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 우리나라의 금속공예

금속공예의 출발은 청동기제작에 사용된 쇳물을 녹여 거푸집에 부어 형태를 만드는 주조기법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으며, 금.은과 같은 귀금속을 두드려서 모양을 만드는 단조기법 또한 그 유래가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금속공예품을 만드는 방법은 이 두가지에다가 각종 장식과 무늬를 새겨 넣는 방법으로 낱알장식기법, 새김기법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국립중앙방물관 3층 금속공예실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금속공예품의 제작기법과 종류, 형태 등을 설명하고 그 예를 볼 수 있는 문화재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전시하고 있다.  금속공예의 제작기법과 배경에 대한 설명을 보고 각 문화재를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운 문화재 감상이 될 수 있다.

<중앙박물관 3층 금속공예실>

우리나라의 금속공예는 삼국시대에 크게 발전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신라의 금관이다. 신라 금관 외에도 백제 금동향로과 무령왕릉 관장식, 가야의 화려한 장신구와 무기류, 금동반가사유상을 비롯한 다양한 금동불상 등 수많은 걸작들이 삼국시대에 만들어졌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불교의 성장과 함께 불교공예품이 많이 만들어졌으며, 고려시대 이후에는 생활용품에도 금속공예품이 많이 사용되었다. 외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삼국시대 금속공예기술의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금관(金冠, 삼국시대 신라 5세기, 경주 금령총 출토, 보물).

신라금관은 일제강점기 금관총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경주지역에서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에서 출토되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금관은 관테 위에 나뭇가지(‘山’자)와 사슴뿔 모양의 세움장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관 관테 위를 장식하고 있는 사슴뿔 모양의 세움장식.

 시베리아 사슴의 뿔을 형상화한 것이다. 나뭇가지 형상과 함께 하늘과 소통하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山’모양을 하고 있는 세움장식.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샤머니즘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관테 아래로 늘어뜨린 드리개.

방울을 비롯하여 다양한 장신구들로 꾸며져 있다.

금관(金冠, 삼국시대 신라 5세기, 경주 금령총 출토, 보물)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금관으로 관테 위에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의 세움장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라의 금관은 황남대총 북분 단계에 완성되며 국가의례 또는 장송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뭇가지 모양 장식과 사슴뿔 모양 장식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의 상징성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허리띠(金製銙帶, 삼국시대 신라 5세기, 경주 금령총 출토).

금관과 함께 껴묻거리로 묻어지는 금제 허리띠이다. 유목민들이 말을 타고 이동할 때 몸에 걸치고 다니는 다양한 생활용구들을 상징하고 있다. 신라금관의 주인이 유목민들과 관련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유물이다.

허리띠를 장식하고 있는 띠꾸미개.

이 허리띠는 23개의 띠꾸미개로 구성되어 있다.


금판을 이어서 만든 드리개.

생활용품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허리띠에는 곱은옥이 4줄 달려 있다.

곱은옥(曲玉)은 초승달(동물이빨)모양의 장식용 구슬로 머리에 구멍을 뚫어 매달았다. 주로 목걸이에 거는 구슬로 사용되었으며, 금관에도 사용하였다. 중국 일부와 아시아지역에서도 출토되기는 하지만, 한반도와 일본에서 크게 발달하였다.


연필모양의 장식과 곱은옥

길게 늘어뜨린 드리개.

