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시 사등면 사등리에 있는 사등성(沙等城)이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으로 육지로 피신했던 주민들이 조선초 세종 때 돌아오고 거제현 관아가 복구되면서 읍치가 되었던 읍성이다. 사등성은 해안과 너무 가까우면서 평지에 위치하고 있어 수비하기 힘든 점이 있었으며 읍성 내부도 면적이 넓지 않아 많은 주민들을 수용하기에 부족했다. 이런 이유로 문종 때 관아를 인근 고현성으로 옮기면서 읍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조선초기에 쌓았던 읍성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으로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거제 사등성>
성벽의 둘레는 986 m이고 높이는 6.1 m 정도이다. 동서남북으로 성벽의 길이 250m 정도인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동.서.남.북으로 4곳에 성문을 두고 있으며 그 사이에 방어를 위해 치성을 쌓았다. 성벽 바깥에는 폭 20 m 정도의 해자를 파서 수비를 강화하였다.
<거제 사등성>
현재 사등성은 북문 주변 성벽을 발굴,조사과정을 거치면서 옛모습으로 복원해 놓고 있으며 나머지 성벽은 복원하기 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북문 동쪽편 복원된 치성>
사등성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북쪽 성벽은 당시 규정에 따라 성벽 안쪽에 낮은 계단을 두고 있으며, 서쪽 성벽은 계단 위에 다시 석축을 쌓아 올렸음이 확인되었다. 복원된 성벽은 발굴조사 때 확인된 축성방식에 따라 복원하였다.
<서쪽 성벽(바깥쪽)>
<서쪽 성벽(위)>
<서쪽 성벽 (안쪽)>
<북쪽 성벽(바깥쪽)>
<북쪽 성벽(안쪽)>
사등성지의 정비.복원과 관련하여 2012년과 2014년 북쪽 성벽을 조사한 결과 계단식 내벽이 조사되었고, 2015년 서쪽 성벽 조사에서는 무너진 기존 성벽 상부에 수직에 가까운 내벽을 쌓은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세종 20년(1438년)의 <축성신도>의 규정에 따라 내벽을 계단식으로 축조한 사실과 세종 이후 내벽을 수직되게 축조한 사실을 증명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따라서 원형 보존 차원에서 구간별 발굴조사 된 수법대로 정비.복원하였다. (안내문, 거제시청, 2022년)
사등성은 동,서,남,북 4곳에 성문을 두고 있는데 성문 앞에 ‘ㄱ’자 형태로 옹성을 두어 방어를 보완하고 있다. 성문 사이에는 앞쪽으로 돌출된 치성을 두고 있다. 사등성은 조선초 쌓은 규정에 따라 제대로 쌓은 읍성으로 옹성이 조선 초기에 사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문 옹성>
<옹성 출입문>
<옹성에서 읍성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문>
<성벽 위에서 본 옹성>
<옹성에서 본 서쪽 성벽>
북문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성벽은 아직 보원되지 않아 복원하기 전 읍성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성벽의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북문 남쪽편 성벽(바깥쪽)>
<북문 남쪽편 성벽(위)>
<북문과 서문 사이에 있는 치성>
사등성지, 경남 거제시 사등면 사등리
이 성은 삼한시대 변진 12국 중의 하나인 독로국의 왕성이었다고 하나, 증명할만한 자료는 없다. 다만 조선의 <문종실록>에 의하면 고려 말엽 왜구의 침략을 당해 거창으로 피난을 갔던 거제도민이 조선 초기에 왜구의 침략이 줄어들자, 섬안의 수월리라는 곳으로 들어와 나무로 방책을 쌓고 거주하였다고 한다. 그 뒤 1426년(세종 8)에 거제현의 관아가 수월리에서 사등리로 옮겨지면서 성을 쌓기 시작하여, 1448년(세종 30)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후 이 성은 거제현의 관아를 고현으로 옮길 때까지 거제읍성으로 사용되었다. 평지에 쌓은 이 성은 둘레 986 m, 높이 5 m, 폭 5 m의 규모이다. 사방에 성문을 두었는데, 이 성문에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낮은 담을 설치하였다. 입구는 ‘ㄱ’자 모양의 또 다른 성을 마련해 외부로부터 완전히 엄폐되어 있다. 전체적인 형태는 ‘卍’형을 이루며, 성 주위에 폭 20 m의 방어용 도량을 설치하였다. 현재는 성안에 학교와 마을이 있고, 성밖은 농경지이다.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조선시대 성곽 연구의 좋은 자료이다. 1980년대 국고의 지원을 받아 성곽의 일부를 복원하고 주위를 정화하여 보호 관리하고 있다. (안내문, 거제시청, 2010년)
<출처>
- 안내문, 거제시청, 2010년, 2022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