 자수는 보기에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복을 기원하는 길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자수의 문양을 통해 사용자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다. 대례복과 같이 왕실 행사 때 입을 예복이나 물품 등은 상의원에서 제작과 관리를 맡았으나 궁궐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자수 물품은 대전, 대비전, 동궁과 같은 각 거처에 별도로 딸려 있던 수방(繡房)에서 제작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노리개는 단순히 저고리 고름에 다는 장신구를 넘어, 사용자의 품격과 신념, 그리고 실용적인 목적까지 담아내었다. 노리개는 크기와 재료, 구성에 따라 착용자의 지위를 나타내었다. 노리개에 담긴 모양과 무늬는 나쁜 기운을 막고 복을 부르는 바램이 담겨 있다.

<줄향노리개, 조선>

궁중에서 일하던 내인들이 치마 안에 달았던 노리개이다. 향즐으로 만든 구슬을 끈에 꿰고, 중앙에는 딸기술을 길게 달아 장식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쌍가락지,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유산>

영친왕비의 쌍가락지로 각각 호박, 자마노, 옥 등으로 만들었다. 여름에는 호박, 마노, 옥과 같이 투명감 있는 원석 가락지를 선호했고, 겨울에는 주로 금 가락지를 착용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불수감 모양 밀화 노리개와 포장용구,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유산>

부처의 손을 닮은 과일인 불수감(佛手柑) 모양으로 조각한 밀화(蜜花) 노리개와 보관용 상자이다. 크고 화려한 밀화노리개는 궁중에서 예복을 갖출 때 다른 종류의 원석으로 만든 노리개 2개를 함께 엮어 착용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장신구 보자기,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유산>
<장도 노리개,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유산>

작은 칼을 달아 장식한 장도 노리개이다. 옥, 산호, 수정, 공작석 등의 보석을 세공해 만들었으며, 장도 중간 부분에 광다회를 연결해 장식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박쥐 모양 노리개,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유산><쌍나비 모양 백옥 노리개,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유산><산호 노리개,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유산>

<출처>

  1.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2.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3.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3.31 확인)
  4. OpenAI, <ChatGPT (GPT-5)>의 답변, 2026년 3월 3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