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 입구에 있는 숭혜전이다. 경주 김씨 중 처음으로 왕이된 13대 미추왕과 삼국통일을 이룬 30대 문무무왕과 마지막 경순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원래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었으나 구한말 고종 때 사당을 크게 짓고 미추왕과 문무왕의 위패도 같이 모시게 되었다. 맞은편에는 시조인 김알지(金閼智)를 모시는 사당인 계림세묘(桂林世廟)가 있다. 이곳은 경주김씨를 비롯하여 김알지의 후손이라 일컫는 많은 성씨들이 함께 조상을 모시는 공간이다. 조선후기에 시조를 모시는 공간인 박혁거세를 모시는 경주오릉 숭덕전과 수로왕릉의 예를 따라 구한말에 기능을 확장했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탈해왕을 모신 숭신전도 세워졌다.
<경주 숭혜전>
<숭혜전 신문>
<위패를 모신 숭혜전>
<제기고>
숭혜전 신문 앞 마당에는 서원 동.서재와 비슷한 형태의 건물이 양쪽에 세워져 있다.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로 볼 수 있다.
<영육재>
<경모재>
<영육재 뒷편 부속건물>
미추왕은 김알지의 6대손으로 조문왕의 사위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에 백제와의 약간의 충돌은 있었지만 큰 변화는 없었던 시기이다. 미추왕의 뒤를 이어 석씨인 유례왕이 왕위를 계승했으며, 이런 형태의 왕위계승은 내물왕대까지 이어졌다. 내물왕 이후 신라가 멸망하기까지 대부분 기간 왕위를 계승했다. 경순왕의 후손인 경주 김씨를 비롯하여, 안동김씨, 광산김씨 등 600여개의 성씨가 후손들이다. 숭혜전 뒷편 대릉원에 미추왕릉이 있는데 다른 고분과는 달리 삼문과 담장을 두고 이다.
<경주 미추왕릉>
숭혜전 앞 마당에는 경순왕 신도비가 세워졌으며 남쪽에 경주김씨 시조 김알지를 모시는 계림세묘(桂林世廟)가 있다.
<숭혜전 앞 광장>
<경순왕 신도비>
<계림세묘로 가는 길>
<계림세묘 삼문>
<계림세묘>
<경주 계림(사적)>
숭혜전(崇惠殿), 경북 경주시 황남동 216
숭혜전 건물내에는 신라 최초의 김씨 임금인 13대 미추왕(味鄒王)과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30대 문무대왕, 그리고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위패를 모셨다. 원래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처음 월성(月城)에 사당을 지어 영정(影)을 모시고 제향했으나,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불타고 인조 5년(1627) 동천동에 새로 사당을 지어 동천묘(東界)라 하고 경순왕의 위패를 모셨다. 경종 3년(1723) 경순왕전으로 고치고 정조 18년(1794)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황남전(皇南殿)이라 고쳤다. 그 후 고종 24년(1887)에 미추왕의 위패를 모시고, 이듬해 문무대왕의 위패도 같이 모시게 되었다. 이때 고종황제가 사당을 크게 짓게 하고 숭혜전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앞면 5칸, 옆면 3칸인 맞배집으로 왼쪽에 영육재(永育齋), 오른쪽에 경모재(景慕齋)가 있다. 앞에는 경순왕 신도비와 비각이 있고, 길 건너에 계림세묘(桂林世廟)가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 두산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