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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아스테카] 번영의 도시 테노츠티틀란

테노츠티틀란(Tenōchtitlan)은 오늘날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에 존재했던 아스테카 제국의 수도이자 도시국가였다. 12세기 중반 아스테카 민족이 멕시코 고원 중부로 진출하면서 큰 도시를 건설했다. 인구 20만명 정도로 중앙아메리카 최대 규모의 도시였다. 1519년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가 아스테카 제국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던 다른 부족과 함께 수도를 공격하면서 아스테카 제국은 무너졌다. 도시는 호수에 떠 있는 둘레 10여 km정도의 섬으로 건설되었다. 멕시코시티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유적은 1970년대 이후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금도 발굴은 진행중이다.

<번영의 도시 테노츠티틀라>

번영의 도시 테노츠티틀란
1519년 아스테카의 중심 테노츠티틀란에 처음 도착한 스페인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도시는 크고 아름답고 깨끗했으며, 그들이 유럽에서 본 로마나 콘스탄티노플과 견줄 수 있었습니다. 당시 테노츠티틀란의 인구는 20만 명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테스코코 호수 위에 자리한 이 도시는 거대한 댐을 건설하고 그 위에 길을 내어 물자를 유통했습니다. 또한 수로를 개설하여 깨끗한 생활용수를 확보했습니다. 아스테카에서 가장 큰 틀라테롤코 시장은 다양한 음식과 상품들로 넘쳐났으며, 메소아메리카 전 지역에서 온 희귀한 상품들이 거래되었습니다. 이곳에 최고의 예술가, 과학자, 수옹업자, 의사, 사제들이 모여들었고, 도시 중심부에는 왕과 귀족이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이처럼 아스테카 전역의 부와 지식은 모드 테노츠티틀란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왕의 궁전은 도시의 중심이었고, 신성 구역은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1. 뱀 머리 모양 건축 장식, 아스테카, 350~1521년, 돌, 안료, 독일 쾰른 라으테스트라우흐-외스트박물관>

이 조각상은 ‘깃털 달린 뱀’을 나타낸 것입니다. 조각상의 오른편에 청록색 안료의 흔적이 있어 본래 푸른색으로 칠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청록색은 화려한 빛깔을 지닌 케찰 새의 깃털을 표현한 것입니다. 깃털 달린 뱀은 창조의 신 케찰코아틀을 상징하기에 이 조각상은 케찰코아틀 신을 위한 건물을 장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독수리 머리, 아스테카, 14세기 중반 ~ 1521년, 돌, 벨기에 왕립예술역사박물관>

아스테카에서 독수리는 태양을 상징합니다. 신전 건물의 외벽을 장식하였던 이 조각상 역시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아스테카의 왕은 궁전 안에서 독수리를 길렀으며, 살아 있는 독수리는 주요 공납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건국신화에 따르면, 200년 동안 유랑하던 아스테카 사람들은 선인장 위에 뱀을 물고 앉아 있는 독수리의 모습을 보고 테노츠티틀란 섬에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오늘날의 멕시코 국기 중앙에도 신화 속 독수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3. 뱀, 아스테카, 14세기 중반 ~ 1521년, 돌, 벨기에 왕립예술역사박물관>

아스테카에서 뱀은 대지의 신과 관련이 있는 신성한 동물입니다.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는 특징 때문에 끊임없는 부활을 의미했으며, 풍요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대지의 신 코아틀리쿠에가 아스테카의 수호신인 우이철로포츠틀리를 잉태한 곳도 바로 ‘뱀의 산’ 코아테팩(Coatepec)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4. 선인장에 앉은 독수리, 아스테카, 14세기 중반 ~ 1521년, 감람석 현무암, 스위스 바젤 문화박물관>

독수리가 발톱으로 방울뱀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입니다. 뱀의 꼬리 끝에 달린 방울이 독수리의 꼬리 깃털과 발톱 주변에서 보입니다. 독수리의 부리 왼쪽 아래에 새겨진 달력 기호는 ‘7갈대’해를 나타낸 것으로, 이는 1447년 또는 52년 후인 1499년을 가리킵니다. 이 독수리와 뱀은 아스테카의 건국신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보투리니 고문서(Codex Boturini)는 아즈테카의 신화와 역사가 담겨 있는 서사시로 ‘여정의 두루마리’라고도 불린다. 아스테카 그림문자로 작성된 이 고문서는 멕시코 원주민의 그림언어를 볼 수 있는 자료이자 당시 사람들이 사고방식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문서이다. 현재 멕시코 국립박물관 도서관에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

