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중앙박물관특별전, 에트루리아]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보물

다른 고대 문명 지역과 마찬가지로 에트루리아 무덤 부장품 중에는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황금을 비롯한 귀금속으로 만든 화려한 장신구들이 있다. 이들 물품은 무덤주인 높은 사회적 위치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금으로 만든 장신구가 부장품으로 사용되었으며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동방화 시기 이후에는 더욱 화려하고 세련된 금장신구가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

<1. 브로치, 기원전 6세기, 금, 2. 피불라(Fibulae), 기원전 6세기 초, 금, 3.4. 피불라, 기원전 7세기 후반, 금, 5. 피불라, 기원전 7세기 중반, 금(누금), 토스카나 베툴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1.  브로치, 날개 달린 고르곤을 새긴 핀이 달린 브로치입니다. 주로 의복에 사용했으며, 피불라처럼 어깨나 가슴 부근에서 옷을 여미는데 사용했습니다. 초기에는 남성들만 사용하는 장신구였으나, 나중에는 여성을 묻은 매장지에서도 발견됩니다. 고인의 머리에 꽃힌 채 발견된 것으로 보아 머리꽃이로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3.4. 피불라, 기원전 7세기 후반, 금,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의복 또는 장신구의 안전핀입니다. 에트루리아의 피불라는 주로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며 유리, 호박 등 다른 재료들로 장식되기도 했습니다. 양식과 장식이 다양하여 부장품의 연대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거머리 형태의 피불라는 여성들이 사용했으며, 용 모양의 피불라는 주로 남성들이 착용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1. 머리판, 기원전 7세기 중반, 금, 토스카나 피렌체 비센지오,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빌라노바 시대부터 널리 퍼졌던 전형적인 여성의 장신구입니다. 단순한 형태는 대부분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나, 동방화 시기에는 대개 금이나 은으로 제작된 것들이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머리핀은 주로 한 쌍으로 발견되는데, 얼굴 양옆으로 땋은 두 갈래의 머리끝을 고정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한 개씩 제작된 것은 하나로 굵게 땋은 머리를 고정할 떄 사용했던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3. 머리핀, 기원전 7세기 중반, 청동에 금, 토스카나 피렌체 비센지오,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화관, 기원전 4세기, 금, 토스카나 오르베텔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머리띠와 왕관은 헬레니즘 시기의 전형적인 머리 장신구입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가 생전에 사용하였으며 명예와 존경의 상징이었습니다. 장례식과 같은 행사에서 주로 살아 생전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넣으둔 것으로 보입니다. 나뭇잎 무늬가 새겨진 직사각형의 얇은 판으로 제작되었으며, 가장 단순한 형태의 장식 중 하나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월계관, 기원전 2세기, 금, 토스카나 피사 리파르벨라, 체치나고고학박물관>

<1. 팔찌, 기원전 7세기 전반, 금,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2. 팔찌, 기원전 7세기 전반, 금, 토스카나 베툴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에트루리아 동방화 시기에 널리 퍼졌던 금세공품 중 하나입니다. 남부 에트루리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비슷한 유형의 다른 유물이 베툴로니아와 마르실리아, 달베냐에서도 여러 점 발견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1. 목걸이, 기원전 4세기, 금,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여성용 장신구로서 목걸이의 인기는 헬레니즘 시기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석류 모양의 구슬로 만들어진 목걸이처럼 소박한 형태가 있었는가 하면, 드리개 등 여러가지 장신구들이 달린 더욱 섬세한 목걸이들도 있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반지, 기원전 4세기 후반, 금, 마노, 토스카나 포풀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반지는 금세공술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아르카익 시기부터 직인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가장 정교한 반지 중에는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실제 혹은 가상의 동물, 심지어 복잡한 장면을 묘사하여 세공한 경우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3. 귀걸이, 기원전 3세기, 금,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피사-리보르노 관할 문화유산관리국>

기원전 5세기 경 북부 에트루리아에서 유행한 원통형 귀걸이입니다. 고리가 달린 단순한 형태에서 누금, 돋을새김, 드리개로 화려하게 장식된 형태로 기원전 3세기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4. 귀걸이, 기원전 5세기 전반, 금,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5. 귀걸이, 기원전 6세기 말, 금,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아르카익 시기의 에트루리아에서 가장 유행했던 장신구입니다.  중부 이탈리아 서부 전역에서 널리 유행했으며 여러 지역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6. 귀걸이, 기원전 7세기 말 ~ 6세기 중반, 금, 토스카나 시에나 키우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에트루리아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보물
부장품은 에트루리아 귀족들의 생활방식을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무덤 안에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물품을 진영하여, 죽음의 순간에도 사회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에겐 사치란 단지 물건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과시하는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에트루리아의 귀족들은 화려한 의식용 연회, 값비싼 선물교환 등에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빌라노바 시기에도 이미 금장신구가 부장품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동방화 시기에는 더욱 발전되고 세련된 형태의 귀한 금 장신구가 널리 보급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2.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