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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굴불사지, 백률사 아래 있는 절터

경북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기슭 아래에 있는 절터인 굴불사지(掘佛寺址)이다.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이차돈의 순교와 관련된 백률사(栢栗寺)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8세기에 경덕왕이 백률사를 행차했을 때 염불소리가 들려 땅을 파보니 큰 돌이 나와 4면에 불상을 새기고 불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발굴.조사 결과 ‘동사(東寺)’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으며, 고려시대 쇠북에는 굴석사 (掘石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현재 절터에는 통일신라 사방불(四方佛) 신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인 석조사면불상(보물)과 절터였음을 보여주는 건물초석들이 남아 있다.

<굴불사지 절터>

또한 경덕왕(景德王)이 백율사(栢栗寺)에 행차하여 산 아래에 다다랐을 때 땅속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들리므로 사람을 시켜서 파보라고 하니 큰 바위가 있는데, 사면에는 사방불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절을 창건하고 그 이름을 굴불(掘佛)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그릇되이 굴석(掘石)이라고 한다. (삼국유사 권 제3 제4 탑상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굴불사는 통일신라 경덕왕이 백률사 아래 바위에 사방불을 새기면서 창건된 사찰로 백률사를 오르는 언덕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백률사 오르는 길 입구>

<백률사 오르는 길 중간에 위치한 굴불사지>

절터에는 통일신라 때 조성된 석조사면불상(보물)이 남아 있다. 큰 바위 에 불상을 새겼는데 서쪽에는 아미타여래, 동쪽에는 약사여래, 북쪽에는 미륵보살, 남쪽에는 석가모니를 새긴 사방불(四方佛)이다.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뒷편에서 본 모습>

1980년대 이후 절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기와, 주춧돌 등의 건축부재와 ‘굴석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쇠북 등이 출토되었다.

<절터에 남아 있는 주춧돌>

<옛 건물터에 놓여진 주춧돌들>

<절터에서 출토된 건축부재들>

절터에서는 굴석사 (掘石寺)라는 글자가 새겨진 쇠북이 출토되었다. 고려시대 초인 1183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대정(大定) 23년(1183) 4월. 동경(경주)의 북산(소슴강산) 굴석사(굴불사)에 둔다. 무게는 일곱 근이 들어갔다. 담당하여 만든 사람은 전 호장 이백유이고, 동량은 도인 __이며, 대장은 의성이다.

<쇠북(金鼓), 경주 굴불사 터 출토, 고려 1183년>

백률사는 이차돈의 순교와 관련된 사찰이다. 이차돈의 목을 베었을 때 잘린 목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진 곳에 백률사를 세웠다고 한다.

<경주 백률사(栢栗寺)>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5. 삼국유사,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