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중앙박물관특별전, 에트루리아] 로마문화에 남은 에트루리아

에트루리아는 이탈리아반도에서 유력한 세력으로 성장했으며 북쪽으로 포강유역, 남쪽으로 라치오주까지 그 영토가 확장되었다. 로마에는 에트루리아인 왕조가 들어서기도 했으며 농촌에서 거대한 도시로 성장하였다. 에트루리아는 로마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로마시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잘 포장된 도로, 광장, 수로시설, 대규모 사원 등은 에트루리아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다. 또 에트루리아는 고대 그리스 문화를 수입하여 로마에 자리잡게 했으며 그리스 문자에서 온 에트루리아 문자를 통해 로마 문자가 만들어졌다. 기원전 4세기 이후 로마제국은 본격적으로 확장되면서 에트루리아는 로마의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야누스, 1세기, 대리석,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야누스(반대편)>

<야누스(옆면)>

야누스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문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야누스머리를 조각한 기둥을 거리, 교차로, 문 앞, 국경 등에 도둑과 사고를 막고자 설치하였습니다. 한쪽은 노인의 얼굴을, 다른 한쪽은 청년의 얼굴로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와 로마
에트루리아는 로마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에트루리아가 멸망한 이후에도 두 나라는 지속적으로 서로의 문화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로마에 끼친 에트루리아의 영향은 도시의 모습에서 잘 드러납니다. 옹기종기 집들만 모여 있던 기존의 마을이 포장된 도로, 광장, 수로시설 대규모 사원을 갖춘 도시 형태로 변모한 데에는 에트루리아의 영향이 가장 컸습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아르카익 시기부터 로마에 정착했습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일곱명의 왕이 기원전 764년에서 509년까지 로마 제국을 통치했는데, 이들 중 마지막 세 명의 왕이 에트루리아와 관련된다고 합니다. 기원전 4세기 로마는 제국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했으며, 에트루리아를 정복해 나갔습니다. 기원전 396년 로마가 베이오을 최초로 함락한 이후, 에트루리아는 로마의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1. 유골단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 대리석, 토스카나 피렌테 빌라 코르시니,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대리석이나 설화석고로 만들어진 암포라 형태의 유골단지입니다. 이러한 유골단지는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에트루리아 상징이 묘사된 유골함, 1세기, 대리석,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유골단지로 에트루리아와 로마의 연관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측면의 x자 모양의 접이식 의자는 로마 행정관이 직무를 수행할 때 앉았던 것으로 이는 에트루리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의자 옆에는 두 점의 파스카스가 있는데, 이는 에트루리아 왕의 경호원들이 소지했던 무기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죄수와 여사제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말 ~ 1세기 초,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1. 유골단지, 아우구스투스 황제시대, 대리석,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기원전 27년 ~ 기원후 14년)에는 화장이 가장 일반적인 장례방식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원통 모양의 유골함이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몸통에는 꽃줄 장신인 페스툰(festoon)을 든 사랑의 신 에로테스(erotes)들이 새겨져 있고, 뚜껑에는 뱀을 입에 문 독수리가 손잡이 형태로 달려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카피톨리노의 늑대가 묘사된 유골함,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 대리석,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몸통은 작은 사각형의 집이며, 뚜껑은 종려나뭇잎 무늬 장식이 달린 경사진 지붕으로 표현한 유골함입니다,. 글씨가 새겨진 판 아래에는 늑대가 쌍둥이에게 젖을 물리는 로마 시조 신화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밑은 꽃줄장식인 페스툰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개선 행진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말 ~ 1세기 초,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봁네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여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탄 망자 앞에 두 명의 호른 연주자와 파스케스를 든 두 명의 경호원, 관을 운구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행렬이 보입니다. 날개를 펼치고 횃불을 든 반트가 이 행렬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승리를 축하하는 개선 행진은 에트루리아와 로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바쿠스, 2세기, 대리석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바쿠스는 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로 불리는 신입니다.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영생을 얻었으며, 지상의 인간들에게 포도 농사를 가르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른손에는 포도송이를 들고, 바쿠스를 따라다니는 동물인 표범을 데리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영웅상, 로마제국, 대리석,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사냥꾼 모습의 젊은 남성을 표현한 조각입니다. 오른손에는 뿔을 들고 왼발로는 야생돼지의 머리를 밟고 있으며 개를 데리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메르쿠리우스와 헤라쿨레스가 묘사된 장식판, 1세기, 대리석,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작은 제단에 제물을 바치은 헤르쿨레스(오른쪽)와 메르쿠리우스(왼쪽)의 모습이 새겨진 부조입니다. 두 인물 사이에는 ‘SACR’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에트루리아의 알파벳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반면, 로마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유피테르 가면, 로마제국, 대리석,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유피테르 두상의 클리페우스(Clypeus)입니다. 클리페우스는 신이나 위대한 인물의 상반신, 특히 얼굴을 둥근 모양으로 양각한 것을 말합니다. 로마에서는 대리석이나 금속으로 만든 클리페우스를 많이 제작했으며, 벽에 걸어 건축 장식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1. 페디먼트 장식(유피테르)>

