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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 순발식 화승총

조총은 유럽에서 아쿼버스(arquebus)라 불리는 순발식 화승총이다. 동남아시아의 소형총통과 포르투갈의 총기제조 기술이 융합되어 인도-포루투갈식 화승총이 만들어졌다. 임진왜란 때 일본을 통해 전해지면서 주력 화기로 자리잡았다. 반면 중국은 서아시아와 유럽에 사용된 지발식 화승총을 사용하였다. 조총은 점화방식을 개선하면서 심지로 불을 붙이는 화승식에서, 톱니바퀴를 이용한 치륜식, 부싯돌을 이용한 수석식, 뇌관을 점화하는 뇌관식으로 발전했다. 조선은 흑룡강에서 러시아를 통해 수석식을 접하기는 했으나 주력무기로 자리잡지 못하고 정체되어 구한말까지 조총을 주력무기로 사용했다.

<총열, 조선후기, 중앙박물관, 부여박물관>
<점화장치, 조선후기, 중앙박물관 공주박물관>

총열과 점화장치, 조선후기, 총열: 중앙박물관, 부여박물관, 점화장치: 중앙박물관 공주박물관
조총의 총열과 점화장치이다. 조총의 총열에는 다양한 정보가 새겨졌다. 1792년부터 시행된 <조총화약제조절목>에 따르면 제작 기관, 제작 장인, 감독관, 만든 시기를 새겨야 했다. 하지만 현존하는 많은 조총에는 이러한 정보가 없는 것이 많다. 아마도 민간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용두, 방아쇠, 평 용수철 등은 황동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점화장치는 조총의 몸체를 파내어 끼우고 못으로 결합했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마상총, 일반적인 조총, 대형 조총, 조선후기, 민속박물관, 육군박물관>

다양한 크기의 조총, 조선후기, 민속박물관, 육군박물관
다양한 크기의 조총이다. 조선시대 조총은 단조총, 장조총, 대조총, 천보총 등 크기와 관련된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가장 일반적인 조총의 크기는 길이 130~140cm 내외의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납을 녹여 탄환을 만드는 도구와 화약을 담은 화약통과 총알을 장전하는 도구인 오구이다.

<탄환을 반드는 도구, 조총을 장전하기 위한 도구 화약통과 오구, 육군박물관/중앙박물관>

조총(鳥銃)
조선은 조총의 도입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호포장을 독려하고 명군과 접촉하는 함편, 일본군 포로와 항왜를 동원하여 조총을 만들게 하고 이들에게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 조총의 운용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조총 사격술을 무과의 시험과목에 넣었으며, 중앙군인 훈련도감을 창설하여 삼수병(포수, 사수, 살수)으로 부대의 편제를 구성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조총은 조선의 주력병기로 자리잡게 되었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일본 에도시대에 사용한 조총인 오오즈츠이다. 일반적인 조총보다 크기와 위력이 커, 성을 공략하는 데도 사용했다.

<일본 에도시대에 사용한 큰 조총, 오오즈츠, 일본 에도시대, 18세기>

일본 에도시대에 사용한 조총이다. 공예품과 같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일본 에도시대에 사용한 조총, 뎃포, 일본 에도시대, 18세기>

타네사섬에 온 조총
1543년 8월 25일 일본 타네가섬(규슈 가고시며 남쪽)에 한 척의 배가 입항했다. 선원이 가지고 있던 아커버스를 타네가섬 도주의 아들인 타네가시마 도카타카가 구입하면서 일본에 어쿼버스가 도입되었다. 어쿼버스는 일본에서는 ‘종자도총’, ‘남만총’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주로 ‘텟포’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타네가섬에 들어온 ‘테포’는 크기가 작아 위력이 약했지만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점화(순발식)되었으므로, 흔들림이 적고 힘이 적게 들어 정확하게 적을 맞출 수 있었다. 이제; 텟포는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무기가 되었다. 나가시노전투(1575)와 탄금대 전투 (1592) 등 결정적인 전투에서 큰 위력을 드러냈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순발식 조총은 방아쇠를 당기면 순간적으로 점화장치가 내려와 화약을 폭발시켜 탄환을 발사하는 구조이다. 동남아를 통해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전래되었다. 조준사격이 용이하나 급격하게 발사가 이루어져 숙련되지 않은 경우 대열을 이루어 발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해상에서 사용하기에 용이하다.

