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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낙안군 관아

전남 순천시 낙안면.외서면과 보성군 벌교읍 등에 있었던 옛 지방 고을이었던 낙안군(樂安郡) 관아이다. 낙안군은 삼국시대 백제의 분차군이었으며, 그 후 여러차례 이름이 바뀌었다가 고려 초 낙안군으로 바뀌면서 구한말까지 존재해오다 1908년에 폐지되었다. 원래 읍치는 벌교읍 부근이었으나 고려말 왜구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낙안읍성이 있는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낙안읍성에는 당시 쌓았던 읍성을 비롯하여 관아, 읍치에 거주했던 주민들이 살았던 오래된 가옥들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낙안군 읍치는 조선시대 관아가 있었던 읍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으며 옛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역의 관광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낙안군 읍치였던 낙안읍성>

읍치는 남해안에서는 꽤 넓은 평야였던 낙안들판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순천과 연결되며, 북쪽으로는 승주, 구례를 거 남원과, 서쪽으로는 보성지역과 연결되는 교통로이다. 고려말, 조선초에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지역으로 해안에서 비교적 안전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 읍성을 쌓아 대비했다.

<관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임경업 장군 선정 비각>

인조 때 낙안군수를 역임한 임경업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홍살문>

<관아의 중심이 되는 객사>

조선시대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며 이곳을 방문한 중앙관리가 머무는 숙소로 사용되는 곳이다.

<객사를 출입하는 객사문>

<객사문(안쪽)>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양쪽에 손님들을 수행했던 인원들이 묵을 수 있는 문간방을 두고 있다.

<객사문 안쪽으로 보이는 낙안 객사>

<낙안객사>

가운데 궐패를 모시는 앞면 3칸 규모의 정청을 두고 양쪽에 각 앞면 2칸씩 익랑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객사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낙안읍성에서 볼 수 있는 관아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던 건물이다.

<정청>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있는 가운데 정청에는 ‘낙안지관’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동쪽편 익랑>

손님이 묵을 수 있는 온돌방 1칸과 손님과 연회를 할 수 있는 툇마루를 두고 있다.

<서쪽편 익랑>

<옆쪽에서 본 낙안객사>

<뒷편 낙안읍성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낙안객사>

낙안객사
객사는 손님을 접대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곳으로, 외국이나 조정에서 파견된 사신의 숙소였을 뿐만 아니라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셔두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 때 고을의 관리와 선비들이 모여 망궐례를 올리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이 객사는 세종 32년(1450) 군수 이인이 건립한 후 인조9년(1631)과 철종 8년(1857)에 각각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는 객사 본전만 남아 있어 전체의 모습은 알 수 없으나 1900년대 초까지는 모두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객사본전은 1909년 이후 낙안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어 안팎으로 변조된 부분이 많았으나 1982년에 다시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완벽한 좌우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다. 지붕은 본사의 경우 맞배지붕이고, 양쪽 날개집은 팔작지붕이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동헌 입구에 세워져 있는 문루인 낙민루>

남원 광한루 등과 함께 호남지방에서는 유명한 문루였으나 한국전쟁 때 불타버려 남아 있지 않았는데 최근에 옛모습을 복원하였다.

<낙민루 앞에 남아 있는 오래된 고목>

낙민루
낙민루는 조선 헌종 때 군수 민중헌이 중건하였다고 전해지며 1924년 일부분을 수리하였다고 한다.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더불어 호남의 명루로서 오랜 세월동안 희로애락을 나눈 누각이었으나 6.25전쟁 당시 불타 소실되었던 것을 1986년 기존이 초석 위에 17평 규모로 겹처마 팔작집의 누각형으로 복원하였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동헌을 출입하는 문>

<안쪽에서 본 모습>

<낙안군수가 집무를 보던 건물인 동헌>

동헌은 앞면 5칸으로 양쪽에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앞면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가운데 대청마루>

<군수가 손님을 접견하고 일상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인 온돌방>

<옆쪽에서 본 동헌>

<마당에 재현해 놓은 재판을 받는 모습>

<곤장을 맞는 모습>

<뒷편 읍성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헌>

동헌(시무당)
이 건물은 조선왕조 때 지방관청으로 감사, 병사, 수사, 수령 등이 지방행정과 송사를 다루던 곳으로동쪽은 수령이 서쪽방은 관리들이 사용하던 곳이다. 좌측에 있는 건물은 내아로서 수령의 안채로 사용하던 건물로 내동헌이라고 한다. 당초 건립 연대나 퇴락한 연대는 기록에 없어 알 수 없으나 문헌을 참고하여 옛 터의 발굴 조사와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1990년 복원하였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동헌 옆에 있는 군수의 생활공간인 내아를 출입하는 문>

<생활 공간인 내아>

<내아 대청마루>

<건물 앞 통로로 사용되었던 툇마루>

<온돌방 내부>

<내아 뒷마당>

<읍치 마을 가운데 위치한 옥사>

<옥사 건물>

  1.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2. 위키백과,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