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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일본실] 일본의 도자기와 공예품

1. 일본이 도자기와 공예품, 2. 전통회화, 3. 도카이도 53역 풍경

일본은 백제를 통해 전해진 불교를 비롯하여 한반도 문화와 비슷한 점도 많지만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다른 부분도 상당히 많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 아스카, 나라시대에는 중국과 한반도의 영향을 받은 불교미술이 크게 융성했으며, 헤이안시대에는 일본적인 특징과 귀족문화가 반영된 밀교와 정토교 미술이 발전하였으며 중세 이후 송나라에서 선종(禪宗)이 전해지면서 일본적인 미의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에도시대에는 서양문화의 영향을 받은 상인들에 의해 새로운 대중문화가 발달하였다.

중앙박물관 일본실에는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측면에서 불교 유물과 도자기 등 공예품, 그리고 회화들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품들은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인 에도시대 유물들과 현대 미술품들이다. 일본과 한국은 불교라는 부분과 동아시아 역사를 공유한다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을 있기는 하지만, 양국간 교류가 많지 않았던 고려시대 이후에는 전통적인 동양화와는 다른 화려한 색감과 간략한 표현이 특징인 회화를 비롯하여 여러분야에서 양국간 많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도자기 공예도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한국이 기술적, 예술적으로 앞섰지만, 이후한반도로부터 도자기 기술을 받아들이고 일본 특유의 색감과 회화적인 장점이 반영되어 예술적인 측면을 비롯하여 여러면에서 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국화와 나비무늬 접시, 에도시대, 채색자기(고쿠타니 양식)

고쿠타니 자기 가운데, 유럽 수출을 염두에 두고 당시 유럽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중국 명대의 채색자기를 참고하여 만든 고사이데(五彩手) 양식의 자기이다. 백색의 바탕 위에 보라 군청 노랑 적 녹의 다섯 색을 이용하여 국화와 나비, 괴석 등 중국적인 모티프를 그려 넣었다. 테두리에는 파도와 같은 곡선 문양을 둘렀는데, 이처럼 기하학적 문양과 회화적 요소의 조합은 명대 채색자기의 영향을 받은 고사이데 자기의 특징 중 하나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일본 미술의 흐름 – 근대 이전까지
섬나라 일본이 미술은 대륙에서 새로운 문화가 전래될 때마다 큰 흐름이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우선 조몬(縄文), 야요이(彌生), 고훈(古墳) 시대로 이어지던 고대 일본의 문화는 6세기 중반 불교와 함께 전래된 불교미술에 의해 크게 달라졌다. 이후 아스카(飛鳥), 나라(奈良)시대에 걸쳐 중국과 한국의 영향을 받은 불교 미술이 융성하고, 헤이안(平安) 시대에는 귀족적 취향이 반영된 화려한 밀교와 정토교 미술이 발전하였다. 무사집단인 막부(幕府)가 정권을 잡은 가마쿠라(鎌倉) 시대에도 사실적 표현이 두드러진 불교 미술이 성행하였다. 13세기에 전해진 송(宋)의 문화에 의해 일본 미술의 흐름은 두번째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 전래된 선종(禪宗)은 일본 고유의 미의식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여 다도(茶道)와 노(能)의 체계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16세기부터 시작된 서양과의 접촉을 통하여, 자유로운 기질을 지닌 에도(江戶)의 도시 상인들은 우키요에(浮世絵)나 가부키(歌舞伎) 등과 같은 새로운 대중문화를 꽃피웠다. <출처: 중앙박물관>

일본의 무구(武具), 
이리본에서는 중세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1192~1392년) 이후 무사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면서, 무사 소용(所用)의 물품들이 본연의 기능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도검(刀劍)과 갑주(甲胄)이다.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뛰어난 기능의 칼과 갑옷은 대대손손 전해지면서, 단순히 전쟁에 사용하는 무기와 신체 보호용 의복의 차원을 넘어 일본 무사들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훌륭한 도검과 갑주는 미적 가치를 인정받아 예술품이 되었고, 더 나아가 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봉헌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일본검(와키자시, 黑漆脇差), 에도시대 19세기, 강철.칠.가죽 등

일본검(우치가타나, 黑漆打刀), 에도시대 19세기.


