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투루판시에 남아 있는 고대도시 유적인 자오허교성(交河故城)이다. 투루판 도심 서쪽 10 km 떨어진 야르나즈 계곡 무르투강에 있는 작은 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자로 교하(交河)라 부른다. 전한때부터 450년 고창국에 멸망하기까지 투루판 지역을 통치했던 차사전국(車師前國)의 수도였으며, 당나라 때에는 안서도호부가 설치되었다. 당나라 때 기록에 따르면 인구는 7,000명 정도였다고 한다. 840년 키르키즈에 멸망될 때까지 실크로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3세기 몽골의 침입 이후 폐허가 되었다. 고창국 수도였던 가오창고성과 함께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도시유적이다.
<자오허고성 입구>
두 강이 교차하는 지점에 배처럼 생긴 지형에 형성된 이 고대도시는 길이 1.6 km, 폭 300 m 정도로 동시대 고대도시와 거의 비슷한 규모이다. 성벽을 인공적으로 쌓지 않고 높이 30 m 정도의 자연절벽을 성곽으로 사용하고 있다. 도시는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과 비슷한 형태로 관공서, 불교사원, 주거지와 상업지구, 작업장, 군사훈련장 등이 배치되어 있다. 건물들은 대부분 바위를 파거나 흙을 쌓아서 만든 투루판지역 건축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투루판 기후 특성상 옛 모습의 잘 남아 있는데 도시가 황폐화되기 직전인 당나라 때 모습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오허 고성 모형>
양쪽을 흐르는 강은 오랜 세월 땅을 깎으면서 흘러 깊은 협곡을 형성하고 있다. 고성은 높은 자연절벽을 성벽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남문, 동문, 서문을 두고 있는데 그 중 서문을 정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오허고성 남문과 높은 성벽>
<고성 남문 앞 광장>
<고성 양쪽을 흐르는 강>
<고성 남문, 옆쪽에 병사들이 머물렀던 공간이 있다>
자오허고성은 남문에서 대불사까지 중앙대로를 중심으로 동쪽, 서쪽과 대불사 뒷편 북쪽의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동쪽은 관공서를 포한한 주거지역이며 서쪽은 주거지역과 작업장, 군사훈련장 등이, 북쪽은 대불사를 중심으로 주거지와 불교사원 등이 배치되어 있다. 건물들은 도로를 향해 창문을 두지 않으며 공간들은 폐쇄적으로 분리되어 있어 당나라 장안의 도시 배치를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오허고성 건물 배치>
남문을 들어서면 안쪽으로 오래된 건물 유적이 산재해 있으며 건물이 없는 공터를 많이 볼 수 있다. 공공기관이나 작업장이나 군사훈련장 등이 주로 배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문 안쪽>
<남문 안쪽 언덕에 있는 건물유적>
<남문 안쪽 대로 동쪽편 지역 건물들>
<남문 안쪽 대로 서쪽편 건물들>
남문에서 300 m 쯤 걸어 들어가면 도시전체와 주위를 감시하기 위해 세운 전망대(了望 台)가 있다. 전망대는 둘레 88 m, 높이 8.4 m의 망루이다. 건물을 내부에 큰 방을 중심으로 4면에 군인들이 쉴 수 있는 작은 방이 있다.
<전망대>
<전망대 내부>
<전망대 주변 건물들>
자오허고성은 전망대에서 대불사 불탑까지 약 400 m 정도의 중앙대로가 연결되어 있다. 도로 양쪽으로 창문이 없는 높은 담장이 도시 공간을 구분하고 있으며 중간쯤에 동서방향 도로가 남북을 구분하고 있다. 각 구역은 폐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담장으로 도시를 폐쇄적으로 구분한 당나라 장안의 도시계획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전망대에서 대불사 불탑까지 연결되는 큰길과 양쪽 담장>
<큰길 동쪽편 담장>
<전망대와 불탑 중간 지점>
<동서를 관통하는 도로>
<대불사 앞 광장에서 보이는 큰 길>
전망대 앞 큰길에서 우측 언덕길로 올라가면 관서유지(官署遺址)에 들어서게 된다. 한나라 차사전국 때 관청과 군대가 주둔했던 지역으로 서주시대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크게 확장되었다. 이곳에는 군사들이 주둔하면서 훈련을 받던 연병장 같은 마당이 있고, 그 주변으로 땅속으로 굴을 파서 만든 것처럼 보이는 관청 건물들을 볼 수 있다. 넓은 마당 곳곳에 출입문이나 환기구를 볼 수 있다.
