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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완구(보물), 비격진천뢰나 무겁고 큰 탄환을 쏘는 완구

완구(碗口)는 비견진천뢰나 단석 등을 쏘는 화포로 댕구라고도 한다. 크기에 따라서 대.중.소로 구별된다. 조선 초 태종 때 최해산이 제작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대완구는 19세기에 만들어져 비교적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효용성이 있는 무기였다. 온구는 크게 완(碗), 격목통, 약통 3부분으로 나눌수 있다. 완은 큰 돌이나 비격진천뢰를 올려 놓는 곳으로 그릇 모양을 하고 있다. 경남 하동군에서 발견된 1점과 통영 앞바다에서 인양된 1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육군과 수군에서 같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중완구와 단석>

진주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중완구(보물, 1986-1)이다. 경남 하동군 동화리에서 발견되었다. 전에 길이 64.5cm, 구경은 23.5cm이다. 기록된 명문에 따르면 1590년(선조 23)함경도 고주포영에서 화포장 이물금에 의해 주조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과의 전투를 위해 하동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중완구가 실전에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중완구, 보물(1986-1), 조선 1590년>

중완구, 보물(1986-1),
완구는 불씨를 손으로 점화하여 비격진천뢰, 단석 등의 탄환을 발사한다. 완구는 발사물이 큰 돌덩어리이기 때문에 총통의 앞에 단석을 장전하는 그릇 형태의 발이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크기에 따라 네 가지 종류가 있으며, 유효사거리는 350보부터 500보(약400~500m) 정도였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2013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중완구(보물, 1986-2)이다. 경남 통영 앞바다에서 인양한 유물로 임진왜란 때 수군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닷속에 잠겨 있어 부식이 심하여 글씨를 판독할 수 없으나 중완구(보물, 1986-1)와 크기나 형태가 비슷해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중완구, 보물(1986-2)>

중완구(보물)
1970년 당포해전과 당포전양해전의 현장에서 인양한 발견문화재로, 임진왜란 전후 조선시대 수군이 사용한 중요 화포이다. 이 화포의 명문은 판독할 수 없으나 선조 23년(1595) 제작된 중완구(보물, 1986-1)와 매우 유사하여 사용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단석이나 비격진척뢰를 발사하였으며 사정거리는 250m 가량이다 (안내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2012년)

<단석과 중완구>

단석, 완구에 사용된 포탄의 일종으로 재료는 화강석이다. 박과 같이 둥글게 다듬어 성을 공격하거나 수비하는데 인마 살상용으로 사용하였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2013년)

<비격진천뢰>

비격진천뢰, 선조 때 이장손이 발명한 포탄으로 감겨진 도화선의 숫자에 따라 폭발시간이 좌우된다. 심지에 불을 붙인 후 성벽 위에서 직접 손으로 던지거나 굴리며, 완구류를 이용해서 발사하면 심지가 타 들어가 폭발한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2013년)

중완구.대완구, 조선 1590년.1845년, 보물
비격진천뢰나 단석 등의 탄환을 쏘는 화포이다. 크기에 따라 대.중.소.소로 구별된다. 모두 명문이 있어 시기를 알 수 있다. 중완구는 16세기에, 대완구는 19세기에 만들어져 둘 사이에는 약 300년의 시간 간격이 있다. 이로써 완구는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큰 변화 없이 계속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 중완구에는 상주포영에서 주조하였다는 명문이 있고, 출토지는 경상남도 하동군이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2024년)

<출처>

  1. 안내문, 진주박물관, 2024년
  2. 안내문, 진주박물관, 2013년
  3. 안내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2012년
  4. ‘보물 중완구(1986-1)’,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4년
  5. ‘보물 중완구(1986-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4년
  6. ‘중완구’, 위키백과,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