<보투리니 고문서 중 1, 2>

1) 1부싯돌 해에 고향을 떠난 아스케가 사람들은 동굴에서 우이칠로포츠틀리 신을 만납니다. 신은 선인장 위에 독수리가 앉아 있는 곳을 향해 가라고 말합니다.
2) 아스테카 사람들은 등에 우이칠로포츠틀리 신을 진 사제를 앞세워 다른 부족들과 함께 길을 나섭니다.

<보투리니 고문서 중 3, 4>

3) 그러나 신이 아스테카 사람들만 홀로 여정을 이어가라고 하자, 헤어짐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4) 독수리가 나타나 전사의 표식인 활과 화살, 그물을 아스테카 사람들에게 건네줍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스스로를 ‘메시카’라고 부릅니다.

<보투리니 고문서 중 5, 6>

5) 여정을 이어가다가 ‘뱀의 산’을 뜻하는 코아테펙에 머무릅니다. 앉아 있는 모습은 정착을 의미합니다.
6) 2집 해에 정착하여 3부싯돌 해에 다시 길을 나섭니다.

<보투리니 고문서 중 7, 8>

7) 톨란에 도착해 9갈대 해까지 머무르다가 다시 길을 떠납니다.
8) ‘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곳’ 타틀리틀랄라키안을 거쳐 ‘향로’를 뜻하는 틀레마코로 이동합니다.

<보투리니 고문서 중 9, 10>

9) ‘물이 담긴 항아리’라는 뜻의 아토토닐코와 ‘물이 담긴 그릇’을 뜻하는 아파스코를 거쳐갑니다.
10) 촘판코에서 전투를 벌인 후 적의 머리를 나무에 꿰어 신전에 겁니다. 이를 ‘촘판틀리’라고 부릅니다.

<보투리니 고문서 중 11, 12>

11) 테스코코 호수에서 카누를 타고 여정을 이어갑니다.
12) ‘바람의 산’을 뜻하는 에에카테펙을 거쳐 ‘나무가 있는 곳’ 툴페틀락을 지나갑니다.

<보투리니 고문서 중 13, 14>

13) ‘뱀이 있는 곳’ 코우아티틀란에 도착한 후, 찰코에서 용설란을 얻습니다.
14) 용설란을 심고 그 수액을 발효시켜 제의에 쓸 풀케를 만듭니다.

<보투리니 고문서 중 15, 16>

15) 우이샤츠티틀란을 거쳐, ‘부싯돌 칼의 산’ 테파요칸에서 치열한 결투를 벌입니다. 6갈대 해에 전염병이 퍼져 다시 이동을 시작합니다.
16) 7부싯돌 해에 테소소목 왕이 다스리는 아스카포찰고의 아말리나판으로 갑니다.

<보투리니 고문서 중 17, 18>

17) ‘풀이 있는 곳’ 포포틀라를 거쳐 ‘희생의 돌에 가까운 곳’ 테츠카티틀란을 지납니다.
18) ‘투장의 장소’를 뜻하는 아틀라쿠이우아얀을 거쳐 ‘샘이 흐르는 메뚜기 산’ 차풀테팩에 이릅니다.

<보투리니 고문서 중 19, 20>

19) 2갈대 해에 아스카포찰코 사람들과 전투를 벌입니다. 물이 굽이치는 곳 주변의 갈대에 숨어 언제까지 떠돌아 다녀야 할지 몰라 눈물을 흘립니다.
20) ‘벌새 깃털’을 뜻하는 아스테카의 왕 우이칠리우이틀이 나내와 함께 ‘정상이 구부러진 산’을 뜻하는 쿨우아칸으로 끌려갑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항아리가 가까이 있는 곳’ 콘티틀란에 자리를 잡습니다.

