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군 가곡면 남한강변 향산리마을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이다. 이 탑은 2층 기단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기단부는 여러장이 큰돌로 바닥돌을 놓고 그에 기단을 쌓았다. 3층으로 된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1개의 돌로 되어 있다. 이 석탑은 머리장식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다. 석탑의 형태는 비례가 충실하며, 조각수법도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탑속에 있던 사리가 도굴되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현지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고구려 승려 묵호자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 한다. 이 석탑은 묵호자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제자들이 세운 것이라 한다. 탑(Pagoda)은 원래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며, 승려의 사리를 모신다고 하니 승탑이라 할 수 이다. 석탑이 있는 향산리는 단양읍치와 온달산성이 있는 영춘면, 어성천면을 연결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 농토가 넓지 않은편이다.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
<옆에서 본 모습>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 승려 묵호자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라고 전하나, 일제강점기 사리를 도난당해 그 내용이 확인되지 않았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 형식을 하고 있다. 조각수법과 비례의 균형미가 뛰어난 편이다.
<2층으로 된 기단부>
얇은 판석으로 여러장 쌓았으며, 기둥장식을 하여 목조건축물같은 느낌을 준다.
<탑신 1층>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모서리에 기둥을 새겨 놓고 있다.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신 감실을 새겨 놓고 있다.
<탑신부와 머리장식>
이 석탑은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제대로 남아 있다. 머리장식으로 머리장식받침인 노반(露盤)과 엎어놓은 그릇모양의 복발(覆鉢), 솟은 연꽃모양의 앙화(仰花), 연꽃봉오리모양의 보주(寶珠)가 있다.
<석탑이 남아 있는 절터>
석탑 주변에서 기와 등이 발견되기는 하나 옛 사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작은 시골마을이 들어서 있다.
<단양군 향산리 마을>
<옛길>
<마을 앞>
<국도변 마을입구>
마을에서 계곡을 따라서 단양 구인사와 소백산으로 들어가는 옛길이 연결되어 있다. 마을 앞으로 남한강이 흐르며, 단양읍과 영월, 제천을 연결하는 국도가 마을 앞을 지나간다.
단양 향산리삼층석탑, 보물, 충북 단양군 가곡면 향산리
이 석탑은 신라 눌지왕 19년(435)에 묵호자가 깨달음을 얻은 이 곳에 향산사를 처음 건립했는데 묵호자가 죽은 뒤 제자들이 탑을 건립하고 그의 사리를 모셨다. 향산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3층 석탑만 남아 있다. 1935년에 도굴꾼에 의하여 사리가 없어지고, 넘어져 완전 해체된 것을 향산리 주민들이 다시 세웠다. 신라 석탑 양식을 따랐으며, 대작은 아니지만 단정한 조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몸돌(석탑의 탑신을 이루는 돌)과 지붕돌(탑의 위를 덮는 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었다. 석재의 결합이 잘 짜여져 있고 조각 수법이 아름다운 단정한 탑 모양은 더욱 소박한 느낌을 준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5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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