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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여산도호부 관아, 여산 동헌

전북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에 있는 옛 여산도호부 관아 건물터이다. 다른 지방의 옛 관아터와 마찬가지로 시골마을 면소재지에 자리하고 있다. 관아건물 중에는 고을 수령이 근무하던 동헌 건물과 수령이 수백년이 지난 느티나무들이 이곳에 관아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헌건물은 계단식으로 조성된 건물터에 자리잡고 있는데 구한말에 중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헌 옆에는 객사가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자리에 초등학교 건물이 들어서 있다. 아래쪽 부속관청이 들어서 있던 자리에는 면사무소, 농협 등 면소재지의 주요 관공서들이 자리잡고 있다.

여산(礪山)은 익산시 북쪽을 관할하던 옛 지명으로 관아는 익산시 여산면 소재지에 있었다. 조선초 여산현이었던 작은 규모의 고을이지만 태종비 민씨의 외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으며, 숙종 때 단종비 송씨의 본관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충청도와 접경을 이루는 교통의 요지이며, 조선초에는 충청도에 이관되기도 하였다.

<여산도호부 관아터>

전북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에 있는 옛 여산도호부 관아터이다. 지금은 동헌건물만 남아 있다.

<여산동헌>

앞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구한말 건축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오른쪽 3칸은 넓은 대청마루가, 오른쪽 2칸은 일상적인 업무공간인 온돌방이 있다.

<고을 수령이 민원인을 접견하는 넓은 대청마루>

<대청마루 천장>

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을 사용하고 있다.

<툇마루>

건물 앞쪽 1칸은 통로로 사용하는 툇마루로 사용하고 있다.

<왼쪽에서 본 모습>

<앞에서 본 여산동헌>

여산동헌, 전북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이 건물은 조선시대 여산 고을의 수령이 업무를 보던 청사이다. 이 건물은 3단의 계단식 건물터 상단부에 들어서 있는데, 조선시대 말기에 건축한 것으로 보인다. 벽과 방은 최근에 일부 개조하여 본 모습을 잃었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추녀와 대청마루에서 한식 목조 건물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이 잘드러난다. 여산동헌은 전국적으로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옛 모습을 간직한 조선시대 지방 관청 건물의 하나이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동헌 옆에 모아놓은 공덕비>

<관아 마당 느티나무>

여산 동헌 마당에 심어져 있는 수령이 수백년 넘은 느티나무이다. 조선초 이곳에 관아가 설치되었을 때 심어진 것으로 보인다.

여산동헌 느티나무
이 느티나무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여산동헌과 주변에 7주의 대형 느티나무가 집중 분포되어 있음에 따라 동헌의 설치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여산은 전주에 속해 있다가 공양왕 3년(1391) 감무를 두고 낭산과 공촌, 파제 두 부곡의 권농사까지 겸임하였고, 조선 태종 2년(1402)에 여산현이라 하고, 세종 18년(1436)에는 원경왕후의 외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다고 함으로 조선 태종대에서 세종대에 동헌이 설치되는 과정에서 식재되었을 것으로 보여 수령은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나무의 흉고 둘레는 4.5 m, 높이는 22 m이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객사터>

여산 동헌 옆에는 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다른 지방의 사례에서 볼 때 이곳에 관아 중심 건물이었던 객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아터>

객사가 있던 초등학교와 동헌 건물 아래에는 우체국을 비롯하여 여러 관공서들이 들어서 있다. 부속관청들이 있던 자리로 보인다.

<천주교 순교 관련 유적>

동헌 아래에는 천주교 순교와 관련된 공원이 있다. 전국 주요 관아 건물터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여산도호부 관아터에서 600여 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여산향교>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