<보투리니 고문서 중 21, 22>

21) 쿨우아칸의 왕 코스코스틀리가 아스테카 사람들에게 쇼치밀코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증거로 귀를 베어오라 명합니다.
22) 아스테카 전사들은 힘차게 소리를 지르며 싸우러 나갑니다.

5. <보투리니 고문서> 또는 <여정의 두루마리>, 복제품, 원본은 1530~1541년, 독일 슈투르가르트 린덴박물관
<보투리니 고문서>는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로렌조 보투리니 데 베나두치(Lorenzo Boturini de Benaducci)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고문서는 아스테카 사람들이 신화 속 고향 아스틀란을 떠나 멕시코 중앙고원에 도착하기 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아스테카’라는 이름은 이 신화 속 고향 아스틀란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아스테카 제국의 통치자는 ‘우에이 틀라토아니(uēi Tlahtoāni)’로 불렸다. 아스테카 제국은 전쟁과 동맹을 통해 확장되었으며 통치자는 군사적, 종교적 기능을 갖추었다. 왕족 가운데 선출되었으며 도시 중심부 궁전에서 살았다. 마지막 통치자 목테수마 2세(재위: 1502~1520년)로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에게 공격받아 살해당했다.

<목테수마 2세의 상자, 아스테카, 1506년 추정, 화강암, 독일 함부르크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아스테카의 뛰어난 공예 수준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돌로 만든 상자의 모든 면을 달력 기호, 인물, 동물무늬로 장식했습니다. 뚜껑에는 케찰코아를 신과 연도를 나타내는 달력 기호 ‘1갈대’가 새겨졌습니다. 신화에 따르면 동쪽으로 떠난 케찰코아틀이 ‘1갈대’해에 다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우연히도 ‘1갈대’해는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스테카 처음 도착한 때인 1519년에 해당합니다. 상자의 옆면에는 왕을 상징하는 이름 기호를 가진 인물이 있어 목테수마 2세가 이 상자를 소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상자, 아스테카, 14세기 중반 ~ 1521년, 돌,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아스테카 사람들은 돌로 만든 상자에 달력 기호나 신을 묘사해 장식했습니다. 이러한 상자는 희생제의 때 사용하는 용설란 가시 또는 날카로운 뼈를 보관하거나, 혹은 통치자의 유골을 담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1. 대룽구슬, 아스테카 추정, 경옥,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

