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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행주서원지, 권율을 모신 기공사가 있었던 옛터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 행주나루터에 남아 있는 행주서원지(幸州書院址)이다. 이곳은 임진왜란때 행주대첩을 이끌었던 권율장권을 모신 곳이다. 권율은 선조때 문과에 급제했으며, 임진왜란 때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던 문신이지만 행주대첩의 주역이며 도원수로 전쟁을 이끌었기때문에 권율장군으로 주로 불린다. 구한말인 1842년에 국왕인 헌종의 명으로 권율장군을을 모시는 사당인 기공사(紀功祠)를 세워졌고 이후 고종때에 강학공간을 갖춘 서원으로의 모습을 갖추면서 행주서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서원은 강학과 제사기능을 같이 가지고 있으면서 서원에 모신 인물의 학풍을 따르는 사람을 중심으로 학문과 사상을 논하는 것이 보통이나, 행주서원은 제사기능이 중심인 곳이다.

<고양 행주서원지>

행주산성 아래 한강과 행주나루터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출입구인 솟을대문, 강당, 사당일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지금은 서원 앞으로 민가들이 들어서 있어서 한강이 보이지는 않는다. 서원안에는 행주대첩비가 있었는데 1970년 충장사을 세우면서 옮겼다고 한다.

<행주산성 출입문>

건물은 뒷쪽에 위패를 모신 사당이 기공사가 있고, 앞쪽에 강당을 비롯한 강학공간을 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서원 현판은 고종때 무신으로 강화도 조약을 이끌었던 신헌이 썼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지금은 제사기능을 1970년에 행주산성내 사당인 충장사(忠莊祠)로 옮겨지고 그 기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행주서원 옛터라는 의미로 행주서원지(幸州書院址)라고 부른다. 행주산성 아래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행주나루터 인근에 세워진 이 행주서원 주변은 서울에서 가까운 대표적인 먹거리촌을 형성하고 있다.

<강당>

앞면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넓은 마루를 두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강경치를 감상하거나 공부하기에 좋은 구조를 하고 있다. 규모가 큰 서원의 경우는 경치를 감상하는 누마루와 강당을 따로 두고 있는데 행주서원 강당은 2가지 기능을 겸하고 있으며, 강학기능이 크게 중시되지 않았던 것 같다.

<동재>

<사당인 기공사>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린 것을 건물만 복원해 놓은 것이다. 권율장군의 위패가 행주산성 내 충장사로 옮겨졌기때문에 현재는 사용하지 않은 건물이다. 사당이 옮겨졌기때문에 현재의 건물은 서원으로서 기능을 상실했다.

<2010년 행주서원>

<행주대첩비>

행주서원에는 원래 행주대첩비가 있었으나 1970년대 충장사가 건립되면서 옮겼다가 2011년 행주서원으로 다시 옮겨졌다. 헌종대(1845)에 세워졌다. 2010년 행주산성내에 있었던 모습이다.

<행주서원이 위치한 마을>

이곳은 행주대교가 건설되기 전까지 한강을 건너던 교통수단인 나루터가 있었던 번창했던 마을이었다. 지금은 서울 근교의 대표적인 먹거리촌으로 바뀌었다.

<행주서원 앞 골목길>

<행주나루터>

행주서원지(幸州書院址),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
현종 8년(1842)에 세워진 행주서원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왜적들과 싸워 큰 공을 세운 권율장군을 모신 곳이다. 행주서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기공사라 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고, 점차 복원하여 현재에 이른다. 현판은 고종 때 무신으로 글씨와 문장이 뛰어난 신헌이 썼다. 권율장군은 선조15년(1582) 문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다. 선조 32년 전라도 병력을 인솔하여 행주산성에 주둔하던 중 3만병이 왜군과 싸워 2만4천명을 사살하는 행주대첩의 전과를 올린 공로로 도원수가 되었다. 왜군이 철수한 선조37년 노환으로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가 세상을 떠났다. 죽은 후 선무공신 1등에 영의정의 벼슬을 받았고, 시호를 충장공이라 하였다. <출처: 고양시청>

충장사(忠壯祠), 권율 장군을 모신 사당.

행주산성에는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장사가 있다. 원래 한강변 행주나루 부근 마을에 있던 행주서원 사당이었던 기공사의 기능을 옮겨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충장사는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전통적인 형태의 사당은 아니고 70년대 성역화 사업때 만든 콘크리트리로 지은 사당이다. 그래서 전통전인 사당의 모습은 아니고 전형적인 70년대 풍의 건물 모습을 하고 있다. 현판은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라고 한다.

<행주산성 충장사 입구 홍살문>

<충장사>

충장사는 행주산성 중턱 언덕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197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서원과는 달리 사당 건물만 들어서 있다.

<삼문>

<사당>

권율장군을 모신 사당인 충장사(忠壯祠). 1970년대 지어진 사당으로 한옥형태를 하고 있지만 콘크리이트로 지어졌다. 현판은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글씨라고 한다.

<사당에 모셔진 권율 장군 영정>

<충장사 관리인이 사용하는 작은 건물>

충장사(忠壯祠),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의 전공을 기리고 그의 호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1970년대 문화재 재건사업으로 건립한 사당이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콘크리트 건물이다. 충장사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이며 사당 안에 봉안된 장군의 영정은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이다. 충장사에서는 매년 3월 14일 행주대첩을 기념하는 제례를 모신다. <출처:고양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