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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특별전] 能(노), 일본문화의 정수

노(能)는  분라쿠(文楽), 가부키(歌舞伎)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예술이다.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85~1333년) 말기인 14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노멘(能面)이라 부르는 가면을 사용하며, 전용 극장인 노가쿠도(能樂堂)에서 공연된다. 막부세력의 비호를 받으면서 발전해 왔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비롯하여 무사계층에서 특히 좋아했다. 노(能)의 내용은 죽은이의 혼령이 주인공인 몽환 노(夢幻能)와 현세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현재노(現在能)로 나누어진다. 몽환노가 전통적인 노의 형식과 내용을 계승하고 있다면, 현재노는 무사들의 무용담을 표현하고 있어 무사계층들이 선호했던 분야이다.

중앙박물관에서는 2015년 가을 “能(노), 일본문화의 정수”라는 제목의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전시내용은 일본의 전통문화인 노(能)을 소개하고,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노와 관련된 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노는 가면만을 사용하고 다른 무대장치는 거의 사용하지 않기때문에 다양한 내용이 전시되지는 않았지만, 공연에서 표현하고하는 인물의 상태나 심리 등을 가면을 통해서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배우들이 사용했던 복식 또한 중세와 에도시대 일본 귀족층이 선호했던 화려한 전통의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能(노), 일본문화의 정수
노는 14세기 말에 발달한 가면극으로 매우 느린 곡조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는 공연 예술의 한 종류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하지만 일본의 중세무사 문화를 대표하는 전통무대예술로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일본 문화 곳곳에 그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사용하는 가면과 의상은 물론 노와 관련된 회화 작품들은 모두 일본 미술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발전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 관이 소장하고 있는 노 관련 미술품을 모아 소개하여 노가 일본문화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작은 전시이지만 일본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노무대(能舞台),

무대에는 배경 외에 무대 장치를 사용하지 않아 간결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노(能)의 무대는 매우 단출합니다. 오직 신이 깃든 소나무 한 그루만을 배경으로 하여, 여기에 8명의 합창단과 4명이 악단, 그리고 주인공과 조연 한두 명만이 무대에 오릅니다. 원래 중세 종교 의식의 여흥으로 야외에서 펼쳐지던 노의 무대는 간결하지만 엄숙한 품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노의 기원은 고대 종교 사원에서 펼쳐지던 공연무대에서 찾습니다. 곡예나 흉내내기 등 여러 장르 가운데에서도 가면을 쓰고 축원의 의미를 담은 춤을 추었던 ‘오키나사루카쿠(翁猿樂)’가 직접적인 기원으로 여겨집니다. 이처럼 가면은 노의 기원부터 함께 한 중요한 요소이며, 노를 다른 무대예술과 차별화시키는 가장 큰 매력입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노(能), 일본의 무대예술
여기, 아직 서양문물이 밀려오기 전인 19세기 중반의 어느 봄날, 노(能) 공연을 준비하는 극단의 하루를 기록한 그림이 있습니다. 당시의 노 공연은 대여섯편의 극이 연속으로 상연되었기 때문에 극단은 극장의 분장실에서 온종일 지내야 했습니다. 그림 속 분장실의 풍경을 엿보다보면, 이제부터 무대 위에 오를 배우와 가면(能面), 의상(能裝束), 소품(小道具) 등이 더욱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한냐(般若), 에도시대 19세기, 나무에 채색.

질투를 참지 못해 괴물로 변해버린 여인의 모습을 표현한 가면이다.

뿔이 난 도깨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스스로의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 흉하게 변해버린 여인의 역할에 사용하는 가면이다. 눈알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었으며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다. 이마 위의 크고 높은 뿔은 여인의 몹쓸 질투심이 넘쳐흘러 솟아난 것이다. 노가면은 이처럼 인간으 심리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독특한 방식을 지니고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能(노) 이야기, 노 대본, 요코쿠(謠曲)
가면극 노의 대사에 음조까지 기록한 대본을 ‘요코쿠’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요쿄쿠는 주인공의 상태에 따라 크게 몽환 노(夢幻能)와 현재노(現在能)로 나누어집니다.

