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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국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등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 주불전인 각황전 앞에 세워진 석등(국보)이다. 이 석등은 높의 6.4m로 현존하는 석등 중 가장 큰 규모이다. 전체적으로 8각을 기본으로, 3단의 받침돌 위에 화사석, 지붕돌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얹은 전형적이 석등의 형태를 하고 있다. 아래와 위받침돌은 8각형태로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고 있으며, 기둥은 장고모양의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도 8각을 하고 있는데 4면에 창을 뚫어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하고 있다. 지붕돌 목조건축물의 지붕을 모방했는데, 화개석에 비해 넓게 조성했으며 모서리끝에 꽃무늬를 장식하고 있다. 머리는 노반, 앙화, 보륜, 보주의 구성요소가 온전히 남아 있다. 이 석등에서 볼 수 있는 장고 모양은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양식으로 이 석등의 조성 연대(860~873년)를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삼국시대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각황전의 규모에 걸맞는 석등이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국보)>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석등이다. 아래,위받침돌과 기둥, 화개석,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구성된 전통적인 석등의 양식을 하고 있다. 크고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돌을 넓게 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모서리에 꽃장식을 해서 날볍한 느낌을 준다.

<받침돌>

받침돌은 팔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아래.위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고 있다. 가운데 기둥은 장고모형을 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통일신라 말 이 지역에서 유행했던 양식이라 한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

8각형을 하고 있는데, 4면에 창을 내어 불빛을 비출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화사석에는 특별한 장식을 하고 있지 않다.

<지붕돌과 머리장식>

화엄사는 삼국시대(544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삼국통일 후 의상대사 이곳을 화엄10찰로 삼으면서 크게 중건했다. 이때 장육전을 짓고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을 둘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화엄상 승려들이 참전하면서 사찰의 크게 파괴되었는데 인조대에 벽암대사가 크게 중수하였다. 주불전인 각황전과 대웅전을 비롯하여 불전들과 석탑, 석등 등 많은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 때 장륙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각황전과 석등>

석등 아래 오층석탑과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다.

불을 밝히는 등(燈)은 인류의 문명생활과 함께 다양한 형태와 재료로 만들어졌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불을 밝혀 조명을 하는 등기(燈器)와 부처에 불빛을 올리는 공양구의 성격을 같이 가지고 있다. 목조건물을 모방해서 만든 승탑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는데 석탑이나 승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이후 많은 사찰에서 석등을 세웠는데 경주보다는 지방의 화엄십찰이나 선종계통 사찰에서 크고 웅장한 석등이 많이 남아 있다.

<남쪽에서 본 모습>

<북쪽에서 본 모습>

<각황전 앞 마당>

석등과 함께 4사자석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국보, 통일신라,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전해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석등 가운데 가장 크다. 이를 통해서 지금의 각황전 자리에 있던 장륙전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간주석은 일반적인 통일신라 석등의 팔각기둥과는 달리 북처럼 배가 부른 형태이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6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