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는 경북 서북부에 위치하며 서북쪽으로 소백산맥이 둘러싸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남북으로 흐르며 주변에 넓은 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영남과 중부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경상감영이 설치되는 등 지역의 중심이 되었던 고장이다. 반면에 해안에서 먼 낙동강 중류에 위치하고 있어 선사시대 유적지는 많지 않은 편이다. 청동기 시대 이후 정착생활을 하면 농경에 적합한 환경과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었던 점에서 점차 지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북 상주시 사벌면에 있는 상주박물관
조선시대 경상감영이 설치되었던 상주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시립박물관이다.
상주,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다
상주는 경상북도 북서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문경과 예천, 서북쪽으로는 소백산맥을 넘어 충북 괴산, 남쪽으로는 김천, 동쪽으로는 예천과 맞닿아 있다. 북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속리산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금강.남한강.낙동강의 삼파수로 나뉘어 흐른다. 서쪽은 높은 산지가 연속되고 동쪽은 낙동강에 의해 형성된 분지와 저지가 발달하여 서고동저를 이룬다. 상주는 동쪽에는 낙동강이 만든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고, 북쪽과 서쪽으로는 소백산맥이 능선으로 통하는 주요 교통로가 연결된 수륙교통의 결절지이다. 낙동강의 지류가 모여 큰 강을 형성하면서 조성된 넓은 충적평야는 일찍부터 농경이 발달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또한 소백산맥의 주요 교통로인 조령과 계립령을 통하여 들어오는 북방문물은 상주를 통하여 수계를 타고 영남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선사시대부터 활발히 싹튼 문화는 시대를 흐르며 번창하여 조선시대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영남지도 중 상주, 조선시대 18세기 중엽
영남지도 중 함창, 조선시대 18세기 중엽
영남지도 중 문경, 조선시대 18세기 중엽
18세기 중엽(1746 ~ 1760년)에 제작된 영남지도(상주, 함창, 문경)이다. 크기는 78×98 cm로 세 지도 모두 동일하다. 조선후기 국가의 지역 파악이 도별 단위에서 군현단위까지 확대되면서 비변사와 홍문관 주도하에 각 고을의 지도를 책으로 엮은 다양한 지도책이 제작되었다. 채색필사본으로 1리 방안이 표기된 대축적지도이며, 규장각에 소장된 영남지도 <비변사인방안지도>와 동일본으로 추정된다. 총6책 77장으로 구성된 것 중에 상주박물관에 총34점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당대 채색필사한 지도가 거의 없는 실정일 뿐만 아니라 당대 상주 지역의 역사, 지명, 미술, 지리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포괄적으로 연구할 수 있어 귀중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찌르개, 찍개, 복합석기, 낙동면 신상리 출토, 구석기시대
긁개, 낙동면 신상리 유적 출토, 격지, 청리 A-나구역 유적 출토, 구석기시대
망치돌, 몸돌, 낙동면 신상리 출토, 구석기시대
구석기시대의 상주
낙동면의 신상리유적은 경북지역 최초로 발굴 조사된 구석기시대 유적이다. 이곳은 지형적으로 장천이 북류하여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으로 해발 120 m 정도의 나지막한 독립성 구릉이 말단부에 위치하며, 인근의 장천이 범람하면서 형성되어싿. 모두 2 ~ 6개 토양 쐐기층이 형성되어 있으며, 문화층은 3개 층이 확인되었다. 석기는 3개의 문화층에서 골고루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석영으로 만든 것으로, 긁개.찍개.몸돌.망칫돌 등 다양하다. 이들 서기에는 사용흔적이 대부분 잘 남아 있다. 석기 제작의 기술적인 측면과 지층의 상태로 볼 때, 이 유적은 전기 구석기시대까지 연대가 올라갈 사능성이 있으며, 영남지방에서 확인된 구석기 유적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평가된다. 이밖에도 청리유적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의 석기가 일부 채집되는 점에서 상주지역에서는 구석기문화의 흐름이 계속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돌도끼, 상주 출토,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깊은 바리, 두귀달린 단지, 김천 송죽리 출토, 신석기시대, 복제품
신석기시대의 상주
신석기시대는 빙하기 이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면서 새로이 토기와 간석기를 만들고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시기로 중국, 일본 등 주변지역과 필요한 정보를 교류하였다. 고기잡이와 사냥, 채집 활동과 함께 부분적인 농사를 지었던 신석기인들은 실로 짠 옷감이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꾸미개로 몸을 치장하였다. 상주지역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은 아직까지 확인된 바가 없지만, 인근의 김천지역에 신석기시대 유저과 유물이 발굴 조사된 바 있으며, 상주교육청 소장 유물 중에 신석기시대 유물이 지표 채집된 것이 있어 상주지역에도 신석기시대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돌화살촉, 검자루 끝장식, 청리고분군, 청동기시대
돌자귀(상주출토), 돌자귀.돌도끼.(청리고분군), 반달돌칼, 청동기시대
간돌칼, 청리고분군, 청동기시대
두귀달린바리(청리고분군), 붉은간토기항아리(상주), 청동기시대
편평통형동기, 요녕식동검, 전 상주 낙동면 출토, 청동기시대, 복제품
요령식 동검, 전 상주 낙동면 출토,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의 상주
상주지역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유적은 고인돌, 선돌 그리고 주거 유적이다. 고인돌은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구릉 사면이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소하천변에 위치한 평지와 야산이 연결되는 구릉 사면에 위치하며 대체로 5 ~ 10기가 하나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 현재 철리면, 협신동, 부월동, 풍덕동 등 약 10개소 이상의 유적이 알려져 있다. 이들 가운데 청리 유적에서 15기의 고인돌에 대한 정식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고인돌에서 석검, 석촉 등 석기류와 붉은간토기, 완 등 토기류가 다수 출토되었다. 선돌을 상주시 부원동, 풍덕동, 현신동 등에 다수 분포하는데, 고인돌군과 유사한 분포를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주거 유적으로는 청리유적과 최근에 조사된 복룡동유적에서 주거지와 수혈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복룡동유적에서 조사된 송국리형 주거지는 청동기문화의 전파와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 밖에 상주시 남적동, 낙동면 구잠리, 사벌면 금흔리 등 여러 곳의 무문토기와 석기 산포지가 알려져 있다. 또한 상주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요녕식 동검은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이른 시기부터 청동기문화가 전래되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탄화미, 손잡이 항아리, 원형점토대토기, 주머니후, 바리, 병성동고분군, 초기철기시대
동모, 전 상주출토, 청동기시대, 한국식동검, 전 상주출토, 초기 철기시대, 복제품
초기 철기시대의 상주
상주지역에서는 초기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철기가 발견된 바는 없으나, 병성동 유적에서 일반적으로 철기의 도입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원형점토대토기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이를 전후한 시기에 철기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낙동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아려진 청동 일괄 유물 중 거울, 창 등은 중국 및 일본과 교류한 흔적으로 추정되고 있어, 기원전 2세기 경에는 상주지역이 비교적 먼 지역과도 직간접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출처>
-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문화재청,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