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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순천왜성,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가 쌓은 왜성

전남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순천왜성이다. 광양만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구릉에 쌓은 왜성으로  정유재란 때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가 호남지방 공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쌓았다. 성벽을 쌓은 석축의 형태, 돌의 크기나 모양 등이 우리나라 산성과 다르고 일본 각 지역에 남아 있는 다이묘들의 성과 비슷하다. 성벽은 내성,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효율적인 방어를 위해 여러단계의 성문과 성벽을 두고 있다.

이곳은 왜장 고니시가 이끈 왜병이 주둔하면서 조·명연합군과 마지막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본성 정상부에서 동쪽 광양만을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협이 어렴풋이 보이며, 광양제철소의 웅장한 모습도 같이 볼 수 있다.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가 주둔했던 울산왜성과 함께 임진왜란을 대표하는 왜성이다.

<순천왜성>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쌓은 성곽 중 그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는 곳으로 일본인들은 순천성이라 불렸으며 한때는 사적으로 지정되기도 했었다.

<순천왜성이 있는 구릉>

순천왜성은 광양만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구릉위에 자리잡고 있다. 선박이 정박할 수 있으며, 주위를 감시하기 좋은 곳으로 전형적인 일본성곽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내성 첫번째 출입문>

순천왜성 내성은 2중으로 성벽을 쌓았는데 그 중 첫번째 성벽으로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는데 최근 일부를 복원해 놓았다.

문지
이 문지는 본성과 외성을 연결하는 주출입문이다. 문지 옆으로는 해자를 만들고, 바다 물을 끌어들여 섬처럼 만들어 방어에 치중하였던 건물지로 여겨진다. 만조 때 멀리서 이곳 출입로가 다리처럼 보인다 하여 왜교 또는 예교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문지 공사는 2007년 이루어 졌으며, 기존에 남아 있는 형태를 기본으로 하여, 일본성 축조방식을 자문받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문지를 쌓는 방식은 비교적 큰 돌을 이용하여 불규칙하게 쌓았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8년)

<복원해 놓은 바깥쪽 성벽>

<본환이라 불리는 정상부로 오르는 길>

<순천왜성 정상부 본환 성벽>

일본성은 정상부 본환에 지휘부가 머무는 천수각이라는 불리는 건물을 세워둔다.

<본환이라 불리는 정상부 성벽>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성벽>

큰 돌을 잘 다듬어 촘촘히 쌓았으며, 약간 경사를 두고 있는 전형적인 일본성 축성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성문>

성문은 양쪽에 높은 성벽을 쌓아 적을 제압하기 좋은 형태를 하고 있다. 중국이나 조선의 읍성 등에서 볼 수 있는 둥근 형태의 옹성과 같은 역할이나 그 형태가 다르다. 포루투갈의 영향을 받은 축성방법으로 보인다.

<정상부에 위치한 본환에 남아 있는 천수기단>

이곳에 천수각이라 불리는 5층으로 추정되는 목조건축물을 세워 놓았다.

천수기단
천수 건물이 세워졌던 단으로 천수기단 앞에는 부속된 낮은 단이 있다. 천수는 성을 대표하는 권위와 상징의 건물이. 『정왜기공도권』에는 3층 팔작지붕의 천수대가 그려져 있으나 천수각 1층 아래에 오층망해루라고 쓰여져 있어 오층 건물이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천수기단은 오랜 세월 동안에 석축이 흐트러지고 일부가 무너져 2007년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석축쌓기 방식은 자연석을 불규칙하게 쌓는 방식이다. 모서리 돌은 쐐기질하여 쪼갠 돌을 사용하였고, 쐐기질 흔적이 잘 남아 있으며 위아래를 교차되게 쌓았다. 천수기단의 상부는 남아 있던 초석은 그대로 보존하고 기존 초석위에 새로운 초석을 놓아 건물의 규모를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8년)

<정성부에서 내려다 보이는 광양항>

그 너머로 고니시 군대와 조.명연합군이 마지막 결전을 벌렸던 노량해협이 있다.

<순천왜성 아래>

원래 바다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매립되어 공단으로 바뀌었다.

<순천왜성이 있는 지역>

순천왜성은 노량해협을 마주보고 있는 여수반도 입구에 세워졌다. 연안 해로를 장악하기 위해 여수항에 자리잡았던 전라좌수영 본영과는 달리 호남 내륙을 장악하기 용이한 지점에 요새를 구축해 놓았다.

순천왜성, 
이성은 전라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왜성으로 1597년 9월 중순부터 11월말에 이르기까지 약 3개월에 걸쳐 쌓았다. 1597년(정유년) 9월에 왜군은 경기도 부군 전쟁에서 패한 뒤 전라도와 경상도 남해안 지역으로 남하하였는데 이때 각 지역의 요충지를 찾아 새로운 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이곳에 성을 축조하였던 것은 호남지방을 공략하기 위한 전초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1598년 9월부터 11월까지 2개월간에ㅐ 걸쳐 이곳에서 펼쳐진 싸움이 왜교성전투이며, 이는 조.명 연합군과 왜의 장수인 고니시 유키나기 사이에 벌어진 최대의 격전지였으며, 임진왜란 7년 전쟁의 마지막 전투이기도 하였다. 당시 전재의 모습은 『정왜기공도권』에 그려져 있다. 성곽의 구조는 본성과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성에는 별도의 내성이 있다. 내성과 본성의 성벽은 각각2겹으로 축조되어 있고, 외성은 1겹으로 축조되어 있다. 성곽내에는 천수기단, 문지, 해자 등의 주요 건물지가 남아 있어 성곽 축조 당시의 성들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성곽내 주요 건물지에 관한 내용은 전쟁의 모습이 그려진 모습은 『정왜기공도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8년)

<출처>

  1.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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