<1. 귀걸이, 아스테카 추정, 경옥,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

경옥은 메소아메리카에서 가장 귀하게 여겨졌던 광물 가운데 하나로 녹색은 성장, 생명, 풍요를 상징합니다. 이와 같은 장신구는 상류층만 착용할 수 있었습니다. 구슬에는 깔개무늬가 있습니다. 아스테카에서 깔개는 다양하게 사용되었지만, 때로는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옥으로 만든 원반 형태의 귀걸이는 귀를 뚫은 다음 구멍을 넓혀 끼웠습니다. 귀걸이의 가운데 구멍에는 균형추를 끼워 넣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입술꾸미개, 아스테카 추정, 14세기 중반 ~ 1521년, 흑요석,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흑요석으로 만든 입술꾸미개입니다. 아랫입술과 턱 사이를 이러한 꾸미개로 장식했습니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여러 상황에 맞게 다양한 재질로 만든 입술 꾸미개로 장식했는데, 비의 신 틀랄록을 위한 축제 때는 옥이나 터키석으로 만든 입술꾸미개를 착용했다고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섬에 세운 도시
테노츠티틀란은 테스코코 호수의 섬에 건설한 도시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댐을 건설하여 섬과 섬을, 그리고 섬과 육지를 연결했습니다. 이중으로 만든 수로로 섬 바깥에서 깨끗한 식수를 공급했습니다. 호수 위의 카누들은 말, 소, 라마 같은 동물이 없는 메소아메리카에서 훌륭한 물자 운송 수단이었습니다. 도시의 집은 대부분 단층으로 된 벽돌집으로 작은 마당을 공유하며 함꼐 모여 있었습니다. 벽에는 회반죽을 발라 화려한 색으로 장식했습니다. 도시 곳곳에는 여러 신들을 모시는 많은 신전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도사 가운데 신성 구역이 있었고 그 중앙에는 대신전, 즉 템플로 마요르가 있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통치자 우에이 틀라토아니
도시국가의 통치자는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의 ‘틀라토아니’라고 불렸습니다. 삼각동맹을 주도하고 많은 도시국가를 지배하였던 아스테카의 통치자는 특별히 ‘우에이 틀라토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언어인 나우아틀어로 우에이는 ‘위대한’, ‘큰’이라는 뜻입니다. 우에이 틀라토아니는 왕족 가운데 선출되었으며,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신성 구역 바로 옆의 궁전에 살았습니다. 2층으로 된 궁전은 여러 개의 방이 연결된 구조로, 가장 마지막 방은 연설을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궁전에는 동물원과 식물원도 있었는데, 이는 아스테카가 자연까지 지배했음을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줄무늬 잔, 아스테카, 16세기초, 토기,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목테수마 2세의 궁전 위에 지어진 멕시코 대통령 궁에서 아스테카의 제의유적을 발견했습니다. 이곳에서 이와 같은 잔 50점이 출토되었습니다. 제의에서 용설란 즙을 발효시켜 만든 알코올음료 풀케를 담거나 향로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이러한 고급 토기를 신성한 힘을 가진 생명체와 같이 여겼습니다. 토기의 붉은색과 흰색 줄무늬는 전쟁과 재생의 신 시페 토텍과 관련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살가죽을 입었다는 시페 토텍은 고문서에서 하얀 몸에 붉은 점이나 줄무늬를 장식한 모습으로 자주 묘사됩니다. 붉은색과 흰색은 부패해가는 살가죽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1. 구슬이 들어 있는 세발 채색 접시, 아스테카, 14세기 중반 ~ 1521년, 토기,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접시에 달린 세 개의 다리에 점토로 만든 구슬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릇이 움직일 때마다 비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납니다. 이 토기에는 파도무늬가 있어 제의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세발 채색 접시, 아스테카, 16세기 초, 토기,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3. 세발 채색 접시, 아스테카, 14세기 중반 ~ 1521년, 토기,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4. 채색접시, 미스테카, 16세기 초, 토기,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

그릇의 안쪽에 끝부분이 하얀 손, 뼈, 두개골, 교차된 띠가 있는 검은 원반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스테카의 예술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무늬들로, 전쟁, 희생, 죽음, 마법의 거울 등을 상징합니다. 주변의 원형 띠는 밝게 빛나는 태양의 광채를 나타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채색 잔, 아스테카, 16세기 초, 토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아스테카의 중심지인 멕시코 중앙고원 일대에서 발견한 잔입니다. 한꺼번에 대량으로 발견되어 제의 등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채색바리, 멕시코만, 1500년경, 토기,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아스테카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정복 도시국가의 다양한 토기가 테노츠티틀란으로 유입되었으며, 기존의 양식과 혼합되기도 했습니다. 이 토기는 멕시코 동쪽 멕시코만 일대의 전형적인 형태로 지역 통치자들의 호화로운 축제에서 사용했습니다. 그릇에는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한 귀족이 성배 혹은 래틀 악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세발접시, 아스테카, 14세기 중반 ~ 1521년, 토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검은 안료를 칠한 세발 접시입니다. 이와 같은 검은색과 주황색의 그릇은 일상과 연회 등에서 주로 사용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1. 채색 주전자, 아스테카, 14세기 중반 ~ 1521년, 토기, 벨기에 왕립예술역사박물관>

