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원익 초상’이다. 모란 공작 흉배를 부착한 운문령 단배를 입고 앉은 관복전신교의좌상이다. 전신상 초상하이면서도 종이 바탕에 그려진 점이 특징이다. 이원익의 초상은 이 초상화 외에도 소수서원, 문중에서 운영하는 충현박물관에도 각 1점씩 더 있다.
이원익 초상, 17세기, 종이에 색
이원익(1547~1634)의 본관은 전주, 자는 공려, 호는 오리이다. 태동의 12번째 아들인 익령군의 4대손으로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낸 명재상이다. 임진왜란 때 이여송과 합세해 평양을 탈환한 공로로 숭정대부에 가자(加資)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에는 80세에 가까운 노구로 왕을 호종하였으며,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세자와 왕을 호위하였다. 모란 공작 흉배를 부착한 흑자색의 운문단 단령을 입고 앉은 관복전신교의좌상이다. 전신상 초상화이면서 종이 바탕에 초본 형식으로 그려진 점이 특이하다. 비단에 그려진 정본 초상화와는 달리 필치 구사와 채색 바탕이 매우 자유롭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0년)
이원익 초상, 조선 17세기, 복제 (원품, 중앙박물관)
이원익(1547~1634)은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이여송과 합세해 평양을 탈환한 공로로 숭정대부에 가자되었다. 58세인 1604년 호성공신 2등에 녹훈되고 완평부원군에 봉해졌다. 여러 차례 영의정을 지냈으나 청백리로 뽑힐 정도로 매우 청빈한 생활을 하였다. 초상의 이원익은 모란과 공작 그림의 흉배를 부착한 흑색 운문단 단령을 입고 있다. 왼쪽 얼굴을 중심으로 교의에 앉은 ‘좌안칠분면전식교의좌상’이며 종이 바탕에 그려진 초본 형식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이원익의 초상은 이 초상화 외에도 소수서원, 문중에서 운영하는 충현박물관에도 각 1점씩 더 있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2024년)
<출처>
- 안내문,중앙박물관, 2010년
- 안내문, 진주박물관,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