일본검(다치, 太刀), 에도시대, 19세기


갑옷과 투구, 에도시대 19세기

등자, 19세기

일본이 채색자기(彩色磁器)
일본의 채색자기는 17세기 초반 규수(九州) 아리타(有田)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당시 유럽의 자기 수요를 독점하고 있었던 중국이 명청 왕조교체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겪으며 자기 생산이 주춤해진 틈을 노려, 일본은 유럽의 자기 시장을 석권하였다. 이때 수출에 주로 사용된 항구가 이마리(伊万里)로, ‘이마리 자기’명칭의 유래가 되었다.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제작 기법도 발달하여 카키에몬(柿右衛門), 나베시마(鍋島), 고쿠타니(古九谷) 등 다양한 양식의 자기가 등장하였다. 이 가운데 고쿠타니 자기는 이시카와 현(石川県) 구타니(九谷)에서 제작되던 채색자기의 초기 형태로 혼돈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사가 현(佐賀県) 아리타에서 제작된 채색자기의 한 종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참외무늬 낮은 대접, 에도시대 1640~1660년경, 채색자기(고쿠타니 양식)

고쿠타니 자기 가운데 주로 내수용으로 제작되었던 아오네(青根) 양식에 속하는 낮은 대접이다. 노란색 바탕 위에 녹색과 보라색을 이용하여 큼직한 참외를 그려 넣었는데, 마치 당시 유행하던 금지(金紙)화조도 병풍을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 또한 참외는 당시 의복의 장식문양으로도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색감이나 모티프 등이 모두 일본인들의 미적 취향을 잘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소나무와 대나무 매화무늬 접시, 에도시대 18세기, 채색자기(나베시마 양식)

호랑이무늬 접시, 에도시대 1640~1660년, 채색자기(고쿠타니 양식)

호랑이와 매화무니 접시, 에도시대 17세기 말, 채색자기(가키에몬 양식)

이마리 동식물무늬 합, 17세기

이마리 동식물무늬 접시, 17세기

오하구로(お齒黑)
오하구로란 치아를 검게 칠하는 화장법으로, 고대에 일부 상류 계층에서 시작하여 점차 민간으로 확산되었다. 에도시대에 이르면 거의 모든 기혼 여성들이 이를 검게 물들였기 때문에, 신부의 혼수품에는 반드시 오하구로를 위한 도구와 재료가 담긴 상자가 포함되었다. 오하구로의 재료인 오배자(五倍子)는 매우 떫은 맛이 날뿐더러 진한 차나 식초에 쇳덩어리를 담가 산화시킨 액체를 함께 발라줘야 하기 때문에, 화장이 끝난 후에 입안을 헹구기 위한 물과 그릇도 꼭 필요했다. <출처: 중앙박물관>

오하구로 도구, 에도시대 19세기, 은

오하구로 도구상자, 에도시대 19세기

물통, 에도시대 19세기, 나무에 금가루와 옻칠

입 안을 헹구기 위한 그릇과 받침, 에도시대 19세기,

수건걸이, 에도시대 19세기

손잡이가 달린 대야와 받침, 에도시대 19세기

나팔꽃 모양 대접, 이토 스이코(1894~1980년), 채색자기,

닭부리 모양 꽃병, 가와무라 세이잔(1890~1967년), 채색자기

단지, 도미모토 겐키치(1886~1963년), 백자

도미모토 겐키치(富本憲吉, 1886~1963년)
도예가인 도미모토 겐키치는 일본의 중요무형문화재 채색자기 기술보유자이다. 그의 대표 작품으로는 금박 장식을 화려하게 사용한 붉은 자기가 잘 알려져 있지만, 그에 앞서 조선의 민예품에 깊은 관심을 가진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년) 등의 민예 운동에 참여하면서 소박한 조선의 백자 등도 많이 제작하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사자무늬 향 쟁반, 다카하시 고난(1911~1996년), 1939년, 칠기

다양한 색의 옻을 얇게 겹쳐 칠하고 문양을 새길 때 조각도의 깊이와 경사를 조절함으로써 여러 층의 색이 드러나도록 하는 조채칠(彫彩漆) 기법을 이용하여 나이테 문양이 드러나도록 하면서 다리에 날개가 달린 서양풍의 사자를 장식한 쟁반이다. 주변은 검은 옻으로 칠한 모란꽃을 채워넣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탑모양 향로, 2대 마야가와 고잔, 채색자기, 1940년

구름과 학 문양의 작은 단지, 운노 기요시, 20세기 전반, 금속

가마, 오쿠니 하쿠사이, 1937년, 금속(철)

발우, 시즈미 난잔, 1943년, 금속(동, 금)


훈염, 고교 새이치,


기예천, 다카무리 코운

가면(能面), 감정과 의지를 담아내다
노(能)에서 사용되는 가면은 노인의 형상을 한 신(翁.尉)과 도깨비(鬼), 그리고 연령대와 다양한 성격의 남자.여자가면이 있습니다. 노 가면은 워낙 다양하여, 머리카락의 흐트러짐 정도나 눈썹의 위치 등 매우 미묘한 변화만으로도 연령과 처지가 서로 다른 배역을 표현합니다. 이 중에는 연령대와 성격이 비슷하면 어느 역할에나 사용할 수 있는 가면이 있는가 하면, 특정 역할에만 사용하는 가면도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한냐(般若), 에도시대 19세기, 나무에 채색.

