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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수양개 원삼국시대 유적

구석기유적이 발견된 I지구 남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수양개II지구는 남한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원삼국시대 유적지이다. 이곳은 1995~1996년에 걸처 유적의 성격과 범위 확인에 중점을 두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유적지의 규모는 약 3만여평으로 발굴조사 결과 26기의 네모꼴, 凸자형 집터 흔적과 불땐자리 유적이 발견되어 큰 마을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3전시실에서는 1990년대 발굴조사된 수양개II지구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된 유물들로는 원삼국시대 토기들을 비롯하여 농업을 비롯한 일상생활에서 사용된 석기, 철기 등이 있다. 또한 발굴조사 당시의 사진도 함께 전시되어 발굴.조사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제3전시실, 번영의 자취, 수양개 원삼국시대 유적
수양개 II지구에서는 대규모의 원삼국시대 생활유적이 발굴되었다. 3전실에서는 축소.복원된 원삼국시대 집터를 확인할 수 있으며, 집터에서 출토된 토기, 석기, 철기 등을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삼국시대 생활모습이 디오라마로 제작되어 수양개인의 생활과 문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출처: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수양개 II지구 전경(발굴조사 당시의 모습)>

수양개 II지구는 구석기유적이 발견된 I지구 남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넓은 강변 지역이다. 1995~1996년에 걸처 유적의 성격과 범위 확인에 중점을 두고 조사를 진행하여 약 3만여 평에 걸친 범위에서 26기의 凸자형 집터 흔적을 발굴하였다.

<수양개 II지구 발굴조사 모습>

<발굴조사 현장 사진>

<2015년 봄 수양개 II지구>

물에 잠기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살지않은 강변 풍경이다.

원삼국시대의 한반도와 국제정세
원삼국시대란 기원 전후부터 300년 경까지를 말하며 후기철기시대라고도 한다. 북쪽에는 고구려,부여, 동예, 옥저가 성장과 쇠퇴의 갈림길에 있었고 남쪽에는 백제, 신라, 가야의 성장의 터전이 되었던 삼한이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낙랑군을 통해 중국 한나라의 철기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었으며, 특히 낙동강유역은 철을 생산하여 낙랑과 일본 등에 수출하였다. <출처: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원삼국시대 수양개인의 주거환경
원삼국시대에 이르면 선사인들의 주거형태가 수혈식가옥에서 점차 지상가옥으로 변화되어 온돌구조가 나타난다. 수양개 II지구에서 약3만평 이상 규모의 마을집터에서 네모꼴, ‘凸’자형의 집터 총26기와 4개의 불땐자리가 확인되어 대규모 집단 취락지였음을 알 수 있다. <출처: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전시실에 복원해 놓은 凸자형 집터>

수양개 II지구 22호 집터 복원
수양기 II지구에서는 부분조사로 총26기의 원삼국시대 집터가 발굴되었다. 22호 집터는 이 시기 가옥구조의 특징인 凸자형으로 화덕시설 및 서까래 구조와 벽체를 이루는 판자가 발굴되어 주거공간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출처: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집터 발굴 사진>

<생활모습(재현)>

발굴조사된 집터와 자연환경을 반영하여 원삼국시대 농경생활을 하던 수양개사람들이 생활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원삼국시대 수양개 사람들의 농경생활
철제농기구를 사용하는 원삼국시대의 농경생활과 수혈식가옥에서 지상가옥으로 변화된 주거환경을 축소(1/10) 재현한 것이다. <출처: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유적지에서 발견된 탄화밀을 비롯한 곡물들>

곡물
수양개 II지구의 집터에서는 다양한 곡물이 출토되었는데, 쌀, 보리, 밀, 팥, 녹두, 조, 콩 등이 있으며, 복숭아와 같은 열매의 씨도 출토되었다. 출토 곡물의 분석 결과 내륙 산간지방인 단양지역의 특성상 논농사 작물보다는 밭농사 작물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밀이 가장 많이 출토되어 주식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불 땐 자리 흔적>