허리띠(金製銙帶, 삼국시대 신라 5세기, 경주 금령총 출토)
금령총(金鈴塚)에서 출토된 허리띠로 띠꾸미개는 모두 23매이다. 허리띠에 매달려 있는 드리개는 여러개의 금판을 이어서 만든 것이 7줄, 연필 모양 장식 2줄, 곱은옥 4줄 등 모두 13줄이다. 다양한 형태의 드리개는 당시 왕이나 제사장이 관장했던 여러 가지 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금속공예의 재료와 기법
금은 태양을 상징하는 금속으로 고대부터 권위의 상징물이나 화폐 등으로 사용하였다. 펴지는 전성(展性)관 늘어나는 연성(延性)이 가장 뛰어나 새김과 돋을새김, 낱알기법 등 정교한 세공이 가능하며, 금관과 귀걸이 등 화려한 장신구의 재료가 되었다. 또한 은이나 동 등 다른 금속 위에 금을 입히는 도금(鍍金)기법은 금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어 공예품에 널리 활용되었다. 은은 잘 펴지고 잘 늘어나면서도 금보다 단단하여 실용적이며, 향균과 방부(防腐)의 속성이 있다. 은제 공예품은 새김과 돋을새김 기법으로 장식한다. 또한 표면에 홈을 파고 은실을 넣어 무늬를 표현하는 은입사(銀入絲)의 재료로 사용되어, 동이나 철 등 다른 금속 바탕과 화려한 은색이 대비를 이루는 독특한 장식 효과를 낸다. 동은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금속이다. 단단하면서도 다른 금속과도 잘 융합하여 주석을 섞으면 청동, 아연을 섞으면 황동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10세기경 청동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송사(宋史)』「고려전(高麗傳)」 대중상부(大中祥符) 8년(1015)의 기록에는 민간에서도 동기(銅器)를 사용한다고 했을 정도로 청동그릇을 많이 만들었다. 청동은 작은 장신구에서도부터 대형의 범종에 이르기까지 가장 폭넓게 사용된 금속공예 재료이다. 철은 주로 무기와 농기구를 만드는 금속이었으나, 조선 후기에는금속공예의 재료로도 활발히 사용되었다. 주로 입사 기법으로 장식하며, 왕실과 사찰의 향로 등으로부터 화로, 촛대, 문방구, 담배합 등 민간의 일상 생활용품으로 확대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금.은 비롯한 귀금속을 가공하여 만든 장신구들.

삼국시대 이래로 장식품으로 애용되었던 반지, 귀걸이, 팔찌 등은 비교적 많이 출토되고 있다. 죽은이를 위한 껴묻거리로 묻혔던 것이 많다.

주조(鑄造) 방식으로 만든 잔무늬 거울(아산, 기원전4~3세기),

기원전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청동거울로 주조로 만들었다고 하며, 청동기를 이용한 대표적인 생활도구가 아닌가 생각된다.

귀걸이(삼국시대).

가장 오래된 제작 기법 중 하나인  망치로 두드려 만드는 단조(鍛造) 방식으로 만든 귀걸이이다.

망치로 두드려 만든잔(경주 황남대총, 6세기)

반지(金製指環), 1.삼국시대(백제), 2.삼국시대(신라, 경주 노서동 출토), 3.삼국시대(신라, 경주 금령총 출토), 4. 고려, 5.고려, 6.고려

1.금 덩어리(金塊, 조선, 경기도 포천 무봉리 출토), 2. 금박(金紙, 조선), 3.금실(金絲, 삼국시대 신라 5세기, 경주 금령총 출토)

귀걸이(金製耳飾), 1.삼국시대(고구려), 2.삼국시대(백제),

 3.삼국시대(신라), 4.삼국시대(신라),

5.삼국시대(신라), 6.삼국시대(신라, 경주 황오동 출토),

팔찌(腕釧). 1.삼국시대(신라, 경주 황오동 출토), 2.삼국시대(신라), 3.고려,

4.고려, 5.고려

금속공예품은 열을 가하면 녹고 두드리면 펴지며 잠아당기면 늘어나는 금속의 특성을 이용하여 만들어진다. 금속공예품을 만드는 방법은 형태를 만드는 기법과 무늬를 표현하는 기법으로 나뉜다. 형태를 만드는 기법으로는 주조와 두드림(단조) 기법이 있다. 주조 기법은 열을 가하여 녹인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형태를 만드는 방법이다. 청동기시대에 시작되었으며 삼국시대에는 크고 정교한 형태의 향로와 불상을 만들 정도로 발전하였다. 두드림 기법은 금속을 두들기고 펴서 형태를 만드는 방법으로 삼국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왈용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귀금속으로 만든 화려한 생활용기.

실제 생활에 사용된 것은 아니고 죽은이가 사후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껴묻거리로 묻었다.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유물들이다.

굽다리잔(金製高杯),삼국시대(신라) 5~6세기, 경주 황남대총 출토.