질투를 참지 못해 괴물로 변해버린 여인의 모습을 표현한 가면이다.

뿔이 난 도깨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스스로의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 흉하게 변해버린 여인의 역할에 사용하는 가면이다. 눈알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었으며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다. 이마 위의 크고 높은 뿔은 여인의 몹쓸 질투심이 넘쳐흘러 솟아난 것이다. 노가면은 이처럼 인간으 심리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독특한 방식을 지니고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와카오토고(若男), 에도시대 17세기 후반, 나무에 채색

노 무대 위에서 이승의 남성은 가면을 쓰지 않는다. 따라서 전시된 가면과 같이 젊은 남성의 가면은 주로 요절한 무사의 혼령 역할에 사용된다. 무사를 주인공으로 한 ‘현재 노’중에는, 생전에 전쟁을 업으로 삼아 아수라(阿修羅) 지옥에 떨어진 이들의 성불을 기원하는 내용이 많다. 막부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로서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무사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일은 중요한 의무였기때문일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아야카시(怪士), 에도시대 19세기, 나무에 채색

눈이 붉게 충혈되고 눈썹과 수염이 솟구쳐 있는 것이 특징인 가면으로, 젊은 무사의 혼령 역할에 사용된다. 특히 ‘아야카시’는 바다에 나타나는 괴물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기때문에, 후나벤케이(船弁慶)와 같이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극에서 자주 사용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스지아야카시(筋怪士), 에도시대 17세기말~18세기초, 나무에 채색

아야카시 가면 가운데에서도 이마에 굵게 힘줄(筋, 스지)이 곤두서 있는 것을 ‘스지아야카시’라고 부른다. 이처럼 노 가면이 점점 다양해지면서 같은 가면 종류에서도 여러 변형이 발생하였고, 배우들은 그날의 영감에 따라 가면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가와즈(蜼), 에도시대 19세기, 나무에 채색

두꺼비를 뜻하는 말인 ‘가와즈’가면은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오고 눈두덩이 움푹 패여 있으며, 이마에 젖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다. 이러한 특징은 물에 빠져 죽은 남성의 혼령을 표현하기에 적합하여, <후지토(藤戶)>, <아코기(阿漕)>와 같이 익사한 자의 혼령이 등장하는 극에서 주로 사용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고베시미(小癋見), 에도시대 17~18세기, 나무에 채색

베시미 가면은 14세기에 간아미(觀阿弥)와 제아미(世阿弥) 부자도 착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오래된 도깨비 가면의 한 종류이다. 크기에 따라 오베시미(大癋見)와 고베시미로 나누는데, 전시된 고베시미는 지옥의 도깨비 역할에 사용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하시히메(橋姬), 에도시대 17~18세, 나무에 채색

분노에 가득 차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고 눈에는 핏발이 서리고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험악한 모습의 가면으로, 질투에 눈이 멀어 생령(生靈)이 된 여인의 역할에 사용한다. 생령이란 질투나 원한 등의 감정이 너무 강해 살아있는 몸에서 분리되어 나온 영혼을 말한다. <출처: 중앙박물관>

우바(姥), 에도시대 17~18세기, 나무에 채색

나이 든 여인의 모습을 표현한 가면이다. 눈가가 길게 찢어지고 처진 것으로 보아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역할에 사용하였을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노 가면처럼 무표정하다?
일본에서는 무표정한 사람을 노 가면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러나 나무를 깎아 만든 노 가면도 훌륭한 배우의 연기에 따라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여인의 가면을 쓴 배우가 고개를 살짝 들면, 그 얼굴에 문득 미소가 번진듯 합니다. 이를 날이 갠다는 뜻으로 ‘하레루(晴れる)’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살짝 고개를 숙이면 어딘가 슬픔이 떠오릅니다. 이를 흐려진다는 의미로 ‘구모루(曇る)’라고 합니다. 여기에 손을 가지런히 들어 눈을 살짝 가리면 더욱 격한 슬픔을 나타냅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고히메(小姬), 에도시대 17세기 후반, 나무에 채색

젊은 여인의 역할에 사용되는 가면이다. 여인의 가면은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이마에서 관자놀이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의 가닥수와 흐트러짐, 볼의 야윔, 주름살의 수에 미묘한 변화를 주어 연령대와 성격을 다르게 표현하다. 이 가면의 명칭인 ‘고희메’는 여인의 가면 중에서도 매우 드문 것으로, 여인의 가면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고오모테(小面)’가면을 대신하는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