원삼국시대 수양개인의 식생활 환경
수양개 II지구의 집터에서 탄화된 곡식과 복숭아씨 등 농산물과 멧돼지의 것으로 추정되는 짐승의 털, 개, 집돼지뼈가 출토되어 수양개인이 곡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길러 식생활에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농산물과 가축을 토기와 화덕을 이용하여 조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돌보습, 반달돌칼, 시루>

원삼국시대 새로운 토기제작기법의 발생
원삼국시대에는 청동기.초기철기시대에 이어 민무늬토기가 계속적으로 사용되었으나 크기가 커지고 아가리의 두께가 얇아지는 등의 변화가 나타났다. 또한 토기 제작방법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는데 물레가 사용되기 시작하여 성형기법이 발전하면서 토기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지하굴식 가마가 사용되어 온도조절이 가능하게 되어 연질토기와 경질토기를 의도대로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가마에서 토기를 구울 때 토기가 뒤틀리거나 파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굽기 전 토기 표면을 나무 막대기나 방망이로 두드려주는 기법이 등장하였으며, 그 결과 토기 표면에 두드림무늬가 나타나기도 한다. <출처: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납작밑 독(Pot with Bottom)>

수양개유적 출토 토기
수양개 II지구 집터에서 원삼국시대 두드림무늬 단지와 경질민무늬토기가 상당량 발굴되었는데, 밑바닥이 평평하고 입구가 밖으로 벌어지는 형태의 중도식토기 계통이다. 토기의 종류별로는 높이 40cm 이상의 단지가 많이 출토되었으며, 바리, 시루 등 다양한 종류의 시루가 출토되어 원삼국시대 토기 사용에 대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그 외에도 다양한 무늬를 가진 빗살무늬토기와 덧띠토기, 골아가리토기, 구멍무늬토기 등의 민무늬토기가 상당량 출토되어 신석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이르는 오랜 기간 동안 선사인의 주거지였음을 알 수 있다. <출처: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바리형토기(Deep Bowl), 둥근밑항아리(Pot with Rounded Bottom)>

<수양개II지구의 토기출토 모습>

<토기단지(Jar), 뚜껑있는 단지(Pot withj Lid, 복제품), 뚜껑(Lid), 바리(Bowl,복제품)>

<출토된 당시의 토기 모습>

석기와 장신구

철기시대가 도래해도 철제 농기구가 보급되기 전에는 석기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청동기시대의 것보다 정교하고 날카로운 석기들이 제작되어 농기구나 무기로 사용되었다. 원삼국시대 석기로는 돌도끼, 갈판, 갈돌, 숫돌, 화살촉, 그물추, 대패날, 발화석, 간석검 등이 있다. 수양개 II직의 집터 유적에서는 돌도끼, 돌보습, 간석검, 갈판, 반달돌칼, 숫돌, 발화석, 그물추, 돌화살촉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옥으로 만든 장신구가 출토되어 수양개인의 미적감각을 엿볼 수 있다. <출처: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단양 수양개 II지구 유적 출토 석기유물(발화석, 가락바퀴, 돌화살촉, 돌도끼, 그물추, 옥장신구), 원삼국시대>

철기
우리나라에서 철기가 처음 사용된 것은 기원전 5세기경부터로 추정되지만 본격적으로 철기가 제작되고 사용된 것은 원삼국시대(기원전후~300년경)부터이다. 원삼국시대에 들어와서 중국 한나라의 철기제작기술이 도입되고 농기구, 무기 등 다양한 철기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원삼국시대 철기의 종류로는 철검, 철모 등의 철제무기, 괭이, 보습, 낫, 호미 등의 철제 농기구, 등자, 제갈 등의 마구류 등이 있다. 이들 철기의 사용으로 원삼국시대에는 사회.경제.문화적으로 큰 변화가 나타났으며 이는 고대국가성립의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수양개 II지구 집터에서도 두껍창, 작살, 도끼, 손칼, 화살촉, 등자 등의 철제무기류와 마구류가 출토되었다. <출처: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발굴당시 철기 모습>

<단양 수양개 II지구 유적 출토 철기유물(발걸이, 삼지창, 쇠도끼, 쇳낫, 쇠창), 원삼국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