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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대고려] 지식인의 문학과 예술

고려말 원나라 간섭기에 성리학은 원나라에서 왕을 모시면서 오랜 기간 머물렀던 관료이자 학자인 안향.백이정 등이 관련 서적을 국내에 소개하였다. 또한 충선왕과 함께 원나라에 간 이제현이 중국의 성리학자들과 학문적이 교류를 하면서 많은 학문적인 깊이를 더했다고 한다.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원(元)을 중심으로 많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 고려말에는 많은 학문적.기술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지식인의 문학과 예술
불교가 고려인들의 삶과 정신세계의 바탕이 되는 종교이자 사상이었다면, 유교는 고려 건국 초부터 국가 운영의 이념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유교 체제를 기반으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제도와 과거제가 마련되어, 새로운 지식계층인 문사층(文士層)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고려의 지식인은 유교적 교양을 갖추었으며 관료적 질서 속에서 고려 사회를 이끌어나갔습니다. 유학과 문학에 능력을 갖춘 새로운 지식인은 문장을 짓고 그것을 글로 써 서예라는 예술로 변모시켰습니다. 그들은 시와 서예, 회화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문방구, 공예품을 감상하는 고급 취향과 감식안을 지녔습니다. 예술품을 애호하고 완상하는 안목은 문인의 교양이 되었습니다. 유교적 관료제도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지식인은 사상의 지평을 넓혀 다채로운 문화를 만들어냈고, 다양한 미적 기준과 취향을 마련하여 고려 미술을 새로운 차원으로 높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안향초상, 전 이불해, 조선 16세기 중엽, 비단에 채색, 국보, 소수서원>


<안양 초상, 얼굴 부분>

안향(安廟, 1243~1306)은 고려에 최초로 주자성리학을 전파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현(1287-1367)과 같은 제자를 육성함으로써 고려 말 신진사대부 대두의 기초를 닦았던 인물이다. 고려시대 안향의 초상은 1318년 원나라 화가가 그려 문묘(文廟)에 봉안한 문묘본과, 이를 저본(底本)으로 하여 안향의 고향 흥주(興州, 지금 영주시 순흥읍 일대)에 이모한 흥주향교본(興川鄕校本)이 있었다. 이 작품은 1559년 이불해(李不害, 1529~ )가 흥주향교본을 모사한 모본으로 보인다. 화폭 상단에는 안향의 진영이라는 화제(畵題)와 함께 안향의 아들 안우기(1265~1329)가 쓴 찬문이 활달한 행서체로 옮겨져 있다. 대학자로서의 경륜과 인자한 덕성을 드러내면서도 단아한 체구와 당당한 자세를 더욱 강조하여, 이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신진사대부의 등장을 선언하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이색 초상, 작가미상, 조선 18세기, 비단에 채색, 보물>

이색(李穡, 1328~1396)이 이 오사모(烏紗帽)와 당홍색 단령(團領)을 착용하고 서대(犀帶)를 한 반신상이다. 이색은 이제현(1287~1367)의 문인으로 1343년 원나라 국자감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했다. 이 초상은 필선 위주로 얼굴을 표현하고 선염이 거의 없는 고식이다. 사모 높이가 평탄하고 좁고 긴 양각이 아래로 처져 있으며 단령의 깃이 좁은 여말선초의 상복(常服) 차림을 보여준다. 이사의 초상은 여러 차례 이모되었는데 여말선초의 초상화법과 양식을 보여주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족자 장황의 뒷면 하단에는 다음과 같은 화기가 적혀있다.
“마전영당(마전은 지금의 경기도 연천군 안에 있던 고을이름)의 구본을 기묘년 3월에 다시 꾸민다. 옛 족자에 후학 허신이 쓴 찬문이 있다. 화백 최근배에게 부탁하여 이 본을 따라 정성것 3본을 그려 덕산 누산, 장단의 오이릉, 평산의 영귀사에 각각 봉안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육마도권(六馬圖卷), 작가미상, 오른쪽 반 금 12세기말 ~ 13세기초, 비단에 채색, 미국 메트로 폴리탄박물관>


