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국시대 불상, 2. 반가사유상, 3. 통일신라 불상, 4. 고려, 조선시대, 5, 석조불상, 철조불상
통일신라는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대표하는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삼국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고유의 특징을 보여주었다면, 통일신라만이 우리나라 고유한 양식이 많이 형성되었다. 대체로 불상의 제작수법에서 세련되면서도 세밀하고 자연스러운 면이 크게 좋아 졌다. 통일신라 때 조성된 불상이나 석탑을 보면 고려시대에 비해서 조형미나 조각수법, 예술적인 표현 등에서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고구려 불상에서 보여주었던 생동감 넘치고, 힘있는 모습은 다소 줄어들고 후대에 들어서는 정형화된 느낌을 주는 경향도 보인다. 통일신라 때에는 비로자나불이나 약사불이 많이 조성되었고, 지방 호족을 중심으로 철불상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부처와 아미타불,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금제여래좌상(阿彌陀佛坐像), 국보, 경주 구황동 삼층석탑 출토, 통일신라 692년.706년
황복사(皇福寺)로 전해오는 절터의 삼층석탑 사리함에서 발견된 불상이다. 사리함 뚜껑에 새긴 글에 따르면 신문왕(神文王)이 세상을 떠나자 692년 아들인 효소왕(孝昭王)이 어머니 신목태후와 함께 석탑을 세웠고, 효소왕이 승하하자 706년 성덕왕(聖德王)이 금제 아미타상 1구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1권을 석탑에 안치하였다. 불입상은 얼굴 이목구비의 경계와 윤곽이 부드럽고, 두툼한 옷주름에 가려 신체가 드러나지 않는 등 삼국시대 불상의 특징이 남아 있어 692년 석탑을 세울 당시에 넣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얇은 옷주름으로 강조된 불좌상의 풍만한 신체는 통일신라 불상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므로 706년에 봉인한 아미타상으로 추정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통일신라 금동불상
통일신라 불상은 삼국시대에 축적된 기술과 중국 당나라의 불상 양식을 기반으로 세련되고 사실적인 모습을 띤다. 이전에 비해 얼굴 표정은 훨씬 섬세해졌고 신체는 알맞은 비례를 보이며 몸을 감싸는 옷자락은 얇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이같은 새로운 표현은 8세기 중엽 석굴암 조각에서 완성되었다. 통일신라 후기에는 중국의 영향이 약해지면서 통일신라만의 독특한 경향이 부각되었다. 이 시기에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석가모니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닫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손갖춤)의 손갖춤을 한 불상, 약사불, 비로자나불을 많이 만들었고, 철불도 만들기 시작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국보, 경주 구황동 황복사터 삼층석탑 출토, 706년.
얇은 옷주름이 강조된 통일신라 불상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706년에 석탑 사리함에 봉인한 아미타여래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국보, 경주 구황동 황복사터 삼층석탑 출토, 692년.
두툼한 옷차림에 신체가 드러나지 않는 등 삼국시대 불상의 특징이 남아 있어 692년 석탑을 조성할 때 같이 봉인한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압지출토 금동판 보살좌상, 보물, 경주 안압지 출토, 7세기말~8세기초,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불상으로 밀납을 이용해서 주조한 것이라고 한다. 섬세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만든 이 조각상은 당시 중국,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던 압출불 양식과 비슷하게 보인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7~8세기에 걸쳐 유행한 압출불과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밀랍을 이용하여 주조한 것이 이 판불의 특징이다. 섬세함과 화려함이 결합된 이와 같은 보살의 모습은 동시기 중국 당나라 보살상에서도 볼 수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 동제 주악천인상(銅製 奏樂天人像), 경북 영덕 유금사 출토, 통일신라 8세기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은 천상 세계를 아름답게 장엄하는 존재 가운데 하나다. 주로 불상의 광배나 석탑 기단에 돋을 새김으로 장식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보살,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통일신라 8세기
부처,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 통일신라 8세기
부처,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 통일신라 9세기
약사불(藥師如來)
약사불은 갖가지 질병을 고쳐주고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며 음식과 옷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 보살 신분이었을 떄는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12가지 큰 소망을 지녔고, 부처가 된 후에는 동쪽에 위치한 유리광세계(琉璃光世界)를 다스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약사신앙이 유행하였다. 이 시기 약사불상은 주로 둥근 약단지를 손에 든 모습의 단독상으로 만들어졌다. 여러 방향에 머무르는 부처를 표현한 사방불(四方佛)에서는 동쪽에 머무르는 부처로 표현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약사불, 보물, 금동약사불입상(金銅藥師佛立像), 통일신라 8세기,
보존상태가 양호한 금동불상으로 귀를 크게 묘사하고 있으며 다른 약사불과는 달리 약항아리가 남아 있다.
약사불, 금동약사불입상(金銅藥師佛立像), 통일신라 8세기
약사불, 금동약사불입상(金銅藥師佛立像), 통일신라 8세기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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