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옛 사비성 부여 정림사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불상이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 정림사를 크게 중건할 때 세워진 본존불로 추정되며, 정림사가 고려시대에 다시 번창했던 것을 보여주는있다. 현재 불상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정림사 강당이 있던 자리이다. 강당터에서 ‘정림사(定林寺)’라고 적힌 명문기와가 발견되었다.
불상은 신체가 극심한 파괴와 마멸로 형체만 겨우 남아 있어 세부적인 양식과 수법을 알아보기기 어렵다. 가슴으로 올라간 왼손의 표현으로 볼 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머리와 보관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심하게 손상된 불상에 비해 대좌(臺座)는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졌는데 세련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이며, 중대에는 각면에 큰직한 눈모양을 새겼다. 하대에는 연꽃이 엎어진 모양과 안상을 중첩되게 표현했다.
<부여 정림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여래좌상(보물)>
고려초 정림사가 크게 중건될 때 본존불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불상은 심하게 마모되고 파손되어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지만 두손의 표현을 볼 때 비로자나불로 추정하고 있다.
<불상이 놓이는 대좌>
비교적 그 원형이 잘 남아 있는 편이며, 처음 조성할 때부터 공을 많이 들인 것으로 보인다. 단정하면서도 세련된 조각수법을 보여준다.
<얼굴>
단순하면서도 해학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불상 머리는 후대 새로 만들어 올린 것으로 보인다.
<옆에서 본 모습>
<불상이 남아 있는 곳은 정림사 강당 건물터>
이곳에서 ‘정림사’라는 글자가 적힌 명문기와가 발견되어 정림사라 불린다. 현재의 건물은 삼국시대 정림사 강당건물 양식을 추정하여 복원해 놓은 것이다.
<불상이 모셔진 불전 내부>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보물,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불에 타고 심하게 마모되어 대좌와 불상이 형체만 남아 있다. 좁아진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두 손의 표현으로 보아 진리를 나타내는 비로자나불상으로 짐작된다. 머리와 갓은 후대에 복원한 것이다. 대좌는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단정하면서도 균형있는 조각솜씨를 엿볼 수 있다. 석불이 있던 절은 6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이다. 정림사는 이 절의 고려시대 이름인데 1028년에 만들어진 기와명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고려초에 절을 다시 세울 때 백제시대의 강당자리를 금당으로 삼아 이 석불을 주존불로 모셨다. 남원 만복사 대좌와 함께 11세기 고려 불상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부여군청>
답글 남기기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