<화승식(순발식)>

화승식(순발식) 총기의 특징
완발식과 달리, 순발식은 방아쇠를 당기면 순간적으로 용두(점화장치)가 내려와 화약접시의 점화약을 폭발시켜 탄환을 발사하는 구조이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완발식은 방아쇠를 담기면 화승(불심지)가 천천히 내려되는 방식이다. 사격시 오발이 적고 일제 사격이 용이하며 위력이 좋아 육군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 중국 등에서 주력 무기였다.

<화승식(완발식)>

화승식 발사장치를 갖춘 화승총은 바퀴식 방아쇠 화승총을 거쳐 부싯돌을 점화장치로 사용하는 수식식으로 발전한다. 뇌관식은 폭발물질을 담은 뇌관을 점화하는 방식이다. 발사방식이 발전함에 따라 점화시 필요동작이 줄어들고 날씨의 영향을 덜받게 되었다.

<수석식>
<뇌관식>

전장식 총기란?
총알을 총구로장전하는 총을 전장식 총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전장식 총은 화승식(Matchlock) -> 치륜식 (Wheellock) -> 수석식 (Flintlock) -> 뇌관식 (PercussionCap)으로 발전해 갔다. 조총은 화승식 총으로 방아쇠를 당기면 불이 붙은 화승이 화약접시에 닿아 점화하는 원리다. 치륜식은 톱니바퀴를 이용해 오늘날의 라이터와 같은 점화방식을 취했다. 수석식은 부싯돌의 마찰로 불꽃을 일으켜 점화하는 방식이었고, 뇌관식은 폭발물질인 노홍을 담은 뇌관으로 점화하는 방식이다. 전장식 총기는 발전할수록 점화 시에 필요한 동작이 줄어들었고, 날씨의 영향을 덜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연속 발사가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극복할 수 없었다. 전장식 총기는 19세기 중반 이후 연속 발사가 가능한 후미장전식 총기에 밀려 사라진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유럽에서 온 신무기들, 조총
0 개요: 유럽에서 아쿼버스라 부르는 전장식 화승총. 머스킷(Musket)보다 크기가 작고 위력이 낮음. 15세기경 유럽과 오스만 제국에서 처음 등장. 철로 만들어 값이 싸고, 방아쇠가 있어 조준사격과 일제사격전술 가능
0 제원: 길이 100~150cm, 무게 5kg, 구경 1~3cm
0 소모 화약 및 탄환: 화약 10g 내외, 연환 1발 (무게 10g 이내)
0 구조와 특징: 철을 단조하여 만든 총열의 뒤를 나사로 조여 막고 격발장치를 결합, 개머리판은 어깨가 아니라 뺨을 대는 형식. 방아쇠를 손가락의 힘으로 눌러 용두를 가동하는 것(완발식)이 아니라 평 용수철의 탄성으로 용두를 가동시켜 격발하는 순발식의 격발 원리.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하여 명과 조선에서는 조총이라 부름
0장단점: 작고 가벼워 운반 및 운용이 편리하나 위력이 약함. 판금갑옷이 발달한 유럽에서는 더 크고 위력이 강한 머스킷으로 대체됨
0 도입시기
– 명 1548년 왜구로부터 제조법 습득
– 일본 1543년 타네가섬에서 도입
– 조선 1593년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 국산화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브라운베스 플린트락 머스킷, 영국, 1722~1838년, 전쟁기념관>
<2. 조선시대 부싯돌과 부시쇠, 조선후기, 공주박물관 민속박물관, 3. 유럽 부싯돌, 프랑스>

