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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천복사, 당나라 장안 화엄종 중심 사찰

중국 시안(西安)시 옛 장안성 서남쪽에 있는 천복사(薦福寺, Jianfu Temple)이다. 당나라 장안에 있던 6대 종파 중 화엄종 근본도량으로 불교가 번성했던 당대(唐代에 높은 명성과 광범위한 인기를 누렸다. 당나라 황실을 후원을 받았던 중요 사찰로 중요한 불교 의식들이 거행되었으며 국내외에서 많은 승려들이 불교연구를 위해 모여 들었다. 번경원에서는 많은 불교경전들이 이곳에서 번역되었으며 당나라 장안에서 불경을 번역했던 사찰 중 3번째로 손꼽혔던 중하한 사찰이었다. 당나라 말기에 천복사는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소안탑은 그자리를 지켰으며 명,청대에 탑을 중심으로 사찰로서의 모습을 다시 갖추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안 천복사 전경>

천복사는 당고종 사후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측천무후가 수양제 저택이 있었던 터에 헌복사(献福寺)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웠다. 706년 불경을 번역하는 번경원(翻經院)이 설치되었으며 소안탑이 건립되었다. 712년 화엄종 3조인 승려 법장이 천복사에서 입적하면서 화엄종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당현종 때는 중국에 밀교를 전한 승려 금강지(金剛智)가 머물며 밀교경전을 번역하였다. 당무종의 회창폐불(845년) 때 대자은사, 서명사, 대장엄사화 함께 폐사를 면한 중요한 사찰이었다. 사찰 내 곳곳에 천복사를 중건하면서 그 내력을 기록했던 유서깊은 비석들이 남아 있다. 지금은 비림박물관에 소장.전시 중인 당나라 명필 안진경(顏眞卿, 709 ~ 785년)의 대표작이자 후대 서예의 교본처럼 사용되었던 작품인 다보탑감응비(多寶塔感應碑)가 대표적이다.

<천복사를 상징하는 소안탑(小雁塔, The small wild goose Pogoda)>

화엄종 근본도량으로 당나라 때 크게 번창했던 천복사는 송나라 이후 파괴되었으며 명나라 이후  소안탑을 중심으로 전각들이 중건되었다. 가람배치는 앞쪽으로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한 불전들이, 뒷편에 옛 번경원(飜經院)을 계승한 장경루(藏經樓) 등이 배치되어 있다. 원래 천복사에 비해 작은 규모이지만 사찰의 모습이 제대로 남아 있다. 소안탑 앞 종루의 새벽종소리는 안탑신종(雁塔晨鐘)이라 하여 관중팔경 중 하나로 손꼽혔다.

<고루와 종루 사이 마당에 남아 있는 수령 1,000년이 넘은 고목들>

천복사 신앙공간은 소안탑 앞쪽에 배치되어 있는 산문(山門), 천왕전(天王殿), 자씨각(慈氏各), 대웅보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자씨각 앞에는 종루와 고루가, 대웅보전 앞에는 동소정(東小亭), 서소정(西小亭)이, 마당 양쪽에 요사채가 배치되어 있다.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주요 전각들은 대부분 청나라 떄 중건한 것으로 벽돌과 목조건축 양식이 혼재된 전형적인 청나라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보전 앞 마당>

명나라 때 지어진 남산문(南山門)은 명.청대 이후 천복사의 정문이었다. 벽돌과 목재로 지어졌으며 성문처럼 아치형 출입문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명.청대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앞쪽에는 1514년에 적은 “칙사천복사(敕賜薦福寺)”라는 현판이 , 북쪽에는 명대에 적은 “최성법문(最胜法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칙사천복사(敕賜薦福寺)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 남산문>

<안쪽에서 본 모습>

<남산문에서 자씨각으로 이어지는 길>

<마당 한쪽편에 있는 작은 요사채>

산문을 지나 조금 걸으면 한국의 사찰 출입문에 해당하는 천왕전 건물터가 있고 문루인 자씨각(慈氏閣)을 중심으로 고루(鼓樓)와 종루(鐘樓)가 있는 공간이 있다. 자씨각은 명나라 때(1449년) 지어진 벽돌로 지은 문루로 2층에서 천복사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목조건축물이 한국 사찰의 문루와 비교되는 건축물이다. 자씨각 앞 마당에는 천복사의 오래 내력을 보여주는 수령 1,300년이 넘은 고목들이 남아 있다.

