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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절터

  • 구미 죽장사지, 오층석탑이 남아 있는 절터

    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에 있는 절터이다. 절터에는 통일신라 때 세워진 오층석탑(국보)가 남아 있어 통일신라 때부터 큰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조선전기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죽장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 사찰이 존속되었으며 그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절터에는 오층석탑과 옛 건물들을 올렸던 주춧돌 등 건축부재들이 일부 남아 있으며, 1950년대에 법륜사라는 이름으로 중건되어…

  • 충주 정토사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절터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었던 정토사는 신라말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태조 왕건이 국사로 모셨던 법경대사와 그 뒤를 이어 홍법대사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또한 고려시대 실록을 마지막으로 보관하던 곳으로 이 곳에 있던 실록을 비롯하여 많은 자료와 서적들이 한양으로 옮겨져 세종 때 고려사를 편찬하는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16세기에는 개천사로 불리면서 사찰이 유지되었으며, 조선후기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정토사가…

  • 부여 능산리사지(사적), 백제 성왕을 위해 세운 사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능산리사지(사적)이다. 백제의 대표적인 고분군인 능산리고분군과 백제 수도 사비성을 둘러싸고 있던 부여나성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발굴.조사를 통해 절터가 확인되었다. 절터는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남북축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전형적이니 백제의 1탑1금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절터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함(국보)를 비롯하여 중국으로 부터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청자류, 문서에 해당하는 많은 목간들, 건축자재인 수막새와…

  • 부여 군수리사지(사적), 백제 칠지도가 출토되었던 절터.

    충남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군수리사지(사적)이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일본인에 의해 백제 절터 중 최초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중문.목탑.금당.강당이 남북축으로 일직선에 배치된 전형적인 백제의 1탑 1금당식 가람배치가 확인되었다. 금당터는 백제 건축에서 볼 수 있는 기와를 쌓은 와적기단을 사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목탑터 심초석 부근에서 금동미륵보살입상(보물)와 석조여래좌상(보물)가 출토되었으며, 칠지도를 비롯하여 다양한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금당터에서도 금동제방울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군수리사지는…

  • 부여 왕흥사지(사적), 백제 왕실이 부소산성 맞은편에 세운 사찰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 있는 왕흥사지(사적) 절터이다. 부여 부소산성 맞은편 금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백제의 옛 절터이다. 왕흥사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여러 문헌에 남아 있다. 여러 차례의 발굴 조사를 통해 사찰의 가람배치가 확인되었으며 기와편을 비롯하여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가람배치는 목탑, 금당, 강당이 일렬로 배치된 형태로 1탑 1금당의 전형적인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목탑터 심초석…

  • 익산 미륵사지(사적), 백제 무왕이 세운 백제 최대 규모의 사찰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미륵사지(사적)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 무왕 창건한 백제 최대이자 신라 황룡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대형 사찰이다. 석탑 수리과정에서 출토된 사리봉영기에 따르면 백제 왕후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석탑(국보)만 남아 있는데 석재를 이용하여 목탑 형태를 구현해 놓다.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통일신라 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그…

  • [익산 왕궁리유적 전시관] 사찰로의 변화.

    왕궁리유적지는 오층석탑(국보)의 존재로 사찰이 있었던 절터로 알려져 있었다. 이곳이 언제 사찰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무왕이 죽은뒤 그를 기리는 원찰로 성격이 바뀐것으로 보고 있다. 왕궁 중심부에 있던 중요 건물을 설치하고 목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상에 배치된 전형적인 백제의 1탑 1금당식 사찰이 조성되었다. 통일신라 때 사찰이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사찰과 관련된 유 물들이 다수 출토되고 있다.…

  •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 확인되는 궁궐터

    전북 익산시 왕궁면과 금마면에 있는 왕궁리 유적(사적)이다. 오층석탑이 남아 있던 이곳은 마한의 도읍지설 등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으나 발굴.조사 결과 백제후기에서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 확인되는 중요한 유적이다. 유적은 백제 무왕 때 조성은 궁성 영역과 백제말 또는 통일신라 때 조성된 사찰영역이 혼재되어 있다. 궁성은 치밀한 계획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중국의 영향을…

  • 익산 제석사지(사적), 왕궁리 궁성을 수호하기 위해 세운 사찰 절터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있는 제석사지(사적) 절터이다. 제석사는 백제 왕실의 번창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왕실 사찰로 왕궁리유적에서 동쪽으로 1.5 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백제 무왕이 이곳 왕궁리로 궁성에 세우면서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을 모시기 위해 세웠다. 제석사에 대한 기록은 백제 무왕 때 천도한 기록과 낙뢰로 인한 화재 기록이 있다. ‘제석사’라고 적힌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에 옛 절터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