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공예의 출발은 청동기제작에 사용된 쇳물을 녹여 거푸집에 부어 형태를 만드는 주조기법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으며, 금.은과 같은 귀금속을 두드려서 모양을 만드는 단조기법 또한 그 유래가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금속공예품을 만드는 방법은 이 두가지에다가 각종 장식과 무늬를 새겨 넣는 방법으로 낱알장식기법, 새김기법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금속공예는 삼국시대에 크게 발전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신라의 금관이다. 신라 금관 외에도 백제 금동향과 무령왕릉 관장식, 가야의 화려한 장신구와 무기류, 금동반가사유상을 비롯한 다양한 금동불상 등 수많은 걸작들이 삼국시대에 만들어졌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불교의 성장과 함께 불교공예품이 많이 만들어졌으며, 고려시대 이후에는 생활용품에도 금속공예품이 많이 사용되었다. 외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삼국시대 금속공예기술의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 금속은 단단하고 변형이 적으며 특유의 아름다운 광택을 지니고 있다. 희소가치가 크고 가공하는 데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금속은 처음에는 지배 계층의 전유물로 실용품보다는 권위를 상징하는 물품으로 제작되었으며, 이후 사용 계층과 활용 범위가 점차 확대되었다. 우리나라의 금속공예는 기원전 10세기 무렵의 청동 거울, 동검 등 권위의 상징물로부터 시작되었다.
-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국보)
-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국보)
- 농경문 청동기 (보물)
-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 (보물)
- 경산 신대리 1호 목관묘 출토 청동호랑이모양 띠고리 (보물)
금속공예가 본격적으로 발달한 시기는 삼국시대이다. 금과 은을 사용하여 관, 허리띠, 귀걸이 등을 정교하게 제작하였다. 또한 불교의 성장과 함께 범종, 사리장엄구 등 불교공예품이 활발히 제작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청동그릇 등 실용적인 금속공예품이 많아졌고, 당.일본 등과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더욱 다양하고 세련된 기형과 문양이 갖추어졌다. 고려시대에는 화려한 은제 공예품이 많이 만들어지는 한편, 민간에서 모두 청동 그릇을 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금속공예가 전성기를 이루었다.
- 금관/관꾸미개
- 무령왕 금제관식 (국보)
- 무령왕 금제뒤꽂이 (국보)
- 무령왕비 금제관식 (국보)
-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국보)
- 천마총 금관 (국보)
- 천마총 금제관식 (1978-1, 보물)
- 천마총 금제관식 (1978-2, 보물)
- 천마총 관모 (국보)
- 황남대총 북분 (국보)
- 황남대총 북분 은제관식 (보물)
- 황남대총 남분 금제관식 (보물)
-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국보)
- 금령총 금관 (보물)
- 서봉총 금관 (보물)
-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보물)
- 부산 복천동 출토 금동관 (보물)
- 금/은장신구
-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국보)
- 무령왕 금귀걸이 (국보)
- 무령왕비 금목걸이 (국보)
- 무령왕비 금귀걸이 (국보)
- 무령왕비 은팔찌 (국보)
- 금관총 금제 허리띠 (국보)
- 황남대총 북분 금제허리띠 (국보)
-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보물)
-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보물)
-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국보)
- 천마총 목걸이 (보물)
- 경주 노서동 금팔찌 (보물)
-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보물)
-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 (보물)
- 경주 황남동 상감유리구슬 (보물)
- 경주 계림로 보검 (보물)
-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보물)
생활용구. 금속제 그릇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무덤 부장품으로 주로 만들어졌으며 오늘날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고려시대 이후에는 금속으로 만든 그릇이 점차 일상생활에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옛 기록에도 이에 대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금속제 그릇은 음식을 먹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며,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는 향그릇이, 조선시대에는 여인네들의 화장품 그릇 등이 만들어 졌다. 그 중 조선시대 화장품 그릇은 그 제작수법이 화려하고 뛰어나다. 청동거울은 청동기시대부터 사용되어온 것으로 전국의 주요 박물관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전시되어 있다. 원래는 제사장이나 부족장의 권위를 나타내는 주술적인 용도였으나, 점차적으로 화장을 위한 일상용품으로 그 용도가 변하고 고려시대에 보편화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