몽환노(夢幻能), 이승과 저승을 잇다
14세기 말에 활약한 배우이자 극작가인 제아미(世阿弥)는 무로마치(室町)막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의 후원을 받아 노의 체계를 완성시켰습니다. 이떄에 죽은 이의 혼령인 주인공과 이승에 있는 조연이 대화를 나누며 이야기가 진전되는 노 고유의 극 전개 방식이 정립되었습니다. 이처럼 꿈같은 분위기의 노를 ‘몽환노’라고 부릅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현재노(現在能), 무사들의 문화로 꽃피다.
몽환 노와 달리, 현세의 이야기가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되는 노를 ‘현재 노’라고 부릅니다. 제아미를 후원하였던 아시카가 요시미쓰, 희대의 노 애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그리고 노를 에도(江戶) 막부의 공식 예능으로 지정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등 노의 주요 관람층은 무사게급이었습니다. 따라서 현재 노의 주인공들은 무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쓰치구모(土蜘蛛)
10세기의 무사 미나모토 라이코(源頼光)를 주인공으로 하는 현재 노 <쓰치구모>입니다. 건장한 무사였던 라이코가 어느날 갑자기 ‘쓰치구모’라는 거미 요괴의 소행으로 몸져 눕자, 그의 심복들이 나서서 요괴를 무찌릅니다. 12세기의 소설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에 실려 있는 이야기인데, 노로 상연되기 시작하면서 거미 요괴가 라이코에게 거미줄을 뿜는 장면이 특히 유명해졌습니다. 이 장면은 에도 시대에 이르러 회화의 주제로도 자주 등장합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미나모토 요리미쓰 사천왕의 거미 요괴 퇴치 이야기, 우타가와 구니요시, 덴포 연간(1830~44년), 종이에 인쇄.

소설 <반지의 제왕>을 비롯하여 많은 소설과 이야기에 등장하는 거미괴물을 물리치는 장면이다.

특유의 해학과 감성의 우키요에시 우카가와 구니요시가 그린 <쓰치구모> 이야기이다. 주인공 요리미쓰(라이코)의 부하들 중 무술이 뛰어난 사천왕 도배, 사카다, 와타나베,우스이가 지략의 장수 히라이와 함께 거미 요괴를 둘러싸고 공략하는 모습이다. 노 <쓰치구모>에 등장하였던 라이코의 심복이 에도 시대 후기에 이르러 무장의 사천왕과 지략의 장수로 구체화된 것을 알 수 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하시벤케이(橋弁慶)
12세기 말 가마쿠라(鎌倉) 막부를 세운 미나모토 요리모토(源頼朝)의 동생, 요시쓰네(義経)와 그의 충신 벤케이(弁慶)를 주인공으로 하는 현재 노 <하시벤케이>입니다. 요시쓰네의 무용담은 워낙 유명하여 훗날 전설화되었는데, 특히 교토 고조다리(五条橋) 위에서 어린 요시쓰네가 산적같은 벤케이를 처음 만나 대결하는 장면이 유명합니다. 벤케이가 긴 창을 휘두르는 장면은 노 무대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긴 창을 휘두르고 있는 요씨스네의 모습을 그린 그림.