<천왕전터와 천복사 중수비>

<문루에 해당하는 자씨각>

<수령 1,300년이 넘은 고목>

<자씨각 앞 마당>

<대웅보전 앞 마당에서 본 자씨각>

자씨각 마당 양쪽에는 청나라 때 벽돌로 지은 종루와 고루가 있다. 종루에는 금나라 때(1192년) 때 만든 높이 3.35 m의 철종이 있었다. 소안탑과 함께 새벽에 울리는 종소리를 안탑신종(雁塔晨鐘)이라 하여 관중팔경 중 하나로 손꼽이는 명승이었다. 지금은 복제품이 종루 앞에 세워져 많은 관람객들이 찾고 있다. 종루 옆에는 명나라 때(1494년)에 만든 작은 종이 걸려 있다.

<고루>

<종루>

<종루 옆 마당에 있는 금나라 철종(복제품)>


<고루 옆에 걸려 있는 작은 종>

천복사 주불전은 대웅보전으로 앞면 5칸 규모의 단층건물로 청나라 때 지어졌다. 대웅보전 앞 마당에는 천복사를 중건하면시 세웠던 중수비와 옛 가람배치를 새겨놓은 비석이 있으며 마당 양쪽에는 청나라 지은 정자건물이 양쪽에 세워져 있다. 화엄종 중심사찰이었던 오래 내력과 중요성에 비해 현재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대웅보전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천복사 주불전인 대웅보전>

<대웅보전 앞 마당에 세워진 비석들>

<천복사의 옛 가람배치를 새겨놓은 비석>

<동소정>

<동소정 뒷편 불전>

<서소정>

<서조정 뒷편 불전>

현재 천복사는 사찰로 운영되고 있지 않으며, 천복사 절터 유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일반 사찰과는 달리 대웅보전 내부에는 소안탑과 천복사의 역사를 보여주는 주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대웅보전 내부>


<사자상, 당>


<보살상 머리, 당>


<개황삼년조상탑, 수>


<공양인, 당>

<선각 보살그림 탁본, 당>


<십일면관음상 머리, 당>

<손을 새긴 벽돌, 당, 소안탑 부재>

<천복사 건축부재, 당>

<불상 좌대>

<소안탑 북문에 있던 당대 선각그림>

<불상 좌대, 당>


<석각, 명, 천복사 출토>

대웅보전 뒷편에는 이곳에 당나라 장안에서 3번째로 큰 규모의 번경원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전각인 장경루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주위로 승려들이 머물면서 수행했던 승방의 모습이 남아 있다. 장경루를 배경으로 소안탑의 웅장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대웅보전 뒷편 장경루>

<장경루 앞 마당>

<장경루 옆 작은 승방>

<뒷편에서 본 장경루>

소안탑(小雁塔)은 당나라 때 (707년) 처음 세워졌으며 천복사탑(薦福寺塔)이라 불렸는데 천복사가 화엄종 중심 사찰이었기 때문에 화엄탑(華嚴塔)으로도 불렸다. 명.청대 대자은사 대안탑과 비교되어 소안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벽돌로 쌓은 15층 전탑(塼塔)이었는데 여러차례 지진으로 손상되어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며 1965년 옛방식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나라 전탑(塼塔)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동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천복사 소안탑>

<소안탑 앞에 세워진 중수비>


<뒷편에서 본 모습>

소안탑 뒷편에는 후문에 해당하는 문루인 백의각(白衣閣)이 있으며, 시안 도심으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출입문이 있다. 현재 천복사는 정문인 남산문을 사용하지 않기때문에 서쪽 박물관이나 북쪽 출입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소안탑 뒷편 백의각>

<백의각 출입문>

<백의각 뒷편에 세워진 중수비>

<출처>

  1. 안내문, 시안 천복사,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