<관서유지(官署遺址)>
<동쪽 성벽 주변>
<관서유지 북쪽, 대불사를 비롯하여 상업지구, 민가들이 내려다 보인다>
<자오허고성 중앙대로 동쪽 민가지역>
<대불사 뒷편 승려들의 승탑들이 모여있는 탑림>
관서유지에서는 11 m의 넓은 정사각형 안뜰이 있는 건물을 볼 수 있다. 안뜰에는 다른 곳과 연결되는 문과 터널, 방을 볼 수 있는데 상당히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있다.
<윗쪽에서 본 안뜰>
<안뜰로 내려오는 계단과 방>
<환기구가 있는 방>
<위쪽이 개방되어 있는 부분>
<다른 집으로 연결되는 터널>
<윗쪽이 개방되어 있는 문>
<관서유지 동쪽에 있는 큰 건물유적>
관유유지에는 200여 기 영아고묘군(婴兒古墓群)이 있다. 고창국시기 유적으로 추정되는데 왜 이곳에 아기무덤이 있는지 알려진 바는 없지만 자오허고성 관청 중심부에 아주 가까이 있다.
<영아고묘군(婴兒古墓群)>
자오호고성 중앙대로 중간쯤에 동문과 서문으로 연결되는 큰 길이 도시를 남북으로 나누고 있다. 다른 골목과 마찬가지로 건물들은 큰 길을 향해 창문을 두지 않고 있다. 관서유지 북쪽에는 많은 주민들이 거주했던 민가들이 밀집되어 있으며 작은 골목으로 통해 길들이 연결되고 있다. 관서유지에 비해 건물 외벽들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관서유지와 마찬가지로 폐쇄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관서유지에서 내려오는 길>
<길 옆에 있는 건물, 외벽이 개방되어 있어 상가처럼 보인다.>
<중앙대로와 연결되는 큰 길>
동성문(東城門)은 30 m 높이의 절벽을 깎아서 만든 것으로 비교적 초기에 세워진 구조물이다. 성문 양쪽 2개의 감시탑, 초소, 방어용 울타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문을 사람이나 물자의 통행을 위해 지은 것은 아니고 주민들이 강물을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자오허고성 동문>
<성문 옆 초소>
중앙대로 서쪽에는 주거지역 외에 많은 수공예 공방이 자리잡고 있었다. 직물, 술, 신발 등을 만들었던 건물과 수공예품을 만들었던 작업장 등이 확인되고 있다. 건물의 외벽과 지붕이 튼튼하게 만들어진 동쪽 지역과는 달리 건물이 크게 훼손되었으며 넓는 마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대로에서 서문으로 연결되는 길>
<공방들이 있었던 서쪽지역 건물들>
<서쪽지역 건물>
일반적인 고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자오허고성은 불교사원인 대불사를 중심으로 상업지구와 주거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대불사 앞 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중앙대로 입구 전망대와 함께 도시에서 랜드마크가 되었던 거대한 불탑이 광장 앞에 세워져 있다. 불탑을 중심으로 큰 규모의 상가들이 들어서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뒷편 골목에 크고 작은 점포와 서민들이 살았던 가옥들이 배치되어 있다.
<대불사 불탑>
<대불사와 광장>
<불탑 서쪽 큰 상가로 보이는건물들>
<불탑 동쪽편 건물 유적>
<불탑 주변 상업지구 건물>
대불사는 면적 5,100 ㎡이며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 절터에는 불상을 모셨던 불단이 있는 큰 규모의 금당터를 비롯하여 2개의 탑과 우물, 요사채 등이 있었으며 중문 앞 광장에 큰 규모의 탑이 남아 있다.
<대불사 금당 건물터>
도시는 대불사를 중심으로 시장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이며 실크로드를 여행했던 많은 상인들과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불사 광장 서쪽 상업지구 건물들>
대불사 동쪽에서 남쪽 관서유지까지는 많은 주민들어 거주했던 주거지역이 형성되었다. 광장에서 동문으로 큰 길이 연결되어 있으며 크고 작은 골목들이 큰길과 연결되어 있다. 건물들의 비교적 그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어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해 준다.
<많은 건물들이 있었던 대불사 동쪽 주거지역>
<대불사에서 동문으로 연결되는 큰길>
대불사 뒷편에는 승려들의 승탑이 모여 있는 탑림이 있으며 큰 길로 연결되어 있다. 탑림으로 연결되는 큰길에서는 비교적 큰 규모 건물 유적이 남아 이다.
<대불사 동쪽 탑림으로 연결되는 길>
<탑림으로 가는 길 동쪽에 남아 있는 큰 건물들>
<대불사에서 동문으로 연결되는 큰길>
<벽체가 잘 남아 있는 주거지역 건물 유적>
<동문으로 이어지는 길>
<주거지역 좁은 골목길>
<동문으로 연결되는 길>
<큰 규모의 건물 유적>
<동문 부근 >
<출처>
- 안내문, 자오허고성, 2010년
- 위키백과, 2020년
- 百度百科, 2020년
-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