완(金製盌), 삼국시대(신라) 6세기, 경주 황남대총 출토

굽다리잔(銀製高杯), 남북국시대(통일신라) 692.706년경, 경주 황복사 터 삼층석탑 발견

금속공예품에 무늬를 넣는 낱알장식기법과 새김 기법은 삼국시대부터 널리 쓰였다. 낱알장식 기법이란 금실과 금 알갱이를 땜질하여 장식하는 것으로 장신구 제작에 많이 이용되었다. 새김기법이란 망치와 정으로 무늬늘 새기는 것으로 선새김, 맞새감, 돋을새감, 구슬무늬새김, 무늬박이 기법이 있다. 이중 무늬박이 기법은 금속 표면에 홈을 파고 다른 금속을 박는 것으로 칼, 향완, 정병 등의 무늬를 표현하는 데 이용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철제표면을 쪼아 금속을 박아 넣는 새로운 무늬박이 기법과 칠보 기법이 도입되어 생활용품의 제작에 널리 활용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머리꾸미개

금 알갱이를 붙여 만든 머리꾸미개로 대표적인 낱알장식기법으로 만든 공예품이다. 금실과 금알갱이를 일일이 땜질하여 장식한 것이라 한다.

금 알갱이를 붙여 만든 귀걸이(신라).

기존의 망치로 두드려서 만드는 단조기법에서 진일보해서 금알갱이를 붙여서 장식적 효과를 얻고 있는 장신구이다.

금실을 엮어 만든 약 주머니(고려),

금 알갱이를 붙여 만든 꾸미개 (고려)

봉황무늬 향그릇, 1.고려, 2.고려 12~13세기,

3.고려 12~13세기, 4.고려 12세기

꽃무늬 향그릇, 고려 12세기.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금속공예 장신구.

고려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 오늘날까지 주로 남아 있다.

귀이개(고려)

허리띠(고려).

허리띠에 새겨진 장식.

꾸미개(고려)

동곳(상투머리를 고정시키는 도구, 고려)

떨잠(조선),

봉황장식비녀(고려).

장도집(몸에 지니는작은 칼집, 고려)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생활용품.

표주박 모양병고려 12세기, 왼쪽), 표주박 모양병,고려 12~13세기, 오른쪽)

표주박 모양 병은 중국의 오대(五代) 이후 북방지역에서 11세기에 유행하였고, 고려에서도 제작하였다. 이 병은 고려시대 표형병 중에서 무늬와 형태가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다. 돋을새김한 위에 선각으로 세부를 표현하고 무늬 주변의 여백을 어자문(魚子文)으로 다시 눌러주어 입체감이 뛰어나다. <출처:중앙박물관>

풍경무늬 향그릇(고려), 모란무늬 향그릇(고려), 모란무늬 향그릇(고려)

약그릇(고려)

약그릇(고려)

우리나라의 금속공예
금속공예는 금속을 재료로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을 만드는 미술의 한 분야이다. 금속은 단단하고 변형이 적으며 특유의 아름다운 광택을 지니고 있다. 희소가치가 크고 가공하는 데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금속은 처음에는 지배 계층의 전유물로 실용품보다는 권위를 상징하는 물품으로 제작되었으며, 이후 사용 계층과 활용 범위가 점차 확대되었다. 우리나라의 금속공예는 기원전 10세기 무렵의 청동 거울, 동검 등 권위의 상징물로부터 시작되었다. 금속공예가 본격적으로 발달한 시기는 삼국시대이다. 금과 은을 사용하여 관, 허리띠, 귀걸이 등을 정교하게 제작하였다. 또한 불교의 성장과 함께 범종, 사리장엄구 등 불교공예품이 활발히 제작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청동그릇 등 실용적인 금속공예품이 많아졌고, 당.일본 등과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더욱 다양하고 세련된 기형과 문양이 갖추어졌다. 고려시대에는 화려한 은제 공예품이 많이 만들어지는 한편, 민간에서 모두 청동 그릇을 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금속공예가 전성기를 이루었다. 불교공예품으로는 향로, 촛대, 화병으로 구성된 공양구가 널리 사용되었다. 또한 아름다우면서도 쓰기에 편리한 공예기법을 완성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입사(入絲)는 금속 고유의 재질적 특징과 기술, 세련된 무늬가 조화를 이룬 금속공예의 정수이다. 조선시대는 철이 공예품의 재료로 새롭게 등장하였다. 철에 은과 구리를 입사하여 만든 화로, 등잔, 담배합 등은 견고한 실용성을 바탕으로 금속공예의 새로운 미의식을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중앙박물관
4.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