미나모토 요시쓰니와 여덟 덴구를 만난 벤케이, 우타가와 구니요시, 1848~49년, 종이에 인쇄

우타가와 구니요시가 그린 <하시벤케이> 이야기이다. 우기요에의 일반 판형인 오반(大判)을 3장 연결하여 그린 것으로, 오른쪽 화면에는 아직 산적과 같은 벤케이가, 왼쪽 화면에는 다리 난간 위를 날렵하게 날아다니는 어린 요시쓰네의 모습이 그려져 이싿. 노 <하시벤케이>에서처럼 벤케이는 자기 키보다 훨씬 큰 창을 휘두르며 요시쓰네를 공격하고 있다. 단, 요시쓰네가 일본 각지 명산에 사는 여덟 덴구(天狗)를 거느리고 있는 점이 노 무대와 다르다. <출처: 중앙박물관>

마쓰카제(松風),’여기에도 달이 들었구나’
제아미가 작곡한 몽환 노의 대표작 <마쓰카제>의 명대사입니다. 어느 어촌 마을을 지나던 승려가 바닷물을 길어 소금을 만드는 두 자매를 만나게 됩니다. 사실 그녀들은 이 마을로 귀향 온 귀족 아리와라 유키히라에게 버림받은 마쓰카제(松風), 무라사메(村雨) 자매의 혼령이었습니다. 달이 밝은 밤, 이승에서 못 이룬 사랑을 슬퍼하며 춤을 추다 물수레를 들여다보니, 여기에도 달이 들어 있었다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몽환 노 <마쓰카제>의 유명한 장면.


여기에도 달이 들었구나, 미키 스이잔, 1939년, 비단에 채색

에도시대 우키요예(浮世絵) 미인화의 전통을 잇는 일본화가 미키 스이잔의 작품이다. 노 <마쓰카제>의 명대사 ‘여기에도 달이 들었구나’를 제목으로 하여, 극 중에서 연인 유키히라가 남기고 간 모자와 옷을 걸치고 춤을 추고 있는 마쓰카제의 모습을 그렸다. 그녀의 발밑에는 바닷물을 기어온 물통이 놓여 있다. 가면을 스지 않은 모습으로 보아 노 <마쓰카제>의 영향을 받은 무용 <시오구이>의 장면임을 알 수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마쓰카제(松風),마야게 고하쿠, 20세기 전반, 비단에 담채

교토에서 활동한 일본화가 미야케 고하쿠가 그린 노 <마쓰카제>의 한 장면이다. 극을 감상하던 중 인상에 남은 장면을 빠르게 스케치한 것처럼 보이는데, 못 다 그린 듯 희미한 모습이 마치 연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맴도는 마쓰카제의 불완전한 상황을 상징하는 듯하다. <출처: 중앙박물관>

能(노) 미술,
무대장치와 소품, 노는 소나무 한 그루만을 배경으로 하는 단출한 무대에서 상연됩니다. 무대 위에는 배우와 그 배우의 연기뿐입니다. 하지만 사실적이고 다양한 가면과 화려한 의상은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가면(能面), 감정과 의지를 담아내다
노(能)에서 사용되는 가면은 노인의 형상을 한 신(翁.尉)과 도깨비(鬼), 그리고 연령대와 다양한 성격의 남자.여자가면이 있습니다. 노 가면은 워낙 다양하여, 머리카락의 흐트러짐 정도나 눈썹의 위치 등 매우 미묘한 변화만으로도 연령과 처지가 서로 다른 배역을 표현합니다. 이 중에는 연령대와 성격이 비슷하면 어느 역할에나 사용할 수 있는 가면이 있는가 하면, 특정 역할에만 사용하는 가면도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와카오토고(若男), 에도시대 17세기 후반, 나무에 채색

노 무대 위에서 이승의 남성은 가면을 쓰지 않는다. 따라서 전시된 가면과 같이 젊은 남성의 가면은 주로 요절한 무사의 혼령 역할에 사용된다. 무사를 주인공으로 한 ‘현재 노’중에는, 생전에 전쟁을 업으로 삼아 아수라(阿修羅) 지옥에 떨어진 이들의 성불을 기원하는 내용이 많다. 막부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로서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무사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일은 중요한 의무였기때문일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아야카시(怪士), 에도시대 19세기, 나무에 채색

