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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천축산 불영사(佛影寺)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천축산(天竺山)에 자리한 불영사(佛影寺)이다. 신라 진덕여왕 때(651)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로 서쪽 산 등성이에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가 절 앞 연못에 비침으로 불영사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영산전(현 응진전)을 제외하고 화재로 모두 불타버렸으며 그 이후에 여러차례 화재가 있었으며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큰 연못을 조성하고 대웅전 기단에는 2기의 거북상이 건물을 받치고 있다. 불영사에는 대웅보전(보물), 웅진전(보물), 영산회상도(보물), 삼층석탑, 부도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 절의 오랜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1968년부터 비구니 선원 수행도량으로 지정되었다.

<울진 천축사 불영사>

불영사는 울진군과 봉화군을 연결하는 옛 36번 국도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옛도로는 광천 계곡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 울진과 봉화를 왕래하는 신도들이 잠시 머물수 있는 입지조건을 갖고 있다.옛 도로에서 계곡을 건너 숲길을 따라 20 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된다. 계곡이 사찰을 태극모양으로 휘감으면서 돌고 있어 빼어난 길지로 손꼽힌다.

<도로 근처에 있는 일주문>

<불영사 계곡>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

<불영사 들어가는 길>

불영사는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응진전, 의상전, 극락전, 명부전 등 불전과 비구니 선원 수행도량답게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을 두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부처바위가 연못에 비치는 모습이 인상적인 불영지가 있다.

<불영사 가람배치>

주불전인 대웅보전(보물)은 여러차례 화재로 소실되면서 조선후기 영조  때 중건된 불전이다. 건물 내부에 원래 칠했던 단청이 잘 남아 있는데 그린 기법의 수준이 매우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건물 기단 밑에는 돌거북을 놓아 건물을 받들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는 여러차례 화재로 소실된 점을 고려하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건물내부에는 영산회상도(보물)와 신중탱화 등 수준높은 불화들이 모셔져 있다.

<주불전인 대웅보전>

영산회상도(보물)는 석가여래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가운데 석가여래가 있는데 손가락을 땅으로 항하게 하고 있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주위에 10대보살, 사천왕산, 10대 제자 등이 있다. 석가여래의 옷이 붉은색이고 광배가 붉은 테를 두른 점은 조선후기 불화양식보다 약간 앞선 양식이다. 조선후기 영조 때(1733년)에 그려진 그림이다.

<주불전에 모셔진 불상과 영산회상도(보물)>

<대웅보전에 있는 신중탱화>

대웅전 앞 삼층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탑신을 올려 놓은 전형적인 삼층석탑이다. 기단과 탑신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겨 놓은 것 외 특별한 장식이 없다. 높이 3.2m 정도의 작은 석탑으로 전체적인 비례가 안정적이다. 조각수법이 양식 등으로 볼 때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층석탑>

<대웅보전 앞 강당건물인 설법전>

응진전(보물)은 임진왜란 때 화재로 불영사가 불에 타 버렸을 때 홀로 남은 불전으로 당시는 영산전이었다고 한다. 이후 어느 시기에 석가모니와 제자들을 모신 응진전으로 바뀌었으며 영산전의 기능은 주불전인 대웅전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에 조성된 영산회상도는 대웅전에 모셔져 있다.

<응진전(보물)>

대웅보전과 응진전 외에 극락전, 명부전, 의상전, 칠성각 등의 불전이 있는데 대부분 최근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명부전>

<의상전>

<칠성각>

극락전은 대웅전이 있는 중심영역에서 약간 떨어진 불영지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별도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깊은 산중에 있는 사찰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공간으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불전이다.

<극락전>

불영사는 석가모니와 제자들을 모시는 응진전을 두고 있어 예로부터 수행중심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8년부터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많은 요사채들을 두고 있다.

<대웅전 앞 종무소>

<맞은편 황화실>

<큰규모의 수행공간인 청풍당>

<무위당, 천축선원 등 요사채들>

물위에 비치는 바위의 모습이 석가모니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불영사라고 이름지어진 사찰이다. 부처바위가 물위에 비친다는 불영지가 사찰의 중심공간이 되고 있으며 그 주위로 불전들이 주로 배치되어 있다. 또한 여러차례 화재로 전각들이 소실된 사찰내력을 고려항 화기(火氣)를 누르고자 하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기단을 받치는 거북모양 조각상도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

<불영지와 법영루>

<대웅보전 기단 아래 돌거북>

천축산 불영사
천축산 불영사는 광천이 휘돌아 감아 산태극(山太極).수태극(水太極)을 이루어 양 기운이 서로 합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길지에 해당한다.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651) 의상대사가 이곳에 도착하여 산세를 보니 서역의 천축산과 비슷하고 물 위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치므로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천축산 불영사’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불귀사’ 또는 ‘불영암’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불영사는 1396년(태조 5) 화재로 소실되어 이듬해 소운법사가 재건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영산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탔으나, 1602년(선조 35) 인섬스님이 대웅전을 중건하고 1609년(광해군 1) 성원법사가 불영사를 중창하였다. 다시 1720년(숙종 46) 불영사에 화재가 발생하여 대웅전과 선당 등이 소실되었으나 1725년(영조 1) 천옥법사가 불영사를 중수하였으며, 1899년(고종 광무 3) 설운선사가 중수하는 등 여러 차례 중수되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 고찰로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문, 울진 불영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울진 불영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