용설란 즙을 발효시켜 만든 술인 풀케를 담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뱀의 머리가 그려져 있어 제의에서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세발접시, 아스테카, 14세기 중반 ~ 1521년, 토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아스테카의 가장 아름다운 그릇 가운데 하나입니다. 귀족들의 식사에는 이와 같이 정교하고 아름답게 장식된 접시에 음식이 담겨졌습니다. 제물을 담아 신에게 바치기도 하여 종종 제의 장소에서도 발견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화려한 도시
테노츠티틀란에서는 화려한 축제가 정기적으로 열렸습니다. 우에이 틀라토아니는 귀족과 멕시코 전역의 정복한 도시국가에서 온 틀라토아니에게 축제를 열어 수백가지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생선, 굴, 카카오 등은 이들만이 즐길 수 있는 귀한 식재료였습니다. 항상 노래와 추미 빠지지 않았으며, 환각제를 곁들이기도 했습니다. 축제의 마지막은 늘 담뱃잎을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축제는 충성을 다한 귀족과 정복한 도시국가의 틀라토아니에게 주는 보상인 동시에 자신들의 권위를 과시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 역시 테노츠티틀란에 2년 정도 머무르면서 이런 성대한 축제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아스테카는 축제 동안에 코르테스의 군대에 제압당하고 말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보르지아 고문서(Codex Borgia)는 중부 멕시코에서 발견된 고문서로 16세기 달력과 제의를 담고 있다. 18세기까지 보르지아 추기경의 소유하고 있었으며 지금은 바티칸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아스테카의 신화, 의식, 점술, 달력, 종교 등의 연구를 위한 중요한 출처가 되고 있다. 내용은 28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스테카 제의용 달력에 대한 다양현 설명을 담고 있다.

<보르지아 고문서 중 1번째>

1. 스페인 세력은 아스테카의 고문서와 서적을 불태워 이들의 문화와 지식을 파괴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학살로 인해 식민지 이전 시대의 고문서는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불탄 자국이 남은 이 고문서 또한 슬픈 역사의 흔적을 잘 보여주고 있읍니다. 그러나 많은 아스테카의 지식이 구전으로 전승되어, 현재까지 이어집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보르지아 고문서 중 2번째>

<2번째 장면 설명>

2. 이 장면이 그려진 고문서는 다섯번째 세상, 즉 다섯번째 태양의 탄생을 설명합니다. 인간이 태양에 감사를 표하고 성스러운 제의를 올려 양분을 공급해야만 태양은 우리에게 빛을 내려 준다고 경고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3번째>

<4번째>


<설명>

3. 결혼하는 두남녀가 태어난 날의 숫자와 기호를 조합하여 앞날을 점쳐보는 장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5번째>

4. 바람의 신 에에카틀과 지하세게의 신 믹틀란테쿠틀리가 함께 있는 장면입니다. 에에카틀은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인데 반해, 믹틀란테쿠틀리는 죽은 자들의 세계인 지하 세계를 다스립니다. 이 둘이 함께하면 인생의 전체, 그리고 삶과 죽음의 순환을 상징합니다. 동시에 믹틀린테쿠틀리는 공경의 대상인 조상들을, 에에카틀은 파괴를 몰고 오는 바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모든 신들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으며, 긍정적인 힘이 나올 수 있도록 이들을 잘 모셔야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6번째>

5. 사슴 가죽 위에 20개의 제의용 달력 기호가 그려졌습니다. 오늘날의 별자리 운세처럼 태어난 날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을 예측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정한 날과 신체의 일부를 연결시켜 질병을 치료하는데도 사용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7번째>

<8번째>

 보르지아 고문서, 사본, 원본은 15세기 제작 추정, 바티칸도서관 소장
이 고문서는 <요알리 에에카틀 고문서>라고도 불립니다. ‘요알리에에카틀’은 나우아틀어로 ‘밤과 바람’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종교적 중심지였던 촐룰라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스페인의 왕 카를로스 5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스페인 수도사 도밍고 데 베탄소스가 이 문서를 유럽으로 가져갔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지식의 도시
테노츠티틀란은 호화로운 도시이자, 지식의 도시였습니다. 최고의 과학자와 예술가, 지식인들이 이 도시에 모여 살았습니다. 복잡한 달력을 체계화하고 신들의 형상을 세밀하게 묘사하였으며, 그림문자로 쓴 정교한 책들을 만들었습니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식물과 인체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뛰어난 의학 지식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유럽의 의사보다 이들의 의술을 더 선호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페인 사람들이 원주민 책을 불태워 아스테카 사람들의 지식도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보르지아 고문서>와 같은 단 몇점의 문서만이 현재까지 전해질 뿐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테노치티틀란’, 위키백과, 2023년
  3. ‘여정의 두루마리’, 위키백과, 2023년
  4. ‘Aztecs’, Wikipedia, 2023년
  5. ‘Codex Borgia’,  Wikipedia,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