눈이 붉게 충혈되고 눈썹과 수염이 솟구쳐 있는 것이 특징인 가면으로, 젊은 무사의 혼령 역할에 사용된다. 특히 ‘아야카시’는 바다에 나타나는 괴물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기때문에, 후나벤케이(船弁慶)와 같이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극에서 자주 사용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스지아야카시(筋怪士), 에도시대 17세기말~18세기초, 나무에 채색

아야카시 가면 가운데에서도 이마에 굵게 힘줄(筋, 스지)이 곤두서 있는 것을 ‘스지아야카시’라고 부른다. 이처럼 노 가면이 점점 다양해지면서 같은 가면 종류에서도 여러 변형이 발생하였고, 배우들은 그날의 영감에 따라 가면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가와즈(蜼), 에도시대 19세기, 나무에 채색

두꺼비를 뜻하는 말인 ‘가와즈’가면은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오고 눈두덩이 움푹 패여 있ㅇ드며, 이마에 젖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다. 이러한 특징은 물에 빠져 죽은 남성의 혼령을 표현하기에 적합하여, <후지토(藤戶)>, <아코기(阿漕)>와 같이 익사한 자의 혼령이 등장하는 극에서 주로 사용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고베시미(小癋見), 에도시대 17~18세기, 나무에 채색

고베시미 가면은 14세기에 간아미(觀阿弥)와 제아미(世阿弥) 부자도 착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오래된 도깨비 가면의 한 종류이다. 크기에 따라 오베시미(大癋見)와 고베시미로 나누는데, 전시된 고베시미는 지옥의 도깨비 역할에 사용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하시히메(橋姬), 에도시대 17~18세, 나무에 채색

분노에 가득 차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고 눈에는 핏발이 서리고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험악한 모습의 가면으로, 질투에 눈이 멀어 생령(生靈)이 된 여인의 역할에 사용한다. 생령이란 질투나 원한 등의 감정이 너무 강해 살아있는 몸에서 분리되어 나온 영혼을 말한다. <출처: 중앙박물관>

우바(姥), 에도시대 17~18세기, 나무에 채색

나이 든 여인으이 모습을 표현한 가면이다. 눈가가 길게 찢어지고 처진 것으로 보아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역할에 사용하였을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노 가면처럼 무표정하다?
일본에서는 무표정한 사람을 노 가면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러나 나무를 깎아 만든 노 가면도 훌륭한 배우의 연기에 따라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여인의 가면을 쓴 배우가 고개를 살짝 들면, 그 얼굴에 문득 미소가 번진듯 합니다. 이를 날이 갠다는 뜻으로 ‘하레루(晴れる)’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살짝 고개를 숙이면 어딘가 슬픔이 떠오릅니다. 이를 흐려진다는 의미로 ‘구모루(曇る)’라고 합니다. 여기에 손을 가지런히 들어 눈을 살짝 가리면 더욱 격한 슬픔을 나타냅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고히메(小姬), 에도시대 17세기 후반, 나무에 채색

젊은 여인의 역할에 사용되는 가면이다. 여인의 가면은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이마에서 관자놀이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의 가닥수와 흐트러짐, 볼의 야윔, 주름살의 수에 미묘한 변화를 주어 연령대와 성격을 다르게 표현하다. 이 가면의 명칭인 ‘고희메’는 여인의 가면 중에서도 매우 드문 것으로, 여인의 가면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고오모테(小面)’가면을 대신하는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의상(能裝束), 화려함으로 무대를 수놓다.
무사들의 후원을 받은 노의 무대의상은 중세 무사들의 실제 의생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고대 귀족들의 의복을 고증하여 현재의 무대에서 활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지배층의 의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한 노 의상은 일본의 전통의상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격식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비단발과 구요 꽃무늬 아쓰이타, 에도시대 18~19세기, 비단에 자수

