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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유적지

  • 경주 헌덕왕릉(사적), 신라 41대 헌덕왕

    경북 경주시 동천동에 있는 신라 제41대 헌덕왕(憲德王, 재위 809~826, 김언승)의 무덤이다. 헌덕왕은 원성왕의 손자이자 소성왕의 동생으로 난을 일으켜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즉위하였다. 재위기간 동안 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안정화하고, 제방을 수리하는 등 농사를 장려하였다. 웅주도독 김헌창의 반란을 진압하고, 대동강 지역에 장성을 쌓고 국방을 강화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반란을 통해 조카를 죽이고 즉위하였으며 귀족세력의 반란 진압했던 것으로 볼 때…

  • 경주 진평왕릉(사적), 신라 26대 진평왕

    경북 경주시 보문동에 있는 신라 26대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 ~ 632, 김백정)의 무덤이다. 진평왕은 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진흥왕의 손자이자 선덕여왕의 아버지이다.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선덕여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기까지 약 52년 동안 재위하였다. 이 시기 수(隋)와 고구려간 전쟁으로 수나라가 멸먕하고 당(唐)이 세워지는 등 국제적으로 격변의 시기였다. 진평왕은 여러 관청을 설치하는 등 내정을 안정시키고, 명활산성과 남산산성을 쌓는…

  • 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보물)

    경북 경주시 보문동 절터에 남아 있는 연화문 당간지주(보물)이다.  이 당간지주는 보문사 금당터가 있는 중심영역에서 북쪽으로  50 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전체적인 모양은 가운데 부분이 두드러진 형태이며 윗부분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특히 지주 윗부분에 네모난 틀을 두고 그 안에 연꽃잎을 새겨 놓고 있다. 이런 형태의 당간지주는 다른 사찰 당간지주에서는 볼 수…

  • 경주 명활성(사적), 신라 경주를 방어하는 주요 산성

    경북 경주시 천군동에 있는 명활성(明活城, 사적)이다. 이 성은 경주 동쪽 명활산에 있는 둘레 약 6 km의 신라 산성이다. 남산성, 선도산성, 북형산성과 함께 경주를 방어하는 외곽의 주요 산성 중 하나이다. 성을 쌓은 내력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삼국사기>에 405년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처음 쌓았음을 알 수 있다. 7세기 선덕여왕 때 비담이 이곳을 근거로…

  • 경주 천군동 사지(사적), 통일신라 절터

    경북 경주시 천군동에 있는 통일신라 절터인 천군동 사지(사적)이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 2기가 남아 있으며 절터 대부분은 농경지로 사용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금당, 강당, 중문 건물터가 확인되었으며 절의 규모는 남북 79 m, 동서 61 m이다. 발굴당시 출토된 유물들은 대부분 기와이며 절터에서는 화강석 건축자재 일부를 볼 수 있다. 쌍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지만 다른 사찰과는 달리 금당 좌우에…

  • 경주 천관사지(사적), 귀족 가문의 후원을 받아 세워졌던 도심 사찰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천관사지(天官寺址, 사적)이다. 천관사는 통일신라 때 김유신이 인연이 있었던 기생 천관을 위해 세웠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건립 이후 그 역사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려 중기 이곳을 지나던 이공승이라는 사람이 천관사 내력과 관련된 시를 남긴 것으로 볼 때 당시까지 사찰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절터가 있는 곳은 통일신라 때 귀족층들이 살았던 주거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귀족가문의…

  • 경주 효공왕릉(사적), 신라 52대 효공왕

    경북 경주시 배반동에 있는 신라 52대 효공왕(孝恭王, 재위 897~692년)의 무덤이다. 효공의 이름은 요(嶢)이며 신라 49대 헌강왕의 서자이다. 신라 말 혼란기에 진성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며 재위기간 동안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세워졌으며 신라의 영토는 급격히 줄어들고 국력은 쇠약해졌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사자사’라는 절 북쪽에 묻혔다고 한다. 무덤은 둥글게 흙을 쌓은 형태로 규모가 크지 않으며 장식도 거의 없다.봉분 주위에 둘레석으로…

  • 경주 신문왕릉(사적), 신라 31대 신문왕

    경북 경주시 배반동에 있는 신라 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년)의 무덤이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맏아들로 삼국 통일 후 귀족세력을 제압하고 사회안정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최고교육기관인 국학을 창설하여 학문을 장려하고 문화를 증진하는 정책을 펼쳐 설총, 강수 같은 대학자를 배출하였다. 고려의 광종이나 조선의 태종에 비유되는 왕으로 귀족세력을 탄압하고 과감한 정치적 숙청을 단행하여 전제왕권을 확립하였다. 문무왕릉이 있는 동해에서 만파식적을 가져왔다고 전해지는데…

  • 경주 헌강왕릉(사적), 신라 49대 헌강왕

    경북 경주시 남산동에 있는 신라 49대 헌강왕(재위 875~886년)의 무덤이다. 헌강왕은 신라 48대 경문왕의 아들이며 뒤를 이은 정강왕과 진성여왕이 동생이다. 불교와 학문을 장려했으며 재위기간 태평성대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강왕릉과 함께 경주 남산 북동쪽 구릉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쇠퇴기에 조성한 소박한 왕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경주 헌강왕릉(사적)> 헌강왕이 즉위하다 ( 875년 07월(음) ), 헌강왕(憲康王)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