흑룡강의 200 포수들
1650년대, 청은 남쪽과 북쪽 양쪽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남쪽에는 대만을 근거지로 한 복명(復明)세력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고, 북쪽에는 모피를 찾아 온 루스 차르국(현 러시아)의 카자크 원정대가 흑룡강 일대에 요새를 건설하고 있었다. 청은 복명세력과의 전쟁으로 카자크를 제압할 전력이 부족했기에 조선 조정에 포수 파견을 강요했다. 1654년, 제1창 토벌에서 조청연합군은 카자크를 물리쳤으나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다. 제2차 토벌을 위해 조선은 1658년 신유가 이끄는 200명의 포수를 파병했다. 조선 포수들은 루스 차르국에 맞서 활약했다. 조청연합군의 승리로 카자크는 물러났지만, 루스 차르국의 전술과 수석식 총, 서양식 범선의 함포사격은 조선군에게 충격을 주었다. 신유는 각고의 노력으로 총 한 자루를 얻어 귀국했지만 수석식 총은 곧 잊혀졌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군영에서 제작한 조총, 조선후기>
<군영에서 제작한 조총, 조선후기>
<군영에서 제작한 조총, 조선후기>

3~7 군영에서 제작한 조총, 조선후기, 중앙박물관 전주박물관 부여박물관 공주박물관 민속박물관
조선후기 군영에서 제작된 조총이다. 각 조총을 만든 기관을 뜻하는 ‘호’가 새겨져 있다. 조총을 만든 대부분의 기관은 상평통보도 제작했다. 따라서 조총과 상평통보에 같은 ‘호’가 있는 경우가 많다. 7번 조총의 경우 금위영과 장용영의 ‘호’가 같이 새겨져 있어 도특하다. 아마도 금위영에서 운영하던 조총을 장용영에서 인수하여 수리 후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강화도 무기고에 보관한 조총, 조선 1781, 중앙박물관, 마상총, 조선 1785~1802, 고궁박물관>

기병이 사용한 조총, 마상총, 조선 1785~1802, 고궁박물관
기병이 사용한 조총인 마상총이다. 총열에 장용위나 장용영을 뜨사는 ‘장’자가 새겨져 있어 장용위가 설치된 1785년부터 장용영이 폐지된 1802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은 마상총을 쓰는 기병을 양성했다. 1808년 편찬된 <만기요람>에 따르면 훈련도감은 205자루의 마상용을 보유하고 있었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3년)

<해남읍성에서 출토된 레밍턴 롤링블럭 소총, 미국 1867년 이후, 광주박물관>

해남읍성에서 출토된 레밍턴 롤링블럭 소총, 미국 1867년 이후, 광주박물관
해남읍성에서 여러 무기와 함께 출토된 레밍턴 롤링블럭 소총이다. 총열과 방아쇠 등 금속부분만 남아 있다. 방아쇠 위에 달린 해머를 젖히고 총알을 장전하는 간단한 구조이다. 레밍턴 롤링블럭 소총은 미국의 레밍턴사에서 1864년 개발하여 1867년부터 1918년까지 생산했다. 조선은 이 총을 대량으로 수입하여 동학농민운동 진압(1894)과 경복궁 전투(1894) 때 사용했다. 이 총은 조선이 레밍턴 롤링블럭 소총을 사용했음을 실증하는 자료로 가치가 크다. 또한 출토지가 해남읍성인 점, 총열을 일부로 휘어서 묻은 것으로 보이는 점, 환도와 철창, 철제 선회포 등과 함께 묻ㅇ혀 있던 점으로 보아 동학농민운동이나 후기 의병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조총을 개조한 뇌관식 소총이다. 조선시대 조총과 외형이 거의 같다. 점화장치만 뇌관식으로 개조한 총이다. 기병이 쓴 뇌관식 소총은 1850년 제작된 초기와 비슷하다. 외국 총을 모방해서 만든 사제총으로 보인다.

<조총을 개조한 뇌관식 소총, 기병이 쓴 뇌관식 소총, 조선후기, 육군박물관>

기병이 쓴 뇌관식 소총, 뇌관식 소총
뇌관식 소총이다. 총열과 개머리판이 짧은 것으로 보아 기병용 소총인 카빈 소총으로 보인다. 형태적으로는 스피링필드 소총이나 엔필드 소총 등 1850년대 이후 제작된 총기와 유사하다. 하지만 총기에 각인이 남아있지 않고, 강선도 없는 것으로 보아 여러 총기의 특징을 모방하여 만든 사제총이거나, 기존 수석식 총을 개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출처>

  1. 안내문, 진주박물관, 2024년
  2. ‘조총’, 위키백과,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