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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정토사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절터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었던 정토사는 신라말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태조 왕건이 국사로 모셨던 법경대사와 그 뒤를 이어 홍법대사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또한 고려시대 실록을 마지막으로 보관하던 곳으로 이 곳에 있던 실록을 비롯하여 많은 자료와 서적들이 한양으로 옮겨져 세종 때 고려사를 편찬하는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16세기에는 개천사로 불리면서 사찰이 유지되었으며, 조선후기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정토사가 있던 이곳은 제천지역에서 흘러 내려온 제천천이 남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이다. 영남 북부지방과 한양을 연결해 주던 주요 교통로였던 청풍도호부 지역과 약 20 km 정도 떨어진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절터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었으며 법경대사탑비(보물)는 인근 하천리마을 도로변으로 옮겨졌다. 홍국대사탑(국보)와 탑비(보물)는 일제강점기에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충북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었던 정토사지 절터 부근>

충주댐 건설로 절터가 수몰되면서 절터에 있었던 법경대사탑비(보물)와 절터에서 발굴된 건축부재 들은 인근 마을로 옮겨졌다.

<절터에 있던 법경대사탑비가 옮겨진 하천리마을>

충북 제천시 도심에서 흘러내려온 제천천이 남한강과 합류하는 교통요지였으나, 충주댐 건설로 주요 도로가 끊어지고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마을로 바뀌었다.


<충주댐 건설로 절터가 수몰되기 전 법경대사탑비가 세워져 있는 모습>

현재는 뒷편 나무가 있는 언덕으로 옮겨졌다.

<법경대사 탑비와 주요 건축부재가 옮겨진 곳>

큰 고목이 옛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고목인 것으로 보인다.

<법경대사탑비가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 본 모습>

<마을을 지나가는 길>

충주호반을 따라 이어지는 비포장도로와 연결되는 사실상 막다른 길이다. 통행하는 차량이 거의 없다.

<법경대사탑비(보물)>

통일신라말.고려초에 활동한 법경대사 행적을 기리는 탑비이다. 절터가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법경대사의 사리를 모신 승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어 지금은 볼 수 없다.

<탑비 앞에 복원해 놓은 홍법국사탑(국보)>

<탑비 아래 옛 절터에서 출토된 건축부재들>

<절터에서 줄토된 건축부재>

<건축부재들>

건물을 올렸던 화강석으로 만든 건축부재들이 상당히 세련되게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둥을 올렸던 주춧돌>

<또 다른 건물터에서 옮겨온 건축부재>

<홍법국사탑(국보)>

일제강점기에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탑과 함께 옮겨진 홍법국사탑비(보물)>

<출처>

  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
  4. 위키백과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