아쓰이타는 귀족이나 무사 역할의 배우가 착용하는 의상이다. 문가에 드리우는 발 뭉양 위에 여덟 장의 꽃잎이 달린 둥근 꽃무늬를 배치하여 장식하였다. 커다란 원을 중심으로 여덟개의 원을 두른 꽃은 아홉 개의 별을 뜻하는 ‘구요(九曜)’를 상징한다. 사진 속 노 무대 <쓰치구요>에서 병상을 의미하는 다다미 위에 앉은 배우가 입고 있는 옷이 현재 전시대 아쓰이타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비사문귀갑과 용무늬 가리기누, 에도시대 19세기, 비단에 자수

가리기누는 신(神)이나 신분이 높은 남성 역할의 배우가 착용하는 의상이다. 헤이안 시대(794~1192년)부터 귀족 남성들이 입던 겉옷을 고증을 거쳐 무대 의상으로 활용한 예이다. 진한 연두빛 비단 위에 교토 도지(東寺)에 전하는 두발비사문천상(兜跋毘沙門天像) 갑주의 귀갑 문양과 용무늬를 금실로 수놓은 호화로운 의상으로, 사진속 배우가 실제 무대 위에서 착용한 것과 동일하다. <출처: 중앙박물관>

국화와 부채무늬 가라오리, 에도시대 19세기, 비단에 자수

가라오리는 노 의상 가운데 가장 화려한 것으로 여성 역할의 배우가 착용한다. 붉은 색 계열의 바탕에 다양한 무늬로 장식한 가라오리는 ‘홍색이 들어갔다’는 의미로 ‘이로이리(紅入)’라고 부르고, 반대로 푸른색이나 흰색 바탕의 가라오리는 ‘홍색이 없다’는 의미로 ‘이로나시(紅無)’라고 부른다. 이러한 구분법은 아쓰이타 등의 다른 의상에도 적용되는데, 남녀를 불문하고 젊은이의 역할에는 이로이리, 노년의 역할에는 이로나시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 중앙박물관>


소용돌이 물결과 꽃무늬 가라오리, 20세기 초, 비단에 자수

붉은색과 흰색의 격자 바탕 위에 금색 소용돌이 물결무늬를 가득 채우고, 그 위에 다시 여러 가지 색깔의 둥끈 꽃무늬를 수놓아 장식한 가라오리이다. 소용돌이 물결무늬는 위아래가 눌린 모양인데 노가쿠 유파 중 하나의 간제류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무늬이기 때문에 ‘간제미즈(觀世水)’라고 부른다. <출처: 중앙박물관>


눈꽃과 매화무늬 스리하쿠, 에도시대 18~19세기, 비단에 금은박

연한 옥빛 비단 위에 은박으로 눈꽃 결정을, 금박으로 매화나무 가지를 표현한 스리하쿠이다. 스리하쿠는 가리기누나 가라오리의 안쪽에 입는 옷으로 얇은 비단 위에 금박으로 장식하였다. 추운 겨울의 끝자락, 봄을 부르듯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 위에 내려 앉은 눈꽃의 모습은 노년의 기품을 잘 전달한다. <출처: 중앙박물관>


풀잎 위 이슬무늬 스리하쿠, 에도시대 19세기, 비단에 금박

매우 얇고 가벼운 푸른색 비단에 마름모꼴과 국화, 난초무늬를 짜 넣은 뒤 ‘쓰유시바(露芝)’무늬를 금박으로 장식한 스리하쿠이다. 쓰유시바란 초승달 모양의 곡선 위에 둥근 구슬이 달린 형태가 연속되는 무늬로, 풀잎 위에 이슬이 맺힌 모습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스리하쿠의 하단은 대부분 겉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에도 말기에 이르면 하난의 금박 장식을 생략하는 경우도 있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역사를 넘어 살아 숨쉬는 현재의 문화로
노(能)는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노는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닙니다. 지금도 약 1,500여 명의 배우들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어, 원한다면 언제라도 일본 각지의 노 무대에서 노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수백년 전의 무대를 현재 진행형으로 관람할 수 있는 무대, 노는 그렇게 600년의 세월을 넘어 살아 숨쉬고 있는 현재의 문화입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