<육마도권 중 가운데 부분>

<육마도권(六馬圖卷), 작가미상,왼쪽 반 원 14세기, 비단에 채색, 미국 메트로 폴리탄박물관>

당나라 떄 준마는 고상하고 용맹한 귀족의 정신과 세상의 물질적 번영으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말그림이 크게 발전하였다. 이떄의 말그림은 호건, 호괴의 엽기도(獵騎圖) 계열과 위언, 조패, 한간의 유기준마도(遺騎駿馬圖)계열로 크게 구분되는데, 모두 힘차고 사실적이었다. 이외에 충직한 신하와 이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통치자를 표상하게 된 목마도(牧馬圖)가 있었다. 송나라 이공린(1049추정 ~ 1106)은 이를 백묘(白描) 위주의 다소 사의적인 양식으로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원대에는 다양한 말그림 전통이 부활하여 크게 유행하였는데, 이 그림은 이를 잘 보여준다. 화면 상단부에 실루엣으로 묘사된 언덕을 배경으로 매사냥을 나온 4명의 응사(鷹師)와 그들이 데려온 말이 버드나무 주위에 모여 있다. 화폭 끝부분에는 버드나무에 2마리 말이 매어있다. 오른편 그림은, 모두 인물과 말의 사실적인 세부 표현과 짙은 채색 음영법으로 보아, 북방 사실주의 전통에 익숙했던 하게 된 금나라 직업화가의 그림으로 여겨진다. 왼편에 그려진 3마리 말은 채색과 음영이 도식적이고 인물이 사의적인 안장도 없이 말에 올라탄 모습, 인물이 쓴 전립(戰笠)의 형태 등을 감안할 때 원대 14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은 조맹부(趙孟顯, 1254~1322)와 이제현李齊賢(1287~1367)과 같은 14세기 동아시아 서화가들에게 계승된 북방 사실주의 회화전통의 실체와 그 영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고려시대 회화작품의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공민왕과 이제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림 몇점이 전해오고 있다. 원(元)과 교류가 많았던 당시 고려사회를 반영하여 당시 유행했던 사실주의인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엽기도(獵騎圖), 전 공민왕, 고려 14세기(추정), 비단에 채색>

‘눈 쌓인 들판을 배경으로 말달리는 두 명의 호인은 털로 감싸고 깃털을 ‘꽂은 고깔모자와 털옷을 입었으며, 동개 일습을 갖추고 수렵에 나서고 있다. 언덕의 가장자리에 무수한 점을 찍고 먹으로 옅게 선염하여 공간감을 나타냈으며, 마른 나뭇가지는 해조묘(蟹爪描)에 가깝게 표현 하였다. ‘고려공민왕’이라는 묵서가 있으며 〈출렵도(出獵圖)>와 함께 〈천산 대렵도天山大獵圖〉로 지칭되어 왔다. 원래 하나의 두루마리에서 분리된 편화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필법이 생동감 넘치 면서도 섬세하여 고려 후기 감상화의 높은 수준을 엿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렵도(出獵圖), 전 공민왕, 고려 14세기(추정), 비단에 채색>

겨울 산기슭을 말달리는 호인을 그렸다. 평행한 사선을 중첩하여 산이 경사를 나타내었고, 위쪽은 휘게 남겨 눈을 표현하고 아래쪽은 석록과 석청으로 채색했다. 이는 고식 청록산수의 수법으로 작품의 연대를 고려시대로 추정하는 근거가 된다. 인물과 말의묘사와 진행방향, 배경을 묘사한 수법이 <엽기도>와 일치한다. 화풍과 내용이 유사한 <음산대렵도(陰山大獵圖)>는 원래 낭선군 이우(1637~1693)의 소장품이었으며, 낭선군 사후 여러 조각으로 흩어졌다고 한다. 이 기록에 따르면 <엽기도> 및 <출렵도>, <음산대렵도>가 원래 하나의 그림에서 분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근역서휘(槿域書彙) 중 이제현과 안양의 글, 고려 14세기, 종이에 먹>

<근역서휘(槿域書彙) 중 이색과 이집의 글, 고려 14세기, 종이에 먹>

근역서휘는 근대 서예가이자 수장가인 오세창(1864~1953)이 엮은 서첩이다. 안향과 이제현을 비롯하여 고려시대 유묵이 여러점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익재 이제현의 글은 송도팔경 중 박연폭포의 웅장함과 청량감을 노래한 시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 권7~9, 고려 14세기, 종이에 인쇄, 보물, 삼성출판박물관>

고려 후기의 문신이었던 졸옹 최해(1288 ~ 1340)가 엮은 시선집으로, 권7 권9가 수록된 1책만 남아 있다. 신라 말 최치원부터 고려 충렬왕 때까지 명현의 저술을 엮어 ‘<동인지문(東人之文)>이라 하고, 시와 문장, 변려문을 엮은 것을 각각 <오칠(五七)>, <천백(千百)>, <사륙(四六)>이라 하였다고 한다. 고려 문인들이 즐겼던 시문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어서 한문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 전 이제현, 고려 14세기 전반, 비단에 채색>

눈 덮힌 바위산을 배경으로 얼어붙은 강을 건너고 있는 말과 호복입은 사냥꾼을 그렸다. 오른쪽 상단에 ‘익재’라는 글씨와 ‘이재현인’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어서 그의 작품으로 전한다. 이제현은 원나라의 만권당에서 당대 최고의 문사들과 시문서화를 교유하며 원대문화를 수용했고, 이는 고려말 조선초 문예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조맹부의 <추교음마도>에 필적하는 국제적 양식의 뛰어난 작품으로, 만권당을 매개로 절정에 달했던 원나라와 고려 간 문예 교류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1. 청자 동자 모양 연적, 고려 12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2. 청자 사자장식 베개, 고려 12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3. 청자 거북이 모양 연적, 고려 12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