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弓)은 오랜 무기 중 하나로 전쟁에서의 무기나 수렵을 위한 수단을 사용되었다. 초기의 활은 하나의 재료로 만든 단궁이 사용되었다. 단궁은 위력을 강화하면 크고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다. 복합궁은 여러 종류의 나무재료를 겹쳐서 만들 활로 영국의 롱보우나 일본의 화궁이 이에 해당한다. 합성궁은 목재와 짐승의 뿔, 힘줄 등 비목재 재료를 조합해서 만든 활이다. 한반도의 각궁이 이에 해당한다. 한반도에서는 조총이 보편화된 조선후기까지도 상당 기간 주력무기였으며 무과시험에서도 중요한 과목이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사용하던 활과 화살통으로 궁장 장기홍이 제작했다.
각궁(角弓)은 물소뿔로 만든 활이다. 여러 재료(물소뿔, 소심줄, 뽕나무, 민어부레풀, 명주실, 칠 등)를 합성하여 탄력을 높인 합성궁이다.
목궁(木弓)은 나무로 만든 활로 단일궁이자 직궁이다. 죽궁(竹弓)은 대나무로 만든 활로 마찬가지로 단일궁이자 직궁이다.
놋쇠로 만들 활인 철궁(鍮鐵弓)이다. 단일 만곡궁이다.
예궁(禮弓)은 각종 예식에 쓰인 활이다. 현존하는 가장 큰 활로 모양은 각궁과 같다.
활, 궁(弓), 복원
조선시대 활은 평소에는 심신단련의 수단으로, 전시에는 전투의 주력무기로 사용되었다. 무관을 선발하는 무과에서 다루는 무예시험은 <속대전>이 편찬되기 전까지 목전(木箭), 철전(鐵箭),.편전(片箭).기사(騎射)기창(騎槍).격구(擊毬)의 6기 가운데 활쏘기가 4과목을 차지할 만큼 중요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도 조선의 주력무기는 활이었다. 조선시대 활은 용도와 재질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지만 물소뿔이 주재료인 각궁이 대표적이었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2024년
화살, 시(矢), 조선후기
화살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전투용으로는 편전, 유엽전, 화전, 신기전 등이 사용되었다. 편전은 화살발사 보조 장치인 통아를 사용해서 쏘는 짧은 것이고, 유엽전은 화살촉이 가늘고 버들잎 모양처럼 생겼으며, 화전은 불을 붙여 적진에 쏠 수 있는 화살이다. 그 외에 박두는 실전용이 아닌 무과시험과 연습용으로 사용되었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2024년)
신전(信箭), 임금이 교외에 거동할 때 선전관을 시켜 각 영에 군령을 전하는데 쓰던 화살이다. 살촉에 ‘령(令)’자를 새겼고, 깃 아래에는 ‘신(信)’자가 달린 작은 깃발을 달았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활의 부속구, 조선후기,
활을 쏠 때 필요한 용구이다. .깍지는 활을 당기는 손의 엄지손가락에 끼우는 도구이다. 이 깍지에 활시위를 걸어 당겨 사용하였다. 종류는 암.수로 나뉘는데, 혀가 길게 나온 것이 숫깍지로 조선의 전통적인 것이고, 암깍지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다. 촉도리는 화살촉을 끼우거나 뽑을 때 사용한다. 습과 완대는 활을 쏠 때 활을 잡은 팔의 소매를 잡아매는 도구이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2024년)
화살을 보관하는 통, 전통, 조선후기
화살통은 화살을 넣어두는 통으로 전통(箭筒)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나무.대나무.종이 등 다양한 재질에다 각종 문양을 넣어 멋과 운치를 더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화약무기 특히 조총이 보급되고 활과 화살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보다 장식적인 효과늘 높여 화살통 겉면을 십장생.용 등의 무늬로 화려하게 꾸몄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2024년)
화살 여러 개를 장착할 수 있는 쇠뇌, 수노.노기, 조선 후기
여러 개의 화살을 넣고 쏠 수 있는 무기이다. 나무틀에 활을 얹고 여러 개의 화살을 넣어 뒤의 손잡이를 당겨 발사하는 것이다. 활에 비해 힘을 적게 사용하며 여러발의 화살을 보다 멀리 보낼 수 있다. 노기는 쇠뇌를 작동시키는 기계 장치이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2024년)
활집, 궁대(弓袋), 조선후기, 활을 넣는 활집으로 궁대라고도 부른다. 활집인 궁대와 화살집인 시복을 함께 엮어 활과 화살을 갖고 다닐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것을 동개(筒介)라고 한다. 화살집, 시복(矢箙), 조선후기, 가죽으로 만든 화살집이다. <국조오례의 서례>에는 돼지가죽으로 만들고 끈은 사슴가죽으로 만든다고 하였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2024년)
<출처>
-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 안내문, 진주박물관, 2024년
- ‘활’, 위키백과, 2024년