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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수양개 선사유적(사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남한강변에 있는 수양개유적(사적)이다. 남한강변 충적대지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선사시대 주거유적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중기구석기시대에 원삼국시대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서 비교적 넓은 지역에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곳은 1980년대 충주댐 건설로 단양읍과 주변 남한강변 마을이 수몰되면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곳이다. 1983년 이후 충북대학박물관에 의해서 8차례에 걸쳐 발굴되었으며, 발굴된 주요 유물들은 유적지 뒷편 언덕에 위치한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에 전시되고 있다.

<단양 수양개선유적지(사적)>

다른 선사시대 주거유적지들과 마찬가지로 남한강변 충적지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단양읍 주변 큰 마을이 있었던 곳으로 충주댐건설로 수몰되면서 1980년대 이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단양 수양개선사유적지 개요>

1980년대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수양개 마을이 있었던 수양개1지구에서 구석기시대 문화층과 유물들이 발견되었으며, 1990년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던 수양개II지구에서는 원삼국시대 집터와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수양개3지구는 2000년대에 선사유물전시관이 건립하기 위해 주변지역을 발굴.조사한 곳이다. 4,5지구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신라 적성비(국보)가 있는 적성산성에서 본 수양개 유적지>

<옛 단양군 읍치가 있었던 적성산성>

수양개 I지구

1980년대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1지구에서는 중기구석기부터 후기구석기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과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50여 곳의 석기제작소가 확인되어 이 시기 구석기인들이 석기제작 방법에 대하여 추정.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또한 돌날몸돌과 자루를 끼울 수 있도록 슴베가 달린 찌르개는 중국 화북지방, 시베리아 남부, 일본열도의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에서 나온 석기들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1980년대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수양개1지구>

중기구석기부터 후기구석기시대까지 다양한 문화층과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기 전 수양개마을>

<발굴.조사 당시의 모습>

<발굴당시 유물 출토모습>

<수양개유적지에서 출토된 주먹도끼>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류는 거의가 아슐리안 주먹도끼와 비슷한 것이지만 수양개 유적의 일부 주먹도끼가 형태와 제작기법상 후기 아슐리안 전통의 무스테리안 주먹도끼와 유사함을 보인다. 특히 후기구석기 문화층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는 격지 면의 수가 많고 전체 둘레에 대한 안팎날의 비율이 높다.

<슴베찌르개>

후기구석기시대에서 볼 수 있는 돌날몸돌과 자루를 끼울 수 있도록 슴베가 달린 찌르개는 중국 화북지방, 시베리아 남부지방, 일본 열도의 것들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수양개 I지구 50여개 소의 석기제작소 복원 모습>

약 1,250㎡의 I지구 발굴지를 축소(1/10).복원하였으며, 이곳에서 출토된 50여 개소의 석기제작소의 위치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모루돌/망치돌, 격지>

<부합유물(Refited flades), 재조립된 석기>

수양개 II지구

1990년대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2지구는 원삼국시대 유적으로 여러곳의 집터가 확인되었으며, 다양한 기형의 토기, 석기, 철기 등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 중부내륙지역에서 발견된 원삼국시대 생활유적으로 대규모 취락을 이루고 있으며, 집터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서까래 구조나 벽체를 이루는 나무판자 등이 불탄 채로 확인되어 당시 건축양식을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집터 내부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탄화곡물이 출토되었다.

<원삼국시대 집터와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된 2지구>

<발굴.조사 모습>

이곳은 1990년대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2지구>

2지구는 남한강변에 위치한 상당히 넓은 지역이다. 멀리 단양군 읍치가 있었던 적성산성과 죽령으로 연결되는 교통로가 보인다.

<수몰되는 지역>

수몰되는 지역으로 지금은 농지로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주변지역에서 집터를 비롯하여 다양한 주거유적과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발굴조사 모습>

<이곳에서 발견된 집터를 재현해 놓은 모습(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불 땐 자리 흔적>

<다양한 토기가 출토된 모습>

<집자리에서 발견된 토기>

<도구로 사용된 원삼국시대 석기들>

<철기 유물>

<원삼국시대 주거유적이 발견된 수양개 2지구>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

수양개유적 III지구는 선사유물전시관을 건립하면서 그 준비단계로 2001년에 발굴.조사 했던 곳이다. 자갈돌 석기 위주의 중기구석기 문화층, 돌날수법, 밀개, 새기개 등이 출토된 후기 구석기 문화층이 발견되었다.

<수양개 3지구 선사유물전시관 앞을 지나는 도로>

경사진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수양개3지구에서 출토된 후기구석기 유물>

<남한강 상류쪽으로 수양개 4,5지구>

충주댐에 수몰되지 않은 지역으로 아직 발굴.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지구 발굴조사 결과로 볼 때 유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아 있는 민가>

<수몰된 지역>

맞은편 넓은 지역은 수몰되어 있다. 농지가 꽤 넓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양 수양개 선사유적, 사적,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수양개에 있는 이 유적은 충주댐 건설에 따라 이 지역이 수몰됨으로 인하여 1983~1986년까지 충북대학교 박물관 팀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이 유적은 남한강 상류에 발단된 한데유적(사방을 가리지 않은 곳)으로 모두 1,250㎡가 발굴되었으며, 이 지역은 구석기(약2만년 전), 신석기(약 5천년 전), 청동기(약 3천년전)까지의 여러 시기의 유물과 문화층이 발굴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사유적이다. 주된 문화층인 후기 구석기 문화층은 49개 이상의 석기제작소에서 만들어진 많은 석기가 출토되었다. 출토된 꽃가루와 숯분석으로 보아 추웠던 시기에 살았던 이 유적의 사람들은 동북아시아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연장인 배모양 식기를 만들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만년을 전후한 시기의 우리나라와 아시아 지역에 살았던 당시 사람들의 문화전파나 이동경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