<2. 페디먼트 장식(말 탄 사람)>


<3. 페디먼트 장식(남성), 기원전 2세기 초, 테라코타, 리구리아 루니,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페디먼트 장식
건축 장식의 일부로서, 고대 도시 루니의 대신전 페디먼트를 장식했던 테라코타입니다. 루니는 에트루리아의 국경 지대에 있던 도시로, 대신전은 도시 건설 후 바로 세워졌습니다. (기원전 177년). 이 신전은 셀레나 루나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입니다. 앞에 놓인 페디먼트 장식은 헤르쿨레스의 아들인 텔레포스의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말을 탄 남성들과 방패를 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전사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앉아 있는 남성 신상은 유피테르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페디먼트의 중심부에 위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체의 젊은 남성 한명과 수염을 기르고 망토를 두른 남성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루니 신전
루니는 기원전 177년 로마가 군서적 목적으로 건설한 식민도시였습니다.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대신전은 달의 여신 루나를 위한 것으로 도시 조성 후 바로 세워질 정도로 중요한 건물이었습니다. 로마의 신전임에도 불구하고 테라코타로 페디먼트를 장식하는 등 에트루리아 신전의 모습을 띠고 있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유피테르, 로마제국, 청동,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그리스에서는 제우스, 에트루리아에서는 티니아로 불리던 로마의 신 유피테르의 조각상입니다. 나체의 유피테르가 오른손으로 번개를 쥐고 있습니다. 들어올린 왼손에는 홀(笏)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비너스, 로마제국, 청동,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에 해당하는 비너스는 사랑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여신입니다. 비너스는 로마의 시조라고 전해지는 아이네아스의 어머니로 로마의 조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로마인에게 중요한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왼손에 쥔 물체는 현재 유실되었지만, 아마도 비너스의 상징인 황금사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메르쿠리우스, 로마제국, 청동,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그리스 신화에서 헤르메스로 불리는 메르쿠리우스는 신들의 전령이자 여행자의 수호신입니다. 보통 날개달린 신발과 챙이 넓은 여행용 모자를 쓴 형태로 표현됩니다. 왼손에는 현재 유실되었지만, 메르쿠리우스의 또 다른 상징인 두 마리 뱀으로 둘러싸인 날개달린 지팡이 카우케우스(caduceus)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헤르쿨레스, 로마제국, 청동>

그리스에서는 헤라클레스, 에트루리아에서는 헤르클로 알려진 로마의 헤르쿨레스는 초인간적인 힘을 가졌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에트루리아와 로마에서는 헤리쿨레스를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여기서 헤르쿨레스는 오른손에는 곤봉을, 왼손에는 사과를 들고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포르투나, 로마제국, 청동,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그리스 신화에서는 티케로 불리던 로마의 신 포르투나입니다. 도시의 행운, 번영, 운명의 신으로서, 대개 이 조각상과 같이 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조타기를 오른손에 들고 있습니다. 다만, 이 조각상에서는 유실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외니손에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과일을 가듣담은 뿔이 표현되어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로마 문화에 남은 에트루리아
에트루리아는 많은 문화적 유산을 로마에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종교적인 영역과 권력의 상징성은 매주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집니다. 서기 47년 로마 황제는 미래를 예언하는 에트루리아인들의 행위를 이탈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규범으로 정의하고, 이를 로마에서 계속 이어나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창자점 60가지를 재편하여 로마 종교에 편입시켰으며, 이는 4세기까지도 이어졌습니다. 로마의 권력과 종교를 상징하는 많은 포상 역시 에트루리아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고위 관료용 인장, x자 모양 접이식 의자, 사법권을 상징하는 포상 등은 처음에는 로마 황제들만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관할구역을 관리하는 총독 등도 사용하였습니다. 로마의 사제들의 상징인 구부러진 지팡이 역시 에트루리아의 종교 전통에서 도입된 것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에서 찾은 서구 문화의 숨결
우리는 지금껏 서구 문화의 뿌리는 그리스-로마로 배워왔습니다. 로마가 그리스 문화를 모방하여 제국의 팽창과 함께 그 문화를 널리 퍼트렸다고.. 그러나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국가에 불과했던 로마가 주변 도시 국가를 제압하고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그 바탕에는 에트루리아의 영향이 컸습니다. 로마는 건축술, 문자, 종교관, 상징체계, 오락거리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에트루리아로부터 빚을 지고 있습니다. 돌을 주재료로 삼았던 그리스나 로마와 달리 에트루리아는 나무와 흙으로 모든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에트루리아 문화는 따사로운 봄날에 피었다 지는 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하니만 에트루리아가 로마에 전수한 문화는 2천년이라는 세월을 뛰어 넘어 아직도 세계 곳곳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에트루리아 문화는 로마라는 이름 안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고.(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다.
유네스코는 2005년, 에트루리아 유적인 체르베테리 네크로폴리스와 타르퀴니아 네크로폴리스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였습니다. 에트루리아는 로마 이전, 이탈리아에 존재했던 유일한 도시문명으로, 이 유적은 그들의 삶과 죽음, 종교적 믿음을 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는 모두 49개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 있습니다. 이중 상당수가 에트루리아의 영향을 받은 로마의 유적입니다. 에트루리아는 로마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녹